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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중소·중견기업에 2세바람…"핏줄 아닌 능력으로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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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교원·퍼시스·휠라·한세·형지 세대교체 예고

"가업승계 장점 발휘하려면 지배구조 투명해야"

뉴스1

© News1 이은주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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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김민석 기자 = "기자들 앞에 처음 서서 떨렸습니다. 그러나 사업 홍보를 위해 대표가 직접 설명해야 했습니다"

웅진그룹 오너가 2세인 윤새봄 웅진씽크빅 대표이사(39)가 지난달 에듀테크 사업설명회 후 취재진에 밝힌 '데뷔 소회'다.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의 차남인 그가 기자들 앞에서 사업 설명을 한 것은 처음이다. 윤 대표는 '딥러닝(사물·데이터 군집 기술)' 같은 전문 용어를 쓰면서 에듀테크 전망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1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중소·중견 기업계에도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 30·40대가 대부분인 오너가 2세들은 경영 최전선에 나서 본격적으로 활동 보폭을 넓히고 있다. 특히 '보호받는 왕자·공주 이미지'를 벗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사업 구상과 포부를 밝히며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으로 승부하는 모습이다.

◇ 창업자들 "능력 안되면 자식 승계 안해" 분위기 확산

교원그룹의 2세 장남 장동하 기획조정부문장(35)은 윤 대표보다 조금 일찍 '데뷔'했다. 지난해 말 서울 동대문 디지털프라자(DDP)에서 진행된 사업 기자 간담회에서 그는 "미래의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콘텐츠 사업으로 미래 교육 사업을 선도할 것"이라며 '사업 청사진'을 제시했다. 장 부문장의 옆 자리에는 부친이자 창업주인 장평순 교원 회장이 앉아 있었다.

창업주들이 '핏줄이 아닌 능력'으로 인정받기를 강조해 자극을 더 받는다는 분석이다. 장 회장은 당시 간담회에서 "맡은 일을 잘하면 (장 부문장에게) 회사를 물려줄 것"이라고 밝혔다. 한무경 효림산업 대표(한국여성경제인연합회 회장)도 "능력 검증을 받지 못하면 2세에게 경영권 승계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승계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2세들이 실질적인 성과를 내야 하는 것이다.

재계에선 '시대가 변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몇 년 전만 해도 2세들의 언론 노출 자제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같은 미디어 산업 급변화로 자기 홍보 시대가 열리자 중소·중견기업 2세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대기업 오너가 2·3세보다 주목을 덜 받아 운신의 폭도 넓다.

교육 사업을 하는 중소기업의 한 관계자는 "연령이 아직 30대인 우리 회사 2세(현재 대표이사)는 팀별로 나눠 직원들과 만남을 갖고 소통하며 현장 애로사항을 듣는다"며 "직원들과의 만남은 물론 사업 설명회에서 자신의 의견과 주장을 거리낌없이 내놓는다"고 말했다.

◇ 지배구조도 변화…'오너가 프리미엄'

가구업체 중에선 퍼시스 그룹의 2세 손태희 퍼시스 부사장(38)이 주목을 받는다. 퍼시스 창업주 손동창 회장의 장님인 손 부사장은 미래 먹거리 사업·계열사 해외 사업을 직접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손동창 회장이 지난해 3월 전격적으로 대표직에서 물러난 것도 손 부사장을 지원하는 차원으로 해석된다.

이 같은 '힘 실어주기'는 그룹의 계열사 지배구조 변화에서도 드러난다. 손 부사장은 주력 계열사인 일룸의 지분 29.11%를 보유하고 있다. 약 2년 사이 손 부사장의 일룸 지분이 15배 가까이 증가했다. 일룸이 핵심 계열사로 거듭나 대만·싱가포르 같은 해외 진출에 적극 나선 배경에는 손 부사장의 영향력과 의지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다만 지배구조 재편 과정에서 꼼수·편법 의혹이 불거져 퍼시스를 놓고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경영권 승계 전까지 이를 해소하지 않으면 오너 리스크(위험요소)로 작용할 것이란 지적이다. 대기업 사례에서 드러나듯 일감 몰아주기 같은 부적절한 방식의 경영권 승계 작업은 꼬리표처럼 회사 브랜드 가치를 훼손한다.

패션업계도 젊은 감각의 리더십을 앞세운 2세들이 눈에 띈다.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의 장남 윤근창 부사장(43)은 신발사업본부(풋웨어 본부) 본부장을 겸임하면서 휠라 브랜드 리뉴얼(재편 작업)을 주도했다. 특히 '코트디럭스'와 '디스럽터2' 운동화 제품이 중고등학생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들 제품은 지난해 말 기준 각각 100만·60만 켤레 판매를 돌파했다.

한세그룹도 창업주의 세 자녀가 잇따라 계열사 대표직을 차지하며 2세 시대를 예고했다. 지난해 3월 김 회장의 장남 김석환(43)씨가 예스24 대표이사에, 6월 차남 김익환(41)씨가 한세실업 대표이사로 승진한 것이다. 최병오 패션그룹형지 회장의 장녀 최혜원 대표(38)도 2016년 중순 상장사인 형지I&C(前우성I&C)의 대표이사 전무로 승진했다. 30대에 경영 일선에 뛰어든 최 대표는 강한 추진력으로 정평이 났다.

◇ "무능한 후계자 위험…자질 있다면 '방계'도 승계 대상"

2세들은 보통 20대 중·후반에 부친 회사에 입사해 30대 초·중반에 임원 또는 계열사 대표로 승진한다. 생계형 직장인들은 '특혜'라고 느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기업이 사회적으로도 자질을 공인받는 후계자를 선정해야 승계 정당성을 확보한다고 제언한다.

이충열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명문장수기업센터 팀장은 "가업 승계의 최대 장점은 후계자가 창업주의 기업가 정신·경영 이념을 물려받아 회사를 장수기업으로 이끈다는 것"이라면서도 "후계자 역량이 부족하면 오너 리스크를 초래해 그룹 생존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독일 같은 선진국 사례를 보면 직계가 아니지만 유능함을 인정받아 후계자로 선정된 '방계'가 있다"며 "경영권 승계 절차를 투명하게 진행해야 최선의 후계자를 결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무경 한국여성경제인협회 회장은 "기업의 영속성을 위해 2세 경영이 필요하다"며 "자격있는 후계자가 가업을 승계하면 장수기업으로 거듭나 고용과 기술 발전 같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mr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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