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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 (수)

[글로벌포커스] 사우디 원전 건설의 정치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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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석유 대국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자력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32년까지 원전 16기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이다. 방대한 영토에 산재한 여러 도시에 전력을 공급하는 소규모 스마트원전 건설이다. 전력을 생산하는 데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려는 목적도 담겼다. 올해 말까지 원자로 2기를 건설하는 데 200억달러의 계약을 추진하고 있다. 4월 중에는 두세 개 업체를 예비사업자로 선정할 예정이다. 한국을 포함해 미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 업체가 경합하고 있다.

그런데 이를 둘러싸고 미국과 이스라엘 간에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 최근 미국을 방문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강력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까지 찾아가 절대 불가함을 강조했다. 갈등의 핵심은 '우라늄 농축 허용' 여부다. 대규모 공사 수주를 위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사우디의 우라늄 농축을 허용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팽배해지면서다. 이미 릭 페리 미국 에너지부 장관이 지난해에 이어 2월 말에도 사우디를 방문해 양국 간 에너지 협력을 논의했다.

이스라엘의 입장은 명확하다. 자국의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중동 내 우라늄 농축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라늄 농축 권한을 인정한 이란과의 핵협상을 반발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란과 핵협상을 타결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이스라엘의 관계는 사상 최악이었다. 이란 핵협상 파기를 언급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캠페인에 이스라엘과 미국의 유대 로비 세력은 강력한 지지를 보냈다. 더불어 아랍과 이슬람 국가에 둘러싸인 자국의 안보 현실을 고려해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려고 한다. 첨단 재래식 무기는 물론 이미 원자로를 수십 년 전부터 가동해 핵탄두 200여 기에 필요한 고농축 우라늄을 보유하고 있다.

이란에 이어 사우디도 원전을 빌미로 우라늄 농축을 시작하면 중동 내 핵개발 경쟁이 본격화할 것이라고 이스라엘은 우려한다. 주변국이 핵무기 생산 능력을 갖추게 되면 이스라엘의 군사적 우위는 크게 희석된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추구하는 것은 '아부다비 모델'이다. 2009년부터 한국과 협력해 원전 건설을 시작한 아부다비는 한국과 일본의 사례를 따랐다. 미국과 원자력협정도 체결했다. 연료봉 생산을 위한 우라늄 농축과 사용 후 연료 재처리를 포기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반면 사우디는 우라늄 농축 권한을 요구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급증하는 전력 수요에 대비하고 원유 의존도를 낮추며 원유 수출이 증대하는 등 원전 건설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중동 내 패권 경쟁자 이란을 견제하려는 역내 정치적 목적도 숨기지 않고 있다. 사우디 정부는 이란이 우라늄 농축을 하는 상황에서 자국의 농축 권한도 당연히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 어려운 결정을 앞두고 있다. 이란 핵협상을 불인증할 정도로 이란의 핵개발에 반대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사우디·이스라엘 안보전략벨트도 구축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규모 무기수출 계약을 체결하면서 사우디의 안보에 긍정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더불어 미국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까지 선언할 정도로 친이스라엘 성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200억달러의 대규모 원전 건설 계약도 포기하기 어려운 경제적 이해다.

사우디의 원전 건설에는 복잡하고 미묘한 정치역학이 작용한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1일부터 사우디를 방문하고 있다. 원전 건설을 담당하는 칼리드 알팔리흐 에너지산업광물자원부 장관도 만났다. 가격과 기술 경쟁력을 갖춘 한국 기업이 사우디 원전을 수주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권위주의적 의사 결정 구조를 가진 중동 국가에서는 고위층 결정권자와의 인맥 구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중동의 정치역학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의 향후 행보에도 면밀한 검토와 분석, 사전 논의가 필요하다. 사우디 원전 건설은 아부다비 사례와 크게 다르다.

[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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