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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목)

[시론] 장준상 북한 보건상께-또 하나의 북한 핵 / 신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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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신영전
한양의대 예방의학 교수


저를 기억하시는지요? 우리는 지난 2010년 2월 뉴델리 세계보건기구 동남아시아 본부에서 남북 영유아 사업 때문에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곳 남쪽은 봄기운이 완연합니다. 요즘 사람들이 모이면 평창올림픽과 4월 말에 있을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저도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에 영구적인 평화가 깃들길, 무엇보다 핵 문제가 잘 해결되길 소원합니다. 하지만 한반도에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핵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결핵 문제입니다.

2017년 세계결핵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결핵환자는 13만명에 달해, 결핵으로 인한 질병 부담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30개국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1차 결핵 치료에 실패해 생기는 다제내성 결핵(MDR-TB) 역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북쪽 의사들은 기존의 결핵약이 듣지 않는 결핵 환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왔고, 결핵약이 장마당에서 ‘입맛 나는 약’으로 너무 쉽게 팔리고 있습니다. 최근 한 조사에서도 북쪽 일부 결핵요양소 환자들은 이소니아지드와 리팜피신이라는 대표적인 결핵약에 각각 93.4%, 77.0%의 내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마디로 기존 결핵약으로는 치료가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보다 큰 문제는 현재 부분적으로 유입되고 있는 2차 결핵 항생제의 부적절한 사용으로 이에 대한 내성을 가진 ‘슈퍼내성(XDR) 결핵’ 환자도 생겨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관리체계가 없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슈퍼내성 결핵은 결코 북쪽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남쪽에도, 아니 전 세계적으로도 실로 핵만큼이나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러한 결과는 그간 결핵 관련 통계와 관리 정책에 전면적인 개편을 요구합니다. 그동안 대규모로 이루어졌던 남북 간 결핵교류 사업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좋은 뜻으로 전한 결핵약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현재 결핵 신약 개발을 빌미로 북쪽에서 시행되고 있는 임상시험도 다국적 제약회사의 이해에서 자유로운 전문가의 면밀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2월21일, 7년간 1억300만달러(약 1500억원)를 들여 북쪽 결핵과 말라리아 사업을 지원해오던 글로벌 펀드가 사업 종료를 선언했습니다. 더욱이 이번 세계결핵보고서는 북쪽의 다제내성 결핵환자가 많은 원인의 48%가 만성적인 영양부족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최근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는 다제내성 결핵환자의 만연이라는 비인도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장준상 보건상님.

결핵사업처럼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사업은 정부와 전문가, 그리고 국제적 협력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특정 소규모 민간단체에 맡길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닙니다. 다행스럽게도, 예전에 만난 북쪽 현장 보건일꾼들의 정성과 헌신을 잘 알고 있습니다. 더욱이 남쪽에는 결핵에 관한 한 미국을 비롯한 어떤 나라보다 경험과 실력이 출중한 최고의 전문가, 전문 시설, 장비가 있습니다.

4월 말 남북정상회담 때까지 기다릴 것도 없이, 우리 남북의 결핵 전문가들이 먼저 남북 ‘핵’ 문제 해결을 위한 회의를 개최합시다. ‘결핵’(結核) 회담 말입니다. 이 시간에도 결핵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생각하면, 이는 하루가 급한 사안입니다. 북쪽의 ‘통 큰’ 결단과 신속한 답장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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