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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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김명남 옮김, 창비 펴냄)
[김기철의 책으로 세상읽기-27] "책은 읽어서 뭐하나"하는 자괴감이 몰려들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때문이다. 충청남도청사 5층 복도 '도지사가 추천하는 책' 코너에는 안희정 전 지사가 추천한 두 권의 책이 놓여 있다. 한 권은 스테퍼니 스탈의 '빨래하는 페미니즘'이고, 한 권은 리베카 솔닛의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이다. 모두 페미니즘 명저로 꼽히는 책이다.
이뿐 아니다. 안희정은 진짜 '페미니스트'처럼 행동했다. 그의 저서 '콜라보네이션'은 "2016년 1월 여성과 소수자 관점에서 도정을 재점검하기로 했다" "인권과 여성 문제는 강물이 바다로 나아가듯 인류 역사가 흘러 도착한 곳이다" 등 멋진 표현으로 가득하다. 안희정 전 지사는 자신의 성폭행 사실이 폭로되던 당일 낮에는 '미투(Me Too)운동'을 지지하는 강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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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있는 남자들을 볼 때면 이런 생각을 해본다. "저 사람들이 만약 입사 면접관 앞에서는 어떤 자세로 앉을까."
아마도 다리를 있는 힘껏 오므리고 앉을 것이다. 오므리는 힘의 크기는 지하철에서 다리를 쩍 벌린 각도에 비례할 것이다. 그들은 분명 '권력 관계에 예민하고' '권력 관계에 따라' 행동 방식을 정하는 종류의 인간들일 테니까.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본다. 아랫사람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일수록 윗사람들에게 아부를 잘한다. 그들 역시 권력 관계에 예민하니까 그렇다. 성폭행 가해자들도 이런 지하철 쩍벌남들의 습성과 비슷하다. 자신보다 힘의 크기가 작은 존재 앞에서 다리를 벌리듯 성적인 폭력을 행사한다.
곪았던 고름이 터지듯 매일매일 이어지고 있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고백들도 이를 증명한다. 특히 '미투운동'으로 드러나고 있는 성적 폭력에는 이중의 권력관계가 작동한다. 하나는 상하 권력관계이고 하나는 젠더(gender) 자체에 내장된 권력관계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성별은 이미 존재하는 권력관계의 효과이며 새로운 권력관계를 생성하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급진적인 페미니스트 운동가인 로절린 벅샌덜(1939~2015)이 죽었을 때 시카고의 비영리 좌파 정치시사 전문 출판사 '헤이마켓북스(Haymarket Books)는 추모의 관용구 R.I.P(Rest In Peace) 대신 "Rest In Power"라는 표현으로 로절린 벅샌덜의 삶과 죽음을 기렸다. 남녀평등의 실현은 젠더에 내포된 권력관계의 종식(Rest in Power)이라는 점을 R.I.P에 담은 셈이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진보세력 내부에서 성범죄가 반복되는 배경에도 '이중의 권력관계'가 놓여 있다. 그들도 '젠더 자체에 내장된 권력관계'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투운동은 어디를 향해야 하는 걸까? 바로 'R.I.P(Rest In Power)'다. 젠더에 내포된 권력관계를 끝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페미니트스가 돼야 한다. '책은 읽어서 뭐하나'는 자괴감이 들지만 책에는 죄가 없다. 그래도 읽어야 한다. 읽고 실천해야 한다.
지난해 `타임`지는 `올해의 인물`로 `미투(Me Too)운동`을 이끈 여성들을 선정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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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는 나이지리아 출신의 소설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TED 강연을 묶은 책이다. 동영상 강연이었던 만큼 이해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의 성평등 국가인 스웨덴 청소년의 성평등 교육 교재로 활용될 만큼 질적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페미니스트'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사람들조차 거부감이 들지 않게 친절하게 페미니즘의 세계로 안내한다는 점이다. 양성평등이 가장 잘 이루어진 나라로 꼽히는 스웨덴에서 이 책을 청소년의 성평등 교육 필독서로 선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아다치에가 친구에게 '페미니스트'라고 고백했을 때 그 친구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일컫는 것은 남자를 미워한다는 뜻"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것이 어쩌면 대부분의 남자들이 '페미니스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다.
