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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어제 오후 2시, 화재벨 울려도 어슬렁대고 구경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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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만에 전국 동시 화재 훈련

정부과천청사 등 공무원들, 눈·비 내리자 상당수 실내 머물러

영화관은 매표소 있는 층만 대피… 제천참사 겪고도 태반이 형식적

21일 오후 2시부터 20분 동안 전국에서 화재 대피 훈련이 시행됐다. 최근 연이은 대형 화재 참사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대형 마트·영화관·백화점 1151곳, 요양병원·장애인 시설 3611곳 등 화재에 취약한 다중 이용 시설이 의무 대상이었다. 누전으로 인한 화재를 가정했다. 본지가 정부 과천청사와 영화관, 백화점 등 6곳을 직접 점검했다. 예전보다 상황은 나았지만, 여전히 형식적 훈련이 많았다.

서울 동대문의 한 영화관. 이곳에선 전체가 아닌 매표소가 있는 층에서만 훈련했다. 다른 층에 있는 상영관에선 훈련 중에도 계속 영화를 내보냈다. 직원 홍모(28)씨는 "훈련 때문에 상영 일정을 조정해 2시부터 2시 20분 사이에 시작하는 영화는 없었다"며 "그전에 시작한 영화는 중단 없이 상영했다"고 했다. 직원 신모(41)씨는 "직원이 손님을 비상 대피소까지 안내했다. 그 이상 강제할 수는 없다"고 했다. 훈련 시간에 친구들과 매표소 근처에 남아있던 정모(69)씨는 "실제로 불이 난 것도 아닌데 꼭 대피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서울 중구의 한 백화점에서는 2시가 되자 손님들이 각 층에 마련한 '대피 공간'으로 이동했다. 엘리베이터 앞 의자 주변이었다. 손님들은 직원 안내에 따라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엘리베이터는 계속 운행했다. 원래는 비상계단을 통해 건물 밖으로 나가야 한다. 엘리베이터 운행은 중단해야 한다. 한 직원이 "몸을 낮추고 입을 가려달라"고 외쳤지만 손님 100여 명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날이 춥고 눈이 온다며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정부과천청사 1동에서 화재 경보가 울리자 직원들이 1층으로 내려왔다. 직원 상당수가 "바람 불고 추워서 못 나가겠다"며 실내에 남았다. 경비원이 "훈련이니 나가야 한다"고 말했지만 100여 명이 1층 휴게 공간이나 건물 처마 밑에 머물렀다. 이날 서울 양천구의 한 요양 병원에서는 직원이 환자 역할을 대신해 모의 훈련을 했다. 실제로 환자를 옮기는 것은 사고 우려가 있어 하지 않았다. 직원들은 우왕좌왕했다. 간호사들이 "어디로 가야 하느냐" "나는 뭘 해야 하느냐"고 사방에 물었다. 대피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느라 1층으로 대피한 간호사들이 다시 3층으로 올라가기도 했다. 카메라 앞에서 열심히 임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번 훈련 의무 참여 대상이 아닌 대형 건물에서는 대피 훈련을 안 하기도 했다. 서울 용산구의 한 대형 사우나에서는 비상벨이 울리지 않았다. 방송도 없었다. 이용객들은 평소와 다름 없이 목욕탕과 식당 등 시설을 이용했다. "사물함 열쇠를 분실하지 말라"는 안내 방송만 나왔다. 이곳은 2015년 불이 나 손님 100여 명이 대피한 적이 있다. 지난 1월에는 서울시 불시 소방 점검에 적발됐다.




[김상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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