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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 스토리] '4선 성공' 헝가리 총리…강성 진보에서 反난민 극우주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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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헝가리는 큰 승리를 거뒀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4선, 3연임에 성공한 8일(현지 시각) 이 같이 당선소감을 밝혔다. ‘헝가리를 헝가리인들의 국가로’라는 민족주의적 기조로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반(反)난민 정책을 내세워온 그는 자신의 승리가 곧 헝가리의 승리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오르반 총리는 이날 헝가리 총선에서 자신이 이끄는 여당 피데스가 49.5%의 득표율로 승리하면서 재선에 성공했다. 투표율은 69.1%로 1990년 헝가리에서 민주 선거 제도를 도입한 이후 가장 높았다.

그는 1998년 35세의 젊은 나이로 4년간 총리자리를 지켰다가 2010년 재집권에 성공해 8년간 연임했다. 오르반 총리는 진보적인 청년 정치인으로 정계에 발을 들여놨지만 이후 점점 극우 민족주의 성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의 극우 성향은 최근 강력한 반난민 정책으로 정점을 찍고있다.

이날 자이드 라드 알 후세인 유엔 인권 최고대표는 그의 재선을 두고 “(헝가리가) 보안정국으로 회귀했으며, 세계 각 지역의 기본 자유가 후퇴했다”고 평가했다.

조선일보

2018년 4월 7일(현지 시각) 연설 중인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헝가리 정부홈페이지


◇ 진보 청년 정치인에서 극우 정당 수장되기까지

오르반 총리는 헝가리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장본인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지만 과거 청년 시절에는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진보 성향 정치인이었다. 1963년 헝가리 서부 세케슈페헤르바르에서 태어난 그는 형제 중에서 유일하게 집안 일 대신 학업을 선택했다. 그는 헝가리 출신의 펀드업계 대부인 조지 소로스에게 “민주주의 기반을 연구하기 위한 자금이 필요하다”며 옥스퍼드 대학 학자금을 요청할 정도로 패기가 넘쳤다.

오르반은 1989년 진보주의 청년동맹 피데스(Fidesz)를 창설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정치 초년생이었던 그는 자국 내 소련 군대의 철수를 요구하는 연설을 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이후 1990년 헝가리의 첫 민주적 선거에서 피데스가 22석을 얻으면서 오르반은 의원이자 당의 수장이 됐다.

오르반 총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민족주의적이고 중도 보수적인 성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총선 결과가 좋지 못할 때마다 이 같은 경향은 더 심해졌다. 1994년 총선에서 예상보다 적은 의석수를 확보하자 그는 진보에서 중도 우파 기독민주당 기조를 내세우며 당의 성향을 탈바꿈시켰다. 1998년 처음으로 총리 자리에 올랐을 때는 보수 연합정당을 구성했고, 2002년 총선에서 패배하자 아예 극우 민족주의 성향을 대놓고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의 정치적 성향이 점점 오른쪽으로 이동하게 된 데에는 오르반 총리가 개인적으로 권력을 놓지 않기 위한 정치적 전략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첫 의회 진출 당시 피데스당은 다른 중도 좌파당의 그늘에 가려 뚜렷한 색깔을 지니지 못했다. 오르반은 집권 당시 자신을 공격하는 언론을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심지어 민주주의에 대해 권력을 손에서 잃게 만드는 좋지 않은 제도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조선일보

2017년 6월 17일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헝가리 정부홈페이지


◇ 극단적 민족주의 반난민 정책…유럽의 트럼프로 떠올라

오르반 총리의 극단적 민족주의 성향을 잘 드러내는 분야는 반난민 정책이다. 그는 2015년 난민이 헝가리를 통해 유럽에 대거 유입될 당시, 유럽연합(EU)이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자 세르비아 국경에 장벽을 건설했다. 4m에 달하는 전기장벽에 수백명의 군인들을 배치해 최루탄과 물 대포로 난민들을 철저히 통제했고, 그 결과 난민 유입이 감소했다.

당시 워싱턴포스트(WP)는 오르반 총리의 반난민 정책을 두고 “헝가리의 총리가 유럽의 도널드 트럼프가 되려고 한다”고 꼬집었다. 트럼프 대통령도 출마를 앞두고 이민정책에 반대하며 멕시코 장벽 건설을 추진하겠다고 주장한 바 있다.

국제사회의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오르반 총리가 반난민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은 표심을 얻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가 내세우는 ‘헝가리인들을 위한 헝가리’ 기조는 3연임에 성공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그의 민족주의 전략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 효과를 톡톡히 봤다. 당시 외국자본을 유치하며 경제 성장을 이끌었던 사회주의 집권정부가 경제위기로 큰 비난을 받자 오르반 총리는 외부 자본으로부터 흔들리는 헝가리 경제를 바로잡겠다고 나섰고, 재집권에 성공했다.

영국 가디언은 오르반이 피데스당 부패 연루설에도 불구하고 이번 총선에서 가뿐히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반난민 정책 덕분이라고 지적했다. WP에 따르면, 일부 헝가리 국민들은 오르반 총리의 승리로 민주주의가 후퇴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오르반에 표를 던진 다수 국민들은 국가와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희생이라고 생각한다.

오르반 총리의 재선으로 반난민 기조가 강화되고 유럽 내 극우 바람이 세질 것이라고 외신들을 예상했다. NYT는 “오르반 총리의 재선으로 폴란드 등 주변국 지도자들이 민족주의 전략을 이용해 독재를 이어가려고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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