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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세계초대석] 김부겸 “중앙집권적 국정운영 시스템 한계… 지방분권 개헌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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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세계일보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의 지난 겨울은 혹독했다. 취임 5개월 만인 지난해 11월 포항 지진이라는 대형 재난이 닥쳤다. 수많은 사상자를 낸 제천화재·밀양화재 등 안타까운 참사도 이어졌다. 즉각 현장을 찾아 유가족과 피해자 가족을 위로하고, 범정부 차원에서 총력 대응에 나설 수 있도록 발 빠르게 앞장섰다. 하지만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부처의 수장인만큼 쏟아지는 비난은 감내해야 했다.

최근까지 불거졌던 대구시장 출마설 역시 그를 자주 곤혹스럽게 만든 일 중 하나다. 수차례 고사했음에도 당내 ‘차출설’이 연이어 제기됐다. 13일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만난 김부겸 장관은 “아직 장관으로서 할 일이 많이 남았다”는 말로 불출마 표시를 갈음했다.

유난히도 추워서 길게 느껴졌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장관 2년차를 맞은 그의 표정도 봄바람이 스민 듯 조금은 여유가 느껴진다. 그러나 봄은 그리 길지 않다. 문재인정부의 핵심 추진정책인 지방분권 개헌, 정부 혁신 등 현안 과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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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13일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지방분권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김 장관은 “저출산이나 일자리, 양극화 문제와 같이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지방분권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말했다. 이재문 기자


―취임 후 다사다난했던 9개월이다. 소회가 있다면.

“정부 조직개편을 시작으로, 자치분권 종합계획 발표, 정부혁신 추진 등 문재인정부 주요 국정과제의 초석을 다지기 위해 매진한 시간이었다.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한 포항지진, 제천·밀양화재 등 재난·재해가 지난해 말부터 이어지면서 눈코 뜰새 없이 현장에서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가득하다. 유가족분들, 터전을 잃으신 분들을 만나 위로할 때마다 안타까움이 컸다. 빠른 조처를 하려고 전력을 다했다고 생각하지만 국민이 보시기에 부족하다고 느꼈을 수 있을 것이다.”

―국가안전대진단이 2주 연장됐다. 최근 화재 참사들을 보면 안전의식의 문제도 있지만, 스프링클러와 같은 시설 미비 부분도 드러났다. 시설을 갖추려면 민간에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안전진단을 통해 문제점을 찾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해 기한을 연장했다. 범정부적으로 모든 행정역량을 쏟아붓고 있다. 안전을 확보하려면 적절한 시설물이 필요한데 지금까지 이를 비용으로 인식한 것 같다. 이제는 안전에 소요되는 비용을 투자의 개념으로 바라봐야 한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의 손실을 감안하는 보험적 성격의 투자를 넘어 자신과 이웃의 생명 그 자체에 대한 투자다. 매년 안전관리 우수 다중이용업소를 선정해 화재배상책임 보험료율 할인, 소방교육 면제 등의 인센티브를 부여하는데 부족한 측면이 있다. 건물주가 소방안전시설 확보에 적극 투자할 수 있도록 세제지원, 보조금 등의 유인책을 관계 부처와 함께 고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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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헌법특위에서 지방분권 부분이 포함된 정부 개헌안이 나왔고, 오늘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이제 한 발 뗀 것 같은데 여전히 국회 개헌안은 진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6월13일 개헌 투표는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관제 개헌 얘기까지 나오는데, 아시다시피 정부안과 국회안을 섞는 안은 없다. 국회 개헌안을 합의하면 정부안을 철회하겠다는 것 아닌가. 국회에서 합의하지 않으면 국민투표에도 부칠 수 없다는 얘기다. 정세균 국회의장께서도 말씀하셨지만 6·13 지방선거와 함께 투표하는 게 문제라면 개헌안은 합의하고, 개헌 투표 시기는 여야가 타협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겠나 생각한다. 그만큼 지방분권은 시급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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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분권에 대한 얘기가 꾸준히 나오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국민이 더 많은 것 같다.

