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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 (수)

[US REPORT] 미국의 힘+트럼프의 억지가 만드는 무역전쟁-철강 관세폭탄 강행 “한국·일본 예외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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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일 새벽 5시 50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트위터에 새 글을 남겼다. “미국이 거의 모든 나라와의 무역에서 수십억달러를 잃고 있다. 무역전쟁은 좋은 것이고 이기기도 쉽다. 어떤 나라와의 무역에서 1000억달러를 손해 봤다고 치자. 더 이상 무역을 안 하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아주 쉽다.”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정책 철학을 고스란히 압축하고 있는 메시지다. 바로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수입 철강 25%, 알루미늄 10%의 일괄 관세를 매기겠다고 공언한 데 대해 무역전쟁 우려가 터져 나오자 무역전쟁은 좋은 것이라고 반박한 것이다.

트위터에 나타나듯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정책은 단순하다. 적자 나는 옛 무역협상은 깨고 자국에 이익이 되도록 새 무역협상을 맺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자유무역의 수호자 역할을 자처한다거나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지키겠다는 고귀한 가치는 적어도 트럼프 사전에 없다. 동맹국과의 관계를 고려한다거나 오랜 외교적 우의를 감안해야 한다는 주변의 우려도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한낱 공염불에 불과하다.

세탁기와 태양광 제품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발동이 신호탄이었다. 동맹국인 한국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정부는 세이프가드 발동을 강행했다.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제품 때문에 미국 기업 매출이 줄었다는 게 유일한 이유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를 들고 나온 배경도 단순하다. FTA 이후 미국의 무역적자가 더 늘었다는 것이다. 서비스 부문은 미국이 이득을 보고 있고 한국의 미국에 대한 투자가 늘어났다는 설명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먹히지도 않고 그가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트럼프, 트위터에 “무역전쟁은 좋은 것”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철강 관세 역시 마찬가지다. 수입산 철강이 너무 많아 미국 철강업계가 어려워졌으니 관세를 물려서 수입을 막겠다는 것이다. 중국에 대한 압박이라든가 미국에 비우호적인 나라 손보기라든가 하는 복잡한 해석이 제기됐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논리는 손해 보고 있기 때문에 가로막겠다는 것뿐이다.

그런데 보호무역의 첨병을 자처하는 트럼프 정부가 뜬금없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재가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지난 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다보스포럼에서, 2월 미국·호주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에서, 그리고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이 미국 상공회의소 주최 투자설명회에서, 이렇게 세 번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철학이 보호무역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는 미국에 손해가 된다면 무조건 깨자고 덤비지만 이익이 된다면 자유무역이든 보호무역이든 상관이 없다.

2월 말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내놓은 트럼프 정부 통상정책 어젠다 보고서는 TPP에 가입한 나라들과 개별적으로 협상해 새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할 용의가 있다고 적시했다. 불과 1년 전 자신의 최대 대선 공약이자 취임 후 첫 행정명령으로 TPP 탈퇴를 선언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TPP 가입국들과 새 협정을 맺겠다는 것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식 사고방식에서 보면 이상할 것이 전혀 없다. 새로 체결하는 FTA는 반드시 미국에 유리하도록 맺을 것이기 때문이다.

남은 궁금증은 아무리 트럼프 대통령이라도 국제사회와 맺은 약속, 국제사회의 무역질서를 어떻게 마음대로 깰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트럼프 대통령의 특징이 또 한 번 드러난다. 그냥 우격다짐이다.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일방적으로 관세를 매기는 근거가 된 무역확장법 232조는 미국의 안보를 핑계로 마음대로 수입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다. FTA는 일방적으로 폐기 통보하면 6개월 후에는 자동으로 효력을 잃도록 만들어져 있다.

미국의 막무가내 통상 보복에 대해 세계 각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일이 빈번해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WTO를 개혁해야 한다고 맞섰다. 세계무역질서를 흔들어서라도 미국의 이익만을 챙기겠다는 이런 결정은 미국만이 갖는 힘이고 트럼프만이 부릴 수 있는 억지다.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letsw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49호 (2018.03.14~2018.03.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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