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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뇌물 스캔들’ 페루 대통령 사퇴…부패·가난 몸살 앓는 중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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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국가들이 부패한 독재 정치와 가난에 몸살을 앓고 있다. 부패 스캔들로 탄핵 위기에 몰린 페루 대통령은 21일(현지 시각) 스스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자신의 연임을 위해 유력 경쟁자들을 탄압하고 대선 날짜를 8개월이나 앞당겼다. 브라질에서는 부패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전 대통령이 대선 출마를 선언했고, 볼리비아는 현 대통령의 4선을 위해 연임 제한을 철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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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페루 대통령이 2018년 3월 21일 자진 사퇴했다. 사진은 2017년 10월 26일 페루 리마에서 열린 ‘2017 남미 도시회의’에서 쿠친스키 대통령이 연설하는 모습. /블룸버그


특히 최악의 경제난을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에는 ‘가난한 나라의 병’으로 불리는 결핵까지 유행하면서 국민들의 고통이 극에 달하고 있다. 이 가운데 중남미 국가들의 범죄율은 세계 최악의 수준을 기록했다.

다만, 부패의 고리를 끊기 위한 자정 노력도 주목받고 있다. 브라질에서는 대대적인 부패수사를 진행 중이며, 에콰도르는 대통령의 무제한 출마를 제한하도록 헌법을 개정했다. 지난 16일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중남미 회의에서는 오랫동안 지속된 부패 스캔들과 이를 타개하려는 노력들이 올해 남미 국가들의 대선에 주요 변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페루 대통령, 뇌물수수 스캔들로 탄핵 위기…결국 자진 사퇴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페루 대통령은 이날 TV 연설을 통해 대통령직을 사임한다고 밝혔다. 쿠친스키 대통령은 “어려운 상황을 감안할 때 내가 대통령직을 사임하는 것이 국가를 위한 최선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자신과 관련한 부패 의혹을 두고서는 “내가 참여하지 않은 부당한 행동”이라고 해명하면서 “더는 국가(페루)나 나의 가족이 불확실성으로 고통을 겪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쿠친스키 대통령은 2016년 페루 대선에서 당선됐다. 그는 대통령직에 오르기 전 페루 총리직과 재무장관을 거쳤는데, 그 시기에 브라질 건설회사 오데브레히트로부터 78만달러(약 8억3600만원) 규모의 뇌물을 수수한 사실이 알려져 탄핵 위기를 맞았다. 쿠친스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차 탄핵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탄핵 절차 개시를 위해 필요한 정족수인 재적 의원 중 3분의 2의 찬성을 받지 못해 위기를 넘겼다.

쿠친스키 대통령의 두번째 탄핵 표결은 오는 22일 진행될 예정이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앞서 쿠친스키 대통령의 탄핵 절차 개시에 필요한 찬성표가 페루 의회 전체 의석수의 3분의 2인 87표가 나왔다. 쿠친스키 대통령의 탄핵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았다는 의미다.

그러나 최근 그가 탄핵을 피하기 위해 야당 의원을 매수하는 장면이 찍힌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비난 여론이 거세졌고, 쿠친스키 대통령은 결국 이날 자진 사퇴했다. 쿠친스키 대통령의 빈 자리는 캐나다 대사를 겸직하고 있는 마틴 비즈카라 제1부통령이 맡을 예정이다.

◇ 중남미 부패의 중심 ‘오데브레히트’…독재 야욕 들끓어

중남미 국가 중 정치권 부패는 페루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지난 2월 공개한 2017 부패인식지수(CPI)에 따르면 평가 대상인 180개국 중 상당수의 중남미 국가들이 하위권에 들었다. 총 30개 중남미 국가 중 14개국의 순위가 전년(2016년) 대비 하락했고, 5개국은 동일한 수준을 유지했다.

