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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 (수)

[르포] “군산은 개도 만원짜리 안물어간댔는데…” 군산의 GM 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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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조선소 이어 GM공장 마저 폐쇄

-오식도동 원룸촌ㆍ상가 오는 사람없어 ‘텅텅’

-거리 곳곳에 ‘분노’, ‘애원’ 표출, 플래카드

-1899년 개항이후 가장 혹독한 경제 위기


[헤럴드경제(군산)=김지윤 기자] “군산이 전북에서 젤로 잘살았지. 새만금 개발하기 전에는 오징어도, 고기도 잘 잡히고 횟집도 잘됐어. 현대중공업에 GM까지 들어오면서 경기 좋았지요. 오죽하면 군산 개는 만원짜리도 안물어간다고 했다니까…. 이 좁은 바닥에 나이트(클럽)도 6개나 있었어. 근데 요샌 사람이 없어요. 현대, GM 나가고 그 주변 다 텅텅비었어. 오식도동에서 장사하던 사람들, 세놓은 사람들 망했지뭐. 큰일이야 큰일….”

지난 9일 오후 1시께. 전북 군산 택시 안에서 만난 기사 박모(59) 씨는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군산 토박이로서 지역의 흥망성쇠를 몸소 통과한 박 씨는 군산의 얼어붙은 경기를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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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시 오식도동에는 거리 곳곳에 상가임대와 원룸임대 깃발이 펄럭인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에 이어 한국GM 군산공장마저 폐쇄가 결정되면서 떠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사진=김지윤 기자/summer@heraldcorp.com] [텅빈 가게 손잡이에 놓인 단전 경고장(왼쪽)ㆍ굳게 닫힌 가게문앞에 꽂힌 빛바랜 간행물. 사진=김지윤 기자/summ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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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에 사람이 없다.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에 이어 한국GM 군산공장마저 폐쇄가 결정되면서 2연타를 맞았다. 1899년 개항 이후 가장 혹독한 경제위기를 맞고 있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오식도동은 1997년 생산공장을 준공한 한국GM 군산공장이 자리잡은 곳이다. 이곳은 2011년 승용차 26만대 생산을 정점으로 생산량이 줄었다. 지난 3년간 가동률이 20%를 밑돈다. 공장서 3km 정도 떨어진 인근에는 오식도동 상권이 자리잡고 있다. 군산국가산업단지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사는 원룸촌과 식당, 술집 등이 모여 있는 곳이다. 대낮인 1시30분께도 이곳은 오가는 행인조차 보기 힘들었다. 목줄이 풀린 개 한마리만 동네를 유영했다. 가게 앞에는 철지난 고지서가 쌓여있고 중국집, 고깃집 할 것없이 가게 마다 ‘임대’라는 큼지막한 글자가 붙어있었다.

오식도동에서 7년째 해장국집을 운영하는 주인 A 씨는 “현대중공업ㆍGM이 돌아갈 때는 구내식당이 문을 닫으니 주말 장사가 바빴다”며 “24시간 운영하며 야간직원 2명, 낮직원 2명을 썼지만 지금은 부부가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80석 규모의 해장국집은 요즘 점심시간에도 자리가 절반도 채 차지 않는다. 인근의 고깃집 주인 백모 씨도 “저녁 술손님은 아예 없다고 보면 된다”며 “회식 단체 손님을 언제 받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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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식도동의 메인상권. 오가는 행인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썰렁하다. 사진=김지윤 기자/summ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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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고된 노동의 애환을 달랬을 치킨집도, 소주방도 썰렁하다. 탁한 유리 너무 보이는 테이블에는 그릇, 공구 등 구분없는 집기들이 널브러진 모습이 사람의 흔적이 닿은 지 오래됐음을 보여준다.

오식도동 원룸은 500여가구나 된다. 2014~2015년은 원룸의 전성기였다. 한달에 30~40동씩 지어졌고 세입자도 금세금세 들어섰다. 거리엔 활기가 넘쳤다. 그러나 2016년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도크폐쇄설이 돌고 하청업체들이 하나둘 문을 닫으며 오식도동의 근로자들도 떠나가기 시작했다. 인근에서 부동산을 운영하고 있는 B 씨는 “이곳 원룸 50% 이상이 공실”이라며 “500(보증금)에 월세 30만~40만원 하던 방들이 현재 보증금없이 월세 20만원까지 떨어졌다”고 했다. 그마저도 보러오는 사람이 없다. 오식도동의 노른자위라던 메인 상권에는 140평 규모의 상가가 텅 비어있다. 1년전 완공된 건물은 임차인이 단 한번도 들어오지 않았다. ‘군산의 강남’으로 불리던 수송동과 나운동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러한 상황에도 B 씨는 “오식도동에 ‘유령도시’라는 낙인을 찍지 말아달라”며 “GM이 떠나면 이곳을 외국인투자지역으로 지정해 속히 새로운 기업이 들어와 군산에 희망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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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 메모가 붙은 식당(왼쪽)과 텅빈 상가. 사진=김지윤 기자/summer@heraldcorp.com] [군산 오식도동 인근과 시내 곳곳에는 GM공장 폐쇄를 성토하는 플래카드가 눈에 띈다. 사진=김지윤 기자/summ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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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GM 군산공장이 폐쇄되면 실직 위기에 몰린 근로자는 1만2000여명에 이른다. 군산공장 직원 2000여명과 1차ㆍ2차 협력업체 직원 1만여명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 이들의 가족까지 포함하면 약 4만~5만명이 직접적 영향권에 든다는 분석이다. 이는 군산 전체 인구 약 27만명의 20%에 해당한다.

오식도동을 빠져나와 바리케이트를 친 GM공장을 지나친 후 다시 시내로 향했다. ‘군산시민은 분노한다! 한국GM 군산공장 폐쇄가 웬말이냐’, ‘피눈물로 지켜온 군산공장 폐쇄결정을 철회하라’는 분노와 애원의 플래카드가 도시 곳곳을 도배하고 있었다. 경제ㆍ산업 발전이라는 유토피아적 희망에 부풀었던 군산은 지금 무시무시한 리얼리티와 마주하고 있다.

summ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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