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07 (월)

[장석남의 시로 가꾸는 정원] [2] 천년의 바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천년의 바람

천년 전에 하던 장난을 바람은 아직도 하고 있다. 소나무 가지에 쉴 새 없이 와서는 간지러움을 주고 있는 걸 보아라 아, 보아라 보아라 아직도 천년 전의 되풀이다.

그러므로 지치지 말 일이다. 사람아 사람아 이상한 것에까지 눈을 돌리고 탐을 내는 사람아.

―박재삼(1933~1997)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커다란 손이, 노동으로 굳은살도 박인 뭉툭한 손가락이 사랑하는 이에게 간지럼 태우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절로 흐뭇한 미소가 나옵니다. 허나 이내 눈이 젖고 맙니다. 끝 모를 깊이에서 저려오는 것이 있었습니다. 부드러운 손에만 사랑이 있는 것이 아니지요. 상처 하나 없이 살아온 손의 사랑만을 아는 당신이라면 영영 모를 세계지요. 그 무뚝뚝하고 깊고 거룩함! 바위 곁에 구붓한 소나무 한 주 서 있습니다. 바위에 앉아 뻗어나간 소나무 가지들 바라보니 거기 바람이 와서 놉니다. 어디서 난 줄 모를 바람의 손길입니다. 겨울 나느라 수척한 초록을 바람은 와서 깨우고 깨웁니다. 새 초록이 나오도록 그리 합니다. 봄을 부르는 행복의 애무입니다. 그 가난한 사랑놀이가 천년이나 만년이나 되풀이되어 저토록 지침 없이 어여쁘다면 우리도 따라 되풀이해야 마땅합니다. ‘이상한 것’에까지 ‘탐을 내는’ 당신, ‘보아요 보아요’ 저 바람의 일을.

[장석남 시인·한양여대 교수]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