볼리비아·엘살바도르(112위), 에콰도르(117위), 도미니카공화국·온두라스·멕시코·파라과이(135위), 과테말라(143위) 등 8개국이 100위권에도 들지 못했고, 니카과라(151위), 아이티(157위) 베네수엘라(169위)는 최하위권 수준이었다. 미국 조직범죄 연구소 인사이트 크라임(InSight Crime)은 “중남미 국가들이 여전히 부패 대처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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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0일 페루 리마에서 정부 부패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렸다. 사진은 시위에 참여한 시민이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블룸버그


특히 쿠친스키 대통령을 탄핵 위기로 몰고 간 오데브레히트 스캔들은 많은 중남미 국가들이 연루돼있다. 오데브레히트는 지난 2001년 이후 해외 건설사업 수주를 위해 약 10개 중남미 국가(브라질·페루·아르헨티나콜롬비아·에콰도르·도미니카공화국·과테말라·베네수엘라·멕시코)에 총 8억달러(약 8500억원) 규모의 뇌물을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이중 베네수엘라는 이 기업으로부터 약 9800만달러(약 1050억원) 규모의 뇌물을 수수했다고 미 스페인어 매체 엘 누에보 헤랄드는 전했다.

브라질 ‘좌파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은 오데브레히트와의 정경 유착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룰라 전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뇌물수수 혐의로 열린 1심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9년 6개월의 징역형을, 지난 1월 말 진행된 2심 재판에서는 징역 12년 1개월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룰라 전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고 재선 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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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 마두로(가운데 왼쪽)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영부인 실리아 플로레스(가운데 오른쪽)와 함께 2018년 1월 23일 수도 카라카스에서 연설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마두로 대통령 대통령은 재선 도전 의사를 밝혔다. /블룸버그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도 오데브레히트 스캔들에 얽혀있다. 그는 현재 재선 도전을 선언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연임을 위해 지난해 말 자신의 유력한 정적으로 손꼽히는 야당 인사들의 대선 출마를 금지시켰다. 이후 올해 말 실시할 예정이었던 대선을 오는 4월30일로 약 8개월 앞당겼다. 베네수엘라는 ‘차베스의 후계자’로 불리는 마두로 대통령의 포퓰리즘 정치가 실패하면서 최악의 경제난을 겪고 있다. 이 가운데 최근 베네수엘라에는 ‘가난한 국가의 병’으로 불리는 결핵까지 유행하면서 국민들의 삶이 더욱 비참해졌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볼리비아도 독재 정권에 몸살을 앓고 있다. 볼리비아 최초의 원주민 대통령인 에보 모랄레스는 지난해 2월 대통령 임기제한 폐기안을 국민투표에 붙였지만 49%대 51%로 패배했다. 그러나 모랄레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로부터 대통령의 연임제한을 위헌으로 판결받았다. 현재 그는 2019년 4선 도전을 선언한 상태다.

◇ 부패 척결 위한 자정 노력 움직임도…“대선에 긍정적 영향 줄 것”

중남미 국가의 범죄 수준도 최악의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멕시코 시민단체인 시민안전형사사법위원회(CCSPJP)는 지난해 4월 발표한 ‘세계 폭력 도시 50개’ 리포트에서 중남미 국가 대부분이 상위권을 차지했다고 밝혔다. 특히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는 가장 폭력적인 도시 1위에 올랐고, 이를 제외한 베네수엘라 도시 4곳이 10위권 안에 들었다. 멕시코와 온두라스의 도시들도 상위권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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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4월 4일(현지시각)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베네수엘라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고 있다. /블룸버그


그러나 부패 심각성을 실감한 일부 중남미 국가들은 자정 노력을 하고 있다. 중남미 각국에서 부패·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브라질 사법 당국은 부패 척결을 목적으로 지난 2014년부터 ‘라바 자투(Lava Jato)’라는 대대적인 수사를 벌이고 있다. 당국은 오데브레히트 스캔들을 집중 수사하고 있다. 에콰도르에서는 올해 초 대통령의 무제한 연임을 막기 위해 임기를 재선으로 제한하는 헌법 개정안이 국민투표로 통과됐다. 개정안에는 부패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인사의 출마를 금지하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지난 16일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중남미 회의에서는 이 지역의 부패 문제가 불거지면서 올해 대선을 앞둔 중남미 국가들이 민주주의를 위한 움직임을 활발히 펼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올해 브라질, 베네수엘라, 멕시코, 콜롬비아, 파라과이, 코스타리카 등에서 대선이 치러질 예정이다. 이번 회의에 패널로 참석한 이사벨 생 데 알바라도 파나마 부통령은 “부패 문제가 대중에게 공론화된 것이 긍정적”이라며 “이는 중남미 각국 대선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선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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