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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기자수첩]아티스틱하고 꾸뛰르적인 '그들만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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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너와 매칭하거나 세트와 세퍼레이트하는 스타일링으로 시티 캐주얼룩 완성'

'아티스틱한 감성을 바탕으로 꾸뛰르적인 디테일을 넣어 페미닌함을 표현'

이 설명에 '아하!'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면 당신은 패션업계 종사자거나 패피(패션피플)다. 대부분의 소비자에겐 외계어와 다름 없다.

국적불명의 패션업계 문체가 일명 '보그병신체'(패션 잡지 보그에 비속어 '병신'을 합한 말로 패션계의 전문용어 사용 과잉을 비판한 것)로 불리며 빈축을 사고 있지만 정작 업계는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영어와 불어, 한글이 한데 섞인 '그들만의 언어'는 점점 더 다채롭고 난해해지고 있다.

재킷, 라인, 시즌, 컬렉션, 레이어드와 같이 우리말로 바꿀 만한 단어가 마땅치 않은 경우는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왜 신발을 '슈즈'로, 한정판을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선명한 색깔을 '비비드한 컬러'로 써야 하는 걸까.

패션 디자이너 A에게 물었더니 "풀어 말하면 촌스러워진다"고 했다. 모 패션회사 마케팅 담당 B는 "표현을 순화하면 디자이너가 '느낌이 안 산다'며 싫어한다"고 했다. 업계 종사자 C는 "있어 보이려는 것 아니겠느냐"고 농반진반으로 말했다.

그들의 설명에 일반 소비자는 없었다. 난해함을 통해 추구하는 고급화 전략만 있을 뿐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명품'이란 말을 남발하는 현실도 짚어볼 수 있다. 이 제품 저 제품 모두 명품을 지향하다보니 기준도 정의도 불분명한 말이 됐다.

내수 부진에 허덕이는 패션업계가 소비자들 마음 잡기에 열을 올리지만 정작 고객의 손을 스스로 놓아버린 건 아닐까. 패알못(패션을 알지 못하는 사람)과 일반 소비자가 함께 어울리기엔 너무 어려운 세계다.
머니투데이



양성희 기자 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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