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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구조조정보다 괴로운 내부감시, 대학 청소노동자 “쉴 틈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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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갈등 겪는 사립대서

휴식 시간중 업무 태도 등 감시

다른 대학에도 확산분위기

용역업체 측 “전 건물 별 반장이 청소불량

자발적으로 보고 한 것” 사실무근 주장
한국일보

8일 오후 서울 중구 동국대학교 본관 앞에서 열린 동국대 청소노동자 문제 해결 촉구 기자회견에서 청소노동자들이 삭발식을 하자 동료 청소노동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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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소재 한 사립대에서 청소 업무를 하고 있는 이모(50)씨는 지난해 12월 회사에 경위서를 제출했다.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동료가 “(이씨가 맡고 있는) X층 화장실이 더럽다”고 관리 용역업체에 보고한 때문이다. 그 화장실이 이씨는 물론이고 다른 층을 맡는 청소노동자들이 걸레를 빠는 곳으로 이용되면서 청소를 해도 금방 더러워질 수밖에 없다는 등 사정을 설명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씨는 “안 그래도 인원 감축이다 해서 뒤숭숭한데 경위서 하나 쓴다는 게 얼마나 부담스럽겠냐“며 “게다가 동료가 회사에 일러바쳤다는 사실 자체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고 말했다. 이 대학교는 최근 2년 동안 청소노동자 136명 가운데 36명을 감축했다.

최저임금 상승에 따른 인원 감축 등 청소노동자에 대한 구조조정 갈등이 일고 있는 S대학교에 때 아닌 ‘내부 감시’ 논란이 일고 있다. 청소노동자들을 고용ㆍ관리하는 용역업체가 동료들 업무 태도를 감시하고 회사에 보고하도록 하는 임무가 주어진 인원을 따로 두고 있다는 게 청소노동자들 주장이다. 이들에 따르면 “다른 동료들이 식사시간에 휴식을 취할 때 청소 상태가 불량한 곳이 없나 눈에 불을 켜고 찾아 다닌다”거나 “업무시간 중 잠시 소파에 앉아있는 동료를 발견하면 회사에 고자질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청소노동자들은 제대로 쉴 수가 없다. 근무시간 10시간 중 휴식이 보장된 건 아침과 점심식사를 위한 2, 3시간이 전부. 나머지 7시간 동안엔 앉을 수도 없단 얘기다. S대 한 청소노동자는 “인원감축 같은 구조조정에 대한 걱정보다 이런 내부 감시가 더 괴롭다”고 호소했다.

용역업체 측은 청소노동자들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업체 관계자는 “과거 건물 별 ‘반장’을 맡았던 일부 청소노동자가 자발적으로 청소 불량을 관리소장에게 신고한 것”이라며 “업체가 내부 감시를 지시했다는 청소노동자들 진술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내부 감시’ 시스템은 다른 대학에도 조금씩 확산되는 추세다. ‘성공회대 미화ㆍ방호(경호) 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성공회대는 2018년 청소ㆍ경호 업체 입찰 공고에서 남성 ‘미화ㆍ경호 반장’을 1명씩 두는 조항을 추가했다고 한다. 청소는 청소대로 하고, 청소노동자 감독도 겸하게 하는 직원을 따로 보내겠다는 게 선정 용역업체 측 입장. 대책위는 “우리는 반대하고 있지만 업체 측은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고 했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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