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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트럼프·김정은 '돌발 외교' 닮은꼴? 靑 "예측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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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정말 다르다. 청와대도 김정은이 어떻게 나올지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다고 표현해도 과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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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左), 트럼프(右)




트럼프·김정은의 '돌발형 외교' 서로 통했나…靑 "예측 어려움 많다"


청와대의 한 핵심 인사의 말이다. 그는 “2000년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을 한 적이 있고, 문재인 대통령은 2007년 추진위원장을 맡았다”며 “하지만 김정은이 구사하는 문법과 태도는 과거 김정일과는 완전히 달라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관계 개선을 언급했고, 여동생인 김여정을 특사로 보내 남북정상회담을 전격 제안했다. 이후 5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북ㆍ미 정상회담까지 일사천리로 성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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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대화하는 모습. 2018.2.12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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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밝힌 뒤 북ㆍ미 정상회담 성사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67일이다.

청와대에서는 “김정은과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적 스타일과 북한과 미국 정상이 처한 정치적 상황이 대화 기조가 급진전하는데 영향을 준 면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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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왼쪽 아래쪽)이 이동식발사대(TEL)에 실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를 보며 말하는 모습이 공개됐다. 화성-15형은 뭉툭한 탄두부를 가진 신형 미사일이다. 9축의 TEL도 새 모델이다. [사진제공=노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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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핵 개발 과정에서 이미 3차례의 유엔 안보리 제재를 받았다. 김정은은 이를 생존의 위협으로 받아들였다. 지난 1월 신년사에서도 그는 “생존을 위협하는 제재와 봉쇄의 어려운 생활”이라는 말을 썼다. 원유공급 전면 중단 카드까지 제기되자 “전력공업 부문에서 자립적 동력 기지들을 정비 보강하고 새로운 동력자원 개발에 큰 힘을 넣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메시지가 극도로 함축되는 신년사에 이례적으로 ‘뜨락또르(트랙터)’가 두 번 언급됐다”며 “식량 증산과 경공업 등 주민의 민심과 직결되는 ‘먹고 사는 문제’를 강조한 것은 김정은이 느끼는 위기감을 역설적으로 자인한 대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태에서 트럼프의 강공책이 지속되자, 과거 핵과 미사일로 위협하던 벼랑 끝 전술에 대한 수정이 불가피해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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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평안남도 강서군에 있는 금성 뜨락또르(트랙터) 공장을 시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해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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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최근 새로 생산한 트랙터와 화물자동차들을 평양 김일성광장에 모아 놓은 뒤 일선 단위로 보내주는 '진출식'을 지난해 12월 7일 개최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8일 보도했다. 트랙터와 화물자동차들이 김일성광장에 도열한 모습. 2017.12.8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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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외교 소식통은 “김정은은 참모진의 조언 대신 자신의 판단을 고수하는 스타일로 분석된다”며 “과거 김정일은 주변 참모들의 반대에 부딪히면 숙고해 결정했지만, 김정은은 본인의 판단이 맞다고 확신하면 그대로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외교적 은둔자’였던 김정은을 만나고 온 특사단은 그에 대해 “솔직하고 대담한 스타일이었다”고 평가했다.

11월 선거 앞둔 트럼프의 결단


지난 8일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의 북ㆍ미 정상회담 제안 카드를 들고 간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에게 “빨리 만나고 싶다”며 깜짝 만남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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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서훈 국가정보원장 등 한국 대표단을 만나 정상회담 초청 등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메시지에 대해 설명듣고 있다. [사진 주미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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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등에게 방북 결과를 설명하던 특사단은 곧장 백악관 집무실인 오벌오피스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특사단이 김정은의 제안을 다 설명하기도 전에 “알았다, 알았다. 북한에 내가 그렇게 한다고 전해달라”고 말했다.

불과 45분 만에 이뤄진 결정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기 직전까지 맥매스터 보좌관은 특사단에게 북ㆍ미 대화에 위험성이 있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즉각적인 반응이 나오자 특사단은 믿을 수 없다며 서로를 쳐다보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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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감세정책 연설을 하던 도중 북한 김정은 위원장을 "리틀 로켓맨은 미친 강아지"라고 비난했다.[유튜브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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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김정은을 향해 “핵무기를 가진 미치광이”,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 “나는 훨씬 크고 강력한 핵 단추가 있다”는 등의 발언을 이어왔다. 그러면서도 ‘적절한 조건’을 전제로 언제든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뜻을 함께 밝혀왔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북한은 대화의 조건으로 그동안 체제 인정 등 선결 조건을 제시해왔지만,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된 메시지에는 이 부분이 약화됐다”며 “‘무조건’에 가까워진 김정은 메시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신뢰를 언급했다. 그는 10일(현지 시각) 펜실베이니아주 하원의원 보궐선거 지원유세에서 “한국 대표들을 통해 북한은 미사일을 쏘지 않겠다고 했고 비핵화를 바란다고 했는데 나는 그 말을 믿는다”며 “그들은 화해를 원하며, 그럴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스스로 밝힌 대화의 조건이 충족됐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트럼프는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있다. 그러나 지지율은 40%에도 미치지 못한다. 북한과의 극적인 대화와 구체적 성과는 선거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이 대화에 나서게 된 배경과 관련해 연일 자신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노벨평화상과 벼랑 끝 전술 회귀


영국의 BBC 방송은 지난 9일(현지시각) “이번 대화가 북한에도 큰 도박일 수 있다”며 “만약 문 대통령이 핵전쟁의 위협을 감소시키는 데 성공한다면 노벨 평화상을 탈 수도 있지만 실패하면 다시 벼랑 끝 전술을 불러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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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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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언론들도 회담의 의미를 평가하면서도 우려감을 드러냈다. 워싱턴포스트는 사설에서 “비핵화 검증수단 등 백악관이 언급했던 조건이 맞교환되지 않은 상태에서 독재자에게 상을 줬다”고 주장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비핵화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지만, 미국과 세계 질서의 전략적 패배로 귀결될 수도 있다”고 했다.

북ㆍ미 협상론에 힘을 실어왔던 뉴욕타임스도 “드라마틱한 면에서라면 재능이 있는 두 지도자의 비전형적 회담은 대박을 칠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실패로 무너질 가능성도 있다”며 이번 회담을 도박에 비유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대북 특사단이 백악관을 방문해 김정은이 나를 만나길 원하고 미사일도 쏘지 않겠다고 했을 때 여기 있는 많은 언론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도 못 했고 그것을 믿지도 못했다”며 “그들(미국 언론)은 정말 가짜”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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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조선중앙TV는 6일 오후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전날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별사절대표단과 면담·만찬한 약 10분 분량의 영상을 공개했다. 사진은 만찬이 끝난 뒤 북측이 마련한 차량에 탑승한 특사단을 배웅하는 장면. 왼쪽부터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 김정은 당 위원장,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 2018.3.6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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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미국을 방문한 정의용 실장은 11일 인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반도 비핵화 목표의 조기 달성, 또 그것을 통한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 그리고 두 분의 결단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김정은에 대해서도 “용기있는 결단도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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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방문 중인 정의용 수석 대북특사(왼쪽)가 지난 5일 평양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만나고 있다. 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들고 있다. 오른쪽은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사진=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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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 앞서 4월 김정은과 먼저 만난다. '한반도 운전자'를 자처해온 문 대통령의 4월 남북회담은 곧바로 이어질 역대 최초의 5월 북·미 회담 결과를 좌우할 중대 분수령이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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