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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 (수)

[필동정담] 조용필 데뷔 5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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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때 얘기다. 부서 배정 후 첫 회식 자리가 노래방으로 이어졌다. 막내인 내가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조용필의 '비련'을 불렀다. '아 눈물은 두 뺨에 흐르고 그대의 입술을 깨무네 용서하오 밀리는 파도를 물새에게 물어보리라~.' 2절까지 부르기에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1절에서 끊고 자리에 앉으니 최고참 선배가 물었다. "난 뭘 부르란 얘기냐?" '18번'은 '창밖의 여자'지만 선배들을 위해 남겨뒀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올해 데뷔 50주년을 맞은 가수 조용필이 5월 12일 서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 공연을 시작으로 전국 투어에 나선다는 소식을 접하고 19년 전 그 기억이 떠올랐다. 갓 입사한 신출내기가 그때 이미 데뷔 31년 차를 맞은 '가왕'의 노래를 선곡했으니 선배들도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그 후로 후배들과 어울려 노래방에 갈 일이 여러 번 있었으나 조용필 노래를 부르는 후배는 만나지 못했고 내 몇 안되는 선곡을 빼앗길 일도 없었다.

주변에 자칭 조용필 마니아들이 있다. 대부분 중년 이상 나이에 제법 하는 노래 실력들이다. 레퍼토리는 조용필 발표 전곡을 아우른다. 이들 모임에 끼면 '조용필 노래만 선곡' 조건이 붙을 때가 많다. 난 마니아가 못된다. 조용필의 정조를 살릴 만한 가창력이 못되고 부르는 노래는 '창밖의 여자' '비련'을 포함해 4~5곡이다. 그럼에도 줄창 이들 노래만 해왔다. 20년 노래방 인생에서 조용필 이외 외도를 한 가수는 딱 한 명뿐이다.

조용필은 잘하는 노래지만 미성은 아니다. 그의 쥐어짜는 듯한 탁성이 우리 인생의 질감에 닿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나풀나풀대는 발라드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남이 듣거나 말거나 제 흥에 취해 부르다 보면 '한오백년 사자는데 웬 성화요' 같은 기분이 된다고나 할까. 기자 생활을 하면서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 3명 있었다. 조용필은 그중 한 명이다. 음악 문외한인 내가 그를 인터뷰할 일은 앞으로도 아마 없을 것이다. 대신 내 주변 팬을 대표해 인사를 전한다. 데뷔 50주년을 축하한다. 당신 노래를 빌려 우리 인생의 리듬과 색조를 구할 때가 많았다. 아마 조금은 더 행복해졌을 것이다.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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