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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 (화)

[기자24시] 정치인 안희정과 피의자 안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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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도지사'에서 '피의자'로 전락하기까지는 이틀이 걸리지 않았다. 그의 수행·정무비서였던 김지은 씨가 안 전 지사를 성폭행 가해자로 지목하며 '미투(#me too)'에 동참한 건 지난 5일. 이튿날인 6일 안 전 지사는 지사직에서 물러나면서 '전 지사'가 됐다. 같은 날 김씨가 고소장을 제출한 사건이 이튿날인 7일 여성아동범죄조사부에 배당되면서 안 전 지사는 '피의자 안희정'이 됐다.

하지만 피의자 안희정이 7일 이후 이틀 넘게보여준 태도는 그가 자신을 '피의자 안희정'이 아니라 여전히 '정치인 안희정'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안 전 지사는 당초 예고했던 8일 기자회견을 돌연 취소했다. "검찰에 출석해 수사에 성실하게 협조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한다. 검찰은 한시라도 빨리 저를 소환해 달라"고 해명했다. 정치인이 아니라 피의자로서 성실히 검찰 수사에 임하겠다는 일말의 기대감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9일 안 전 지사가 서울서부지검에 자진 출두하면서 일말의 기대는 실망감으로 굳어졌다. 출두를 100분 앞두고 자진 출석 의사를 검찰과 언론에 일방적으로 통보하기도 했다. 국민·도민에 대한 예의를 떠나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부여잡고 있을 피해자에 대한 배려조차 찾아볼 수 없는 실망스러운 처사다.

안 전 지사의 기습 출두로 같은 시각 검찰에서 피해자 조사를 받고 있던 고소인과 피의자가 동시에 검찰 조사를 받는 이례적 모습이 연출됐다. 성폭력 사건에서는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공간 분리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검찰이 조사 일정을 조율해서 소환 통보를 한다.

하지만 안 전 지사는 이러한 원칙과 관행을 가볍게 무시했다. 같은 날 북·미 정상회담이 가닥을 잡았다는 소식이 주요 매스컴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타이밍을 전략적으로 활용한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까지 가능할 정도였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검찰 수사를 성실히 받겠다"는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계산된 행보로 정치꾼 행태를 보인 안 전 지사에 대한 실망감이 국민 사이에 증폭되고 있다.

이 문제를 바로잡는 것은 검찰 몫이다. 정치인 출신 안희정이 아니라 오로지 피의자 안희정으로서 안 전 지사를 대접해야 한다. 안 전 지사 언행이 '거취'나 '행보' 같은 표현으로 포장돼선 안 된다.

[사회부 = 양연호 기자 yeonho8902@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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