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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 (수)

[매경춘추] 내 친구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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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그녀가 환하게 미소 짓는다. 웃는 얼굴로 스케이팅하는 모습 뒤로, 그녀가 지금까지 흘린 땀방울이 약 13t이라는 멘트가 흘러나온다. '빙속 여제' 이상화의 땀을 응원한다는 내용의 섬유 유연제 CF 한 장면이다.

그런 그녀가 흐느끼며 운다. 관중들은 열광적으로 환호하며 격려했지만 그 눈물은 멈출 줄 모른다. 그녀를 이긴 일본 선수 품에 기대어서도 눈물을 흘린다.

늦은 저녁을 함께하며 지켜보던 친구 입에서 '아아…' 하는 장탄식이 흘러나온다. 한동안 멍하니 그렇게 있다가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고쳐 앉는다. 좀처럼 자기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녀석이다. 민망했을 게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내 앞에서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으니까. 사실 그 친구가 먼저 그렇게 해주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가슴 한쪽이 찡해오면서 살짝 숨소리가 떨려오던 차에 괜히 젓가락을 들어 애꿎은 반찬만 슬쩍 뒤적이던 나였으니까. 잠깐의 어색한 시간을 만든, 내 친구의 눈물은 어떤 의미였을까. 울컥함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사실 그녀는 승자와 패자가 나뉘는 이 냉혹한 승부의 장에 다시 등장하지 않아도 됐다. 선수로서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영광들을 이미 누린 그녀였다. 메달 하나 따기 힘든 올림픽에 두 번의 금메달로 최정상에 섰다. 누구나 인정하는 세계 기록 보유자로 존경받으며, 느긋한 은퇴 후 삶을 누릴 위치였다. 그런데 기어이 그 무대에 다시 섰다. 부상에 시달리고 기록이 떨어진 후에는 금메달을 또다시 따내기는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나 같은 범인(凡人)이 감히 하지 못할 결단을 했다.

운동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땀방울, 이 세 단어의 무게를 안다. 부상 경험이 가져다 준 두려움 속에서도 백 분의 일 초를 다투는 승부처에 자신을 극단으로 몰아붙이며 이를 악물었을 것이다. 아마 그 고통의 시간을 내면에 새겨진 '나의 존재 이유'라는 단어 속에 꾹꾹 눌러 담아 나갔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의 눈물 속에는 13t의 땀 이상의 무언가가 담겨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응축되어 있던 것들이, 무대 위 시간이 끝나는 순간 '타악' 하고 터져버린 것이었으리라.

지켜보는 국민 모두의 가슴 한쪽을 눌러오던 그녀 눈물의 무게감. 내 친구가 흘린 눈물과 울컥함은 그 묵직한 무게를 이기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창록 법무법인 율촌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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