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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이런 법률 저런 판결·20] 30년 전 무상이용 허락한 음악저작물, 이용료 요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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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때는 1987년이었다. 작곡가 A는 여러 개의 찬송가를 작곡했고, 이 노래들이 널리 불려지기를 바랐다. 이에 여러 기독교 단체와 출판사에 “찬송가집에 수록해도 좋다”며 이용허락서를 작성해 주었다. 이용허락의 대가나 이용기간은 따로 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영구히 무상으로 음악저작물을 이용해도 좋다”는 의미인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그리고 A는 2008년에 사망하기 전까지 위 음악저작물들에 대해 저작권사용료 지급을 청구하지 않았다.

A의 사망 후 위 음악저작물들은 그의 직계비속인 B가 단독으로 상속했다. B는 2009년 6월경 저작권자로서의 권리를 되찾겠다며, 위 기독교 단체 등을 상대로 저작권사용료 지급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했고 B가 승소했다. 하지만 소송 후에도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이용허락서가 존재해 이용권이 있는 만큼 불법행위 또는 부당이득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최초 이용허락 당시 추후 별도로 사용료 지급을 청구하겠다고 권리를 유보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22년 동안 사용료의 지급을 구하지 않았다. 때문에 위 분쟁 이후에도 위 기독교 단체들과 출판사들은 자신들의 찬송가 수록 행위가 무단 사용이 아니라며 이용행위를 지속해 왔다. 이에 B는 2013년 11월에 재차 소를 제기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결론이 바뀌었다. 법원은 A가 “이용대가와 이용기간의 정함 없이 음악저작물의 이용을 허락해 주었으므로 무단이용 행위로 볼 수 없다”며 B의 청구를 기각했다.

왜 이런 논란이 계속되는 것일까? 심지어 법원에서조차 의견이 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근본적인 이유는 저작권법에 있다. 저작권법은 저작물의 이용허락 계약의 법적 성격에 관한 규정을 전혀 두고 있지 않다. 때문에 이용기간과 이용대가의 정함이 없는 이용허락 계약의 경우 ‘영구 무상의 이용허락 계약으로 해석해야 하는지’, 아니면 ‘중도 해지가 가능한지’ ‘해지가 가능하다면 언제 해지할 수 있는지, 아니면 아무 때나 해지할 수 있는지’ 등에 관해 상당한 논란이 있다. 이번 사건도 결국 기존의 무상이용 관계를 단절하고 싶었던 B와 이를 계속 유지하고 싶었던 기독교 단체 사이의 입장 차이로 인해 발생한 분쟁이다.

저작권법에 규정이 없다면 이는 민법상 비전형계약의 유형으로 볼 수 있다. 비전형계약의 경우 그와 유사한 성격의 계약법리를 유추적용할 수 있다. 저작물 이용허락은 타인에게 이용권을 부여하는 계약이므로, 임대차나 사용대차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따라서 유상의 이용관계에는 임대차 계약에 관한 법리가, 무상의 이용관계에는 사용대차 계약에 관한 법리가 유추적용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 국내 학계의 다수 견해다. 하지만 이에 관한 명확한 판례는 아직 없는 실정이다.

이 사건의 경우 학계 견해에 의하면 사용대차 계약에 관한 규정이 유추적용될 수 있다. 민법 613조 2항은 ‘대주는 사용·수익에 족한 기간이 경과한 때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무상 이용관계인 만큼 차주보다는 대주를 두텁게 보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2009년 6월 최초 소 제기 시점에 기존의 무상 이용관계를 단절하고자 하는 해지의 의사표시가 있었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 그리고 그 후의 이용행위는 무상의 이용관계가 단절된 후 이용료 정산 없이 이뤄졌으므로, 무단 사용 내지 부당이득으로 볼 수 있다.

위 사건의 항소심에서 서울고등법원 역시 같은 취지로 1심을 파기하고 B의 손을 들어줬다(서울고등법원 2016나2015196 판결). 판결문에 명시하고 있지는 않으나, 저작물 이용허락 계약이 사용대차 유사 계약관계임을 전제로 판단했다는 면에서 아주 의미 있는 판결이다. 참고로 미국 법원도 기한의 정함이 없는 라이선스 계약의 경우 “중도 해지권(Revocability or Irrevocability)에 관한 명시적 규정이 없다면, 권리자가 언제든 중도 해지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30년 동안 무상의 이용관계를 신뢰해 온 기독교 단체들과 출판사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는 간다. 하지만 무상의 이용관계를 영구히 지속하겠다는 명시적 의사표시가 없었던 이상, 저작권자에게 무상의 이용관계를 계속 강요하는 것은 과도하다. 쉽게 보면 “이제부터 내 물건 사용할 때 사용료를 좀 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해 보이기도 하는데, 선례도 없고 법 규정도 없는 분쟁의 터널을 지나오다 보니 참으로 먼 길을 돌아온 듯 하다는 느낌도 든다. <허종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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