"페미니스트는 남자를 싫어하고, 브래지어도 싫어하고, 아프리카 문화를 싫어하고, 늘 여자가 우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화장을 하지 않고, 면도도 하지 않고, 늘 화가 나 있고, 유머감각이 없고, 심지어 데오도란트도 안쓴다는 거지요."(14쪽)
하지만 아다치에는 당당하게 '페미스트'라고 밝혀야 할 뿐 아니라 '모두가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페미니스트'라는 의미는 '나는 민주주주의자다' '나는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다'는 말과 같은 무게감을 지니는 말이기 때문이다. 남녀 차별의식은 우리의 말 속에도 이미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남자와 여자가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그랬어"라는 말은 한다면 남자가 이 말을 하는 의미와 여자가 이 말을 하는 의미는 전혀 다르다.
"남자들이 그 말을 할 때는 보통 어차피 해서는 안 되는 무언가를 포기한 경우입니다. 남자들은 짐짓 부아가 난 척하면서, 사실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남성성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 우리 마누라가 매일 밤 클럽에 가는 건 안 된다고 하잖아. 그래서 이제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주말에만 가기로 했어.' 반면에 여자들이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라고 말할 때는 보통 직장이나 경력이나 꿈을 포기한 경우입니다."(35쪽)
곪은 상처처럼 뒤늦게 '미투운동'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자로부터 성폭행을 당했을 때도 그 책임을 '여자'에게 돌리는 사회적 분위기에 피해자들이 억눌려왔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우리가 그동안 여자들에게 '수치심'과 '죄의식'을 가르쳐왔기 때문에 형성됐다.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수치심을 가르칩니다. 다리를 오므리렴, 몸을 가리렴.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여자로 태어난 것부터가 무슨 죄를 지은 양 느끼게끔 만듭니다."(37쪽)
아이 때만 그러는 것도 아니다. 커서도 여자들에게 자신을 움츠리라고, 자신을 위축시키라고 가르친다.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야망을 품는 것은 괜찮지만 너무 크게 품으면 안 돼. 성공을 목표로 삼아도 괜찮지만 너무 성공해서는 안 돼. 그러면 남자들이 위협을 느낄 테니까. 설령 남자와의 관계에서 네가 가장 노릇을 하더라도, 사람들 앞에서는 특히 그렇지 않은 척해야 해. 안 그러면 남자가 기가 죽을 테니까."(31쪽)
그런 교육과 문화 안에서 사실 여자뿐 아니라 남자도 피해자다. 여자와의 데이트 비용을 내야 한다는 부담감, 여자를 리드해야 한다는 압박감, 결혼할 때 살 집은 남자 쪽에서 준비해야 한다는 중압감, 식구를 먹여살려야 한다는 책임감 등등 사회가 요구하는 '남자다움' 이 남자를 불행하게 만든다. 남자와 여자 모두를 행복해지기 위해서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아디치에가 생각하는 페미니스트는 이런 것이다.
"남자든 여자든, 맞아, 오늘날의 젠더에는 문제가 있어, 우리는 그 문제를 바로잡아야 해, 우리는 더 잘해야 해, 라고 말하는 사람이라고요. 여자든 남자든, 우리는 모두 지금보다 더 잘해야 합니다."(52쪽)
세계적으로 유명한 셰프들은 대부분 남자다. 대부분의 가정의 부엌은 여자들이 지키고 있는데 유명 레스토랑의 주방은 남자들이 점령하고 있다. 이를 두고 "원래 남자가 요리를 더 잘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요리를 남자가 더 잘하지도 여자가 더 잘하지도 않는다. 요리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 있고 재능이 없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유명 요리연구가나 푸드스타일리스트는 대부분 여성이다.
같은 요리의 세계에서 일을 하더라도 남자들은 셰프가 되고 여자들은 주로 요리연구가나 푸드스타일리스트가 된다. 그것은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유전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셰프는 권력관계 속에서 일을 한다. 직접 요리를 하기 보다는 권력을 쥐고 다른 사람들을 지휘하는 것이 셰프의 주요 역할이다. 반면 요리연구가는 혼자서 요리를 개발하고, 푸드스타일리스트는 다른 사람의 요청에 따라 일을 한다. 요리의 세계에서 활동하는 여성이 셰프가 되지 못하는 것은 다른 분야에서 여성이 고위직에 오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사회적으로 제도적으로 여성이 '권력'을 쥐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결정하는 것은 유전자가 아니라 사회와 문화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사회를 양성평등 사회로 만들 수 있다. 사회와 문화를 만드는 것은 바로 우리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문화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문화를 만듭니다. 만일 여자도 온전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정말 우리 문화에 없던 일이라면, 우리는 그것이 우리 문화가 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만들 수 있습니다."(49쪽)
[김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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