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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 (수)

[World & Now] 2인자의 생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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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지난 5일 오전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 이날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개막식에는 중국 각지에서 온 전국인민대표와 내외신 취재진 수천 명이 참석해 장사진을 이루는 진풍경을 자아냈다.

양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전국인민대표대회)는 중국 최대 정치 행사라는 점에서 매년 중국 안팎의 큰 주목을 끈다. 하지만 올해 양회는 시진핑 주석의 장기 집권을 가능케 하는 개헌 작업과 맞물리면서 이목을 더욱 집중시켰다.

오전 9시 정각에 시작된 행사는 중국 국가 제창에 이어 곧바로 개막식 하이라이트인 리커창 총리의 정부업무보고가 진행됐다. 현장에서 리 총리가 1시간 47분 동안 보고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봤다. 그는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은 (중략)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에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며 '시 주석 띄우기'에 열을 올렸다. 보고에서 '시진핑 사상'과 '시진핑 핵심'을 각각 다섯 차례, 여섯 차례나 언급했다.

이날 리 총리는 유독 긴장하는 것 같았다. 발표 도중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는 모습도 포착됐다. 절대 권력을 손에 쥔 시진핑과 국가 부주석으로 내정된 왕치산 전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 자신의 실질적 역할을 대신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 주석의 '경제책사' 류허 중앙재경영도소조 주임 등을 의식하는 것 같았다. 리 총리의 발표 직후 당 중앙위 중앙위원들은 부주석으로 화려하게 복귀할 왕치산 전 서기와 악수를 나누기 위해 줄을 섰다. '2인자'인 리 총리에게 눈길을 주는 사람은 드물었다. 철저히 소외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총리직이 유임된 이상 시진핑 계열 인사와 계속 접촉해야 하고, 절대 권력자에게 비위를 맞춰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리커창의 스승 리이닝 베이징대 광화관리학원 명예원장은 과거 기자에게 "리 총리는 바른 말을 잘하고, 명석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그런 그가 충언을 삼가는 '전략적 침묵'을 선택했다. 지난 11일 주석 연임 제한 규정을 삭제하는 개헌안이 99.8%의 찬성률로 통과되며 시 주석의 절대권력 기반이 마련됐다. 시진핑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으려는 행보는 리커창뿐만 아니라 2인자를 꿈꾸는 모든 이에게서 뚜렷하게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사기 유후세가'에는 '충언역이(忠言逆耳)'라는 성어가 나온다. '충직한 말은 귀에 거슬린다'는 의미다. 역사적으로 '비위 맞추기' 문화가 팽배했던 조직(나라)은 끝이 좋지 못했다. 생존을 위해 전략적 침묵을 하는 2인자들은 시 주석을 향해 암묵적 항의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베이징 = 김대기 특파원 daekey1@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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