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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 (수)

IT만 스타트업?…식품업계도 `잡스式 혁신`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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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품산업 새바람 푸드테크 2.0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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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창업 모임 '벤처네트워크' 출신 청년 4명이 2013년 푸드 스타트업 인테이크를 설립했다. 1인 가구 증가에 맞춰 간단히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일명 '미래 식사 개발'에 주목했다. 1년 뒤 이 회사는 분말을 물에 타 먹는 대용식 제품 '밀스'를 출시했다. 기존 생식 제품은 맛보다 건강을 강조해 고령층 음식이란 인식이 컸지만 밀스는 가루를 병에 넣어 편의성을 높였고 코코넛과 딸기 등 2030세대가 선호하는 맛을 살렸다. 올리브영, CU 등 대형 유통업체에서 러브콜을 받아 제품 출시 3년 만인 지난해 매출 60억원에 이어 올해는 2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인테이크는 1월 초 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와 동아쏘시오그룹에서 38억원을 투자받았다.

성장 정체에 빠진 식품업계에 변화 바람이 거세다. 정보기술(IT) 분야에 한정될 것 같은 스타트업이 식품 산업에서 나오고 있고 온라인 유통혁명을 통해 공급 가격을 줄이는 것이 요체다. 2016년 12월 서울시가 농식품 유망 스타트업 발굴·육성을 위해 설립한 '서울먹거리창업센터'는 지금까지 45개 업체가 거쳐갔다. 누적 매출액은 85억원으로 국내외 투자 협약도 93건이나 체결됐다.

한국푸드테크협회에 따르면 연 매출 50억원이 넘는 푸드 스타트업은 30여 개에 달한다. 또 외식과 식품 제조에서 정보통신기술(ICT)과 접목할 수 있는 푸드테크 시장 규모는 200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강병오 중앙대 교수는 "식품 산업도 ICT에 기반한 4차 산업혁명에 적합한 분야가 되고 있다"면서 "스타트업이 등장하고 온라인 유통이 개선돼 낙후된 식품·외식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푸드 스타트업 활약이 절실한 이유는 전통 식품 산업 규모가 인구 감소, 정부 규제, 치열해진 경쟁 등으로 매년 쪼그라들고 있기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국내 전체 산업에서 식품 업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4년 3.33%에서 2015년 2.98%로 떨어진 뒤 2016년엔 2.92%까지 낮아졌다. 부진한 식품 업계에 활력을 키우기 위해 스타트업을 통한 '젊은 피' 수혈이 필요한 것이다.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푸드 스타트업은 기존 업체가 놓치고 있는 틈새시장을 공략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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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설립된 스타트업 밀리밀은 쌀을 로스팅해 음료로 만들거나 쌀가루를 활용한 대용식을 만든다. 직원이 세 명뿐인 이 회사는 매출은 적지만 쌀로 만든 음료와 대용식을 통해 쌀 소비를 촉진하겠다는 작은 포부에서 출발했다. 분명한 목표 의식과 기술력을 눈여겨본 하이트진로는 2016년 '청년창업리그'를 통해 밀리밀을 발굴했다. 청년창업리그는 매해 10팀 정도를 선발하는데 팀당 창업 자금 2000만~3000만원을 지원하고 작업 공간도 마련해준다. 하이트진로는 홍대에 밀리밀 팝업스토어를 오픈해주기로 했다. 자회사인 하이트진로음료와 밀리밀 간 협업으로 시너지 효과를 내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해외 진출에 적극적인 하이트진로는 최근 쌀 음료가 미국과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급성장하고 있다는 점을 계기로 밀리밀과 협업에 나서게 됐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갖춘 스타트업을 활용하면 기성 업체들이 틀에 갇힌 사고를 깨는 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이미 미국, 유럽 등에선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식품 스타트업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미국 경제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2012~2016년에 생긴 스타트업 가운데 기업 가치 10억달러(약 1조730억원)가 넘는 '유니콘' 스타트업 상위 15곳 중 2곳이 식품업체다. 대체식품 개발 말고도 로봇이나 3D 프린터로 음식을 제조하는 스타트업까지 생겨났다. 식물성 원료로 고기를 만드는 '임파서블푸드'와 '비욘드미트'가 대표적이다. 육즙과 맛 등을 실제 육류와 거의 유사하게 구현해냈다.

정부도 푸드 스타트업 키우기에 나서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주도로 지난해 국가식품클러스터 '푸드폴리스'가 완공돼 스타트업에 사업 공간과 마케팅, 패키징 기술 등을 컨설팅해주는 것이 대표적이다. 전북 익산에 위치한 푸드폴리스에는 현재 32개 푸드 스타트업이 입주해 있다. 하지만 서울과 거리가 있어 입지 경쟁력이 떨어지고 스타트업이 가장 필요로 하는 자금 지원에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외식 사업 전반을 상대로 컨설팅과 멘토링을 해주고 있지만 식품 스타트업만을 위한 별도 지원 방안은 내놓지 않고 있다. 식품 스타트업을 위한 벤처투자 제도도 전무하다. 한 식품업체 대표는 "중소벤처기업부나 창업진흥원을 통해 창업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대부분 IT 분야에 자금이 몰린다"면서 "식품 스타트업은 당장 획기적인 성과를 내기 어려워 투자자 관심을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오프라인 중심인 규제도 온라인 기반 푸드테크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예컨대 온라인을 통해 식재료 중개를 하는 업체도 식품위생법에 따른 식품제조업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려면 온라인 회사도 식품 제조 공간을 일정 규모 갖춰야 한다. 안병익 푸드테크협회장은 "가령 육류 중개 플랫폼 회사는 중개 업무만 하기 때문에 별도 사업장이 필요 없지만 현행법상 일정 제조시설을 갖춰야 한다"면서 "시대가 변해 온라인 위주 푸드테크 업체가 늘어난 만큼 법과 규제도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병호 기자 / 이덕주 기자 / 이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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