“국민은 지방분권이 다소 어렵고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주제라고 느끼실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은 알아도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시스템을 알기는 어렵다. 마찬가지로 집행하면 바로 효과가 나타나는 다른 정책과 달리, 지방분권은 그런 정책이 실행되는 시스템과 기반을 새롭게 만들고 다지는 일이다. 그래서 국민께서 체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러나 제품의 질이 생산방식이나 시스템에 의해 좌우될 수 있듯이 현재 우리가 직면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정운영의 시스템과 방식을 바꿔야 한다. 최근 새로 개통한 상주∼영천고속도로를 지나가면서 인근 마을들을 둘러봤다. 사람을 보기가 어렵다. 면사무소 인근에 식당, 다방이 없어진 지 오래됐다. 지방에 먹고살 게 없으니 사람이 없고, 사람이 없으니 식당도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30년 안에 지방 읍·면·동 40%가 사라진다고 하는데 저는 그 시기가 더 빨리 온다고 본다. 저출산을 극복하고자 정부가 10년 동안 100조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었지만 합계출산율은 요지부동이다. 양극화나 일자리와 같은 다른 문제에도 정부의 정책이 맥을 못 춘다. 돈·정보·사람·기회가 (수도권에) 집중되어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중앙정부가 혼자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접근은 이제 한계다. 이런 방식으로는 지역마다 가진 다양한 창의성과 열정이 발휘될 수 없다. 지역 실정에 맞고 주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맞춤전략도 나올 수 없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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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분권의 핵심은 재정분권이다.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현재 8대2에서 7대3, 장기적으로 6대4까지 가져가는 논의는 어디까지 왔나. 국세가 지방세로 많이 이양되면 수도권만 득을 보게 돼 오히려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2월까지 나온다고 했던 재정분권 종합대책도 아직인데.

“6대4로 가려면 사실 우리나라 조세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지금처럼 지역 편차가 워낙 큰 상황에서는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아직은 조심스러운 얘기다. 우선 정확하게 7대3은 아니더라도, 7대3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맞추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게 20조원이나 된다. 지역 간 편차 문제는 당연하다. 핵심은 결국 부자 동네에서 비싼 부동산을 가지고 거기서 얻어지는 자산의 불평등이 이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 아닌가. 종부세만으로는 안 된다. 잘사는 지역이 못사는 지역을 지원하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하려고 하는데, 그냥 하면 저항이 크다. 선동 정치가들이 ‘우리 돈이 시골로 들어가고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 않나. (웃음) 그래서 독일처럼 지방정부 간에 이러한 부분에 대해 연대책임을 지도록 헌법에 못을 박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중앙과 지방이 세원을 공유하는 ‘공동세’ 개념도 들여와야 하고, 교부세 기능도 정부가 가지고 있어야 한다. 지역상생발전기금이나 고향세 도입도 같은 맥락이다. 재정분권 종합대책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 조만간 대통령 보고가 끝나면 정부 안이 나올 것이다.”

세계일보

―최근에 거세게 일고있는 미투 운동을 어떻게 보나. 내부망에 ‘사생활에서부터 마초 근성을 버리지 못했던 것을 반성한다’는 글도 올렸다.

“미투 운동이 본격화한 게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찬반 양쪽의 논쟁이 벌어지고, 진영논리나 음모론까지 나온다. 제가 이 분야의 전문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수준으로는 안 된다고 본다. 지금까지 우리가 가볍게 봤던 것들 또는 우리가 지금까지 의식하지 않았던 남성 중심의 문화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부끄럽게도 이 문제가 사회적 강자였던 남성들이 아닌 여성들로부터 먼저 나왔고, 문제 제기 자체가 엄청난 개인적인 용기를 내야만 가능했던 것으로는 ‘안 된다’, ‘이래선 바뀌지 않는다’고 해서 이 운동이 터졌다고 본다. 촛불혁명으로 정권을 교체한 나라이지만 지금까지 이러한 일종의 적폐를 가지고 있던 셈이다. 우리나라도 성인지와 관련한 교육도 하고 있지만 결국 근본적인 것을 건드리지 못했다는 얘기다. 당장 되지는 않겠지만 이런 문화가 바뀔 때가 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제가 딸만 셋인데 최근에 딸들에게도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부겸 장관은

●1958년 경북 상주 출생 ●경북고 ●서울대 정치학과 ●연세대 행정대학원 석사 ●16·17·18·20대 국회의원 ●민주당 수석 부대변인 ●열린우리당 원내수석부대표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행정안전부 장관

대담=박찬준 사회2부장, 정리=이정우 기자 woo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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