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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0 (일)

기준 모호한 의원 해외출장…"규정 강화하고 비용 등 공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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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윤리규정은 구체적이고 상세하게…윤리위 역할 강화" 주문

서구 의회 윤리규정 '꼼꼼'…美중진의원 규정위반으로 세입위원장 사퇴

연합뉴스

답변하는 김기식 금감원장
(서울=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한국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내부 통제 강화를 위한 증권사 대표이사 간담회'를 마치고 나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utzza@yna.co.kr



(서울=연합뉴스) 배영경 기자 =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국회의원 시절 피감기관의 예산 지원에 의한 '외유성 출장' 논란을 계기로 국회의원 해외출장 관련 제도에 새삼 관심이 쏠린다.

의원외교는 물론 의원들의 입법활동 내실화를 위한 해외출장 등은 필요한 일이지만, 외유성 해외출장은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대표적인 특권의 하나라는 부정적 시각이 많다.

전문가들은 국회의원의 해외출장이 부적절한 접대나 로비의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통제해야 할 규정들이 매우 모호하고 추상적일 뿐만 아니라, 사후 감시장치마저 미흡해 '깜깜이 출장'이 될 소지를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 탓에 정상적인 의원 외교활동마저 평가절하되고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라도 제도를 투명하게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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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국회 상임위 및 사무처 관계자들의 설명을 종합해보면 국회의원 해외출장의 상당수는 자신이 소속된 상임위원회 관련 일정이다.

항공료, 숙박료 등 적지 않은 비용이 소요되는 해외출장은 예산 출처에 따라 출장비용을 관리·감독하는 주체가 나뉘는데 대개는 상임위 자체 예산 또는 국회 사무처 예산으로 충당된다.

국회의원 해외출장에 들어가는 비용은 공무원 여비 규정에 따라 지급되고 사후에 증빙서류 등을 첨부해 정산 처리된다. 출장비용을 사전승인 받는 절차는 따로 없다.

이번에 논란이 된 김 원장의 사례처럼 피감기관으로부터 출장비를 지원받은 경우 국회 예산이 아니기 때문에 국회가 정산 처리를 비롯한 출장비 관리·감독을 원천적으로 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현행 의원 해외출장 관련 규정이 추상적인 탓에 꼭 필요한 해외 공무까지도 싸잡아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고 지적했다.

명지대 김형준 교수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가령 미국에는 윤리강령이 아주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규정돼 있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그렇지 않다. 국회 윤리위원회에서 관련 규정을 엄격히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지난 2010년 민주당 중진인 찰스 랭글 의원도 윤리규정 위반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그는 지난 2007·2008년 카리브뉴스재단이 후원하는 콘퍼런스에 참석하면서 관련 여비를 기업으로부터 후원받았다. 그러나 윤리위로부터 사전승인을 받을 때 기업 후원 사실을 알리지 않고 출장 승인을 받았다가 사후에 적발돼 문제가 됐다.

이를 두고 당시 하원 윤리심의소위원회는 윤리규정 위반을 인정하며 징계를 내렸고, 결국 랭글 의원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세입위원장직에서 물러났다.

국회입법조사처가 발행한 '미국 하원의 선물 및 여행 관련 윤리규정과 우리 국회에 대한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미 하원에서는 공무출장을 하려는 의원은 윤리위의 사전승인을 받아야 한다.

미국 윤리위는 ▲의원의 공식적 책임 ▲의회의 입법 또는 정책 결정과 직간접적 관련성 여부 ▲여행 중 수행할 공무 관련 활동의 정도 등을 기준으로 해외출장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또 "미국 의회 윤리위는 의원의 윤리 위반 사실을 심사할 뿐만 아니라 사전에 의원이나 직원의 특정 행동과 윤리규범 위반 여부도 자문하는 기능을 한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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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하는 김기식 금감원장
(서울=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한국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내부 통제 강화를 위한 증권사 대표이사 간담회'를 마치고 나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utzza@yna.co.kr



이에 비해 우리나라 국회 윤리위의 기능이 제한적이고, 관련 윤리규범도 구체적이지 못해 허점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국회의원윤리실천규범에 명시된 국외활동 관련 조항은 ▲국회의원은 직무상 국외활동을 하는 경우에 성실히 보고 또는 신고해야 한다 ▲국회의원은 정당한 이유 없이 장기간의 해외활동이나 체류를 해선 안 된다는 정도다.

신고 항목이나 출장비 출처 등에 대한 구체적인 규제가 없는 만큼 결국은 '상식선'에서 해외출장 일정이나 비용을 마련하게 되는 경우가 상당수라는 지적이다.

사전승인을 비롯한 사전규제 절차가 미흡하다 보니 상임위 출장이 소수에 의해 불투명하게 추진된다는 문제는 여의도 정치권 안에서는 이미 일상화된 지 오래다.

익명의 한 상임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상임위 예산으로 가는 해외출장의 경우 위원장과 여야 간사가 주로 키를 잡고 동행할 의원들을 선별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통화에서 "피감기관 입장에서는 여당보다는 야당의원, 그중에서도 야당 간사의 협조가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출장을 갈 때는 야당 간사의 파워가 셀 수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른 보좌관은 "의원들이 해외에 나가면 태도가 다소 너그러워진다. 숙소에서 함께 묵고 술자리도 하면서 민원 사항을 관철하려는 시도도 있다"고 다소 노골적인 증언을 털어놓기도 했다.

실제 김 원장의 '외유 출장' 논란의 사례 중 하나로 꼽히는 지난 2015년 5월 중국·인도 해외출장을 갔던 당시 김 원장은 정무위원회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현재 더불어민주당) 간사였다.

일각에서는 피감기관 예산이 동원되는 해외출장은 아예 법적으로 불가능하도록 막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미국 의회의 경우 의원이 출장 시 로비스트를 동행하거나 로비스트를 고용한 기업으로부터 여비를 지원받는 것을 철저히 금지하고 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통화에서 "상임위 의원들과 피감기관은 결국 갑을관계인 만큼 설령 해외출장이 공무라 하더라도 적절하지 않다"면서 "이번 기회에 피감기관의 예산이 들어가는 해외출장을 금지하는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후에라도 해외출장의 적정성을 따질 수 있도록 국민의 감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김 교수는 "스웨덴 의회의 경우 의원 자신이 해외출장 후 보고서를 작성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출장이 공무였다는 점을 보여야 한다"면서 "이번 김 원장 경우처럼 피감기관 예산으로 출장을 다녀오고도 말로만 혜택을 주지 않았다고 해명한다면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의회 윤리위로 넘어갈 사안"이라고 말했다.

출장비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해 정보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기본적으로 현재 의원의 해외출장비 사용 내역은 공개돼 있지 않고, 확인하려면 정보공개를 요청해야 한다.

명지대 신율 교수는 통화에서 "국회의원이 자신의 사비를 들인 게 아니라 국민의 혈세를 사용한 것"이라며 "해외출장 내역은 자동으로 공개되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ykb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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