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금호15구역 재개발조합이 낸 보류지 매각 공고. 다만 매각 공고는 대개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는다. (서울시 클린업시스템) |
# 지난해 12월 서울 성동구 금호15구역 재개발조합 사무실에서는 보류지로 나온 ‘e편한세상금호파크힐스’ 전용 84㎡ 매각 입찰이 진행됐다. 올 3월 입주를 앞둔 이 아파트는 총 1330가구 규모의 대단지. 5가구가 보류지로 나왔는데 이번 전용 84㎡는 그중 마지막 물건이었다. 최저 입찰가는 7억500만원. 최초 분양가(5억3000만원)보다 2억원 비싸게 나왔지만 업계에서 화제를 모았다. 최근 주택 매매 시장에서 같은 평형의 아파트가 10억원 넘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기 때문. 최종 낙찰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낙찰자가 최소 2억원의 시세차익을 냈다고 보고 있다.
흔히 재개발·재건축에 투자한다고 하면 크게 조합원 입주권을 매입하거나 일반분양에 청약 넣는 방법 두 가지를 떠올린다. 하지만 재개발·재건축 투자에도 틈새시장이 있다면 어떨까. 조합원 입주권이나 일반분양 아파트에 비해 규제가 적고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분양받을 수 있는 보류지(임의분양) 물량은 웬만해서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아 ‘아는 사람만 안다는’ 알짜 투자처로 통한다.
보류지는 정비사업을 통해 분양한 사업지에서 착오로 조합원 물량이 누락되는 경우 등을 위해 가구 중 일부를 분양하지 않고 남겨두는 물량을 말한다. 전체 가구 수의 최대 1%까지 보류지로 남겨놓을 수 있고 이는 조합 의무사항이다. 조합은 일반분양에 앞서 보통 10~20가구 정도를 보류지 물량으로 빼놓는다.
특별한 사유가 발생하지 않으면 조합은 일반분양과는 별개로 보류지를 분양한다. 통상 입주 시점을 1~2개월 정도 앞두고 보류지 매각이 이뤄지는데 조합에 따라 보류지 매각 시점은 제각각이다. 매각에 앞서 조합은 정식으로 매각 공고를 낸다.
보류지 매각은 청약통장을 이용해 분양받는 일반분양과 다르다. 가점제나 추첨제가 아닌 경쟁입찰을 통해 최고가 입찰자가 낙찰을 받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추첨을 하는 경우는 2명 이상이 입찰했을 때 최고가액이 동일할 때뿐이다. 입찰가의 10%를 보증금으로 내는 법원 경매와 달리 보류지 경쟁 입찰 때는 통상 1000만~2000만원가량을 보증금으로 낸다.
쉽게 말해 보류지는 만약을 대비해 빼놨던 물량을 나중에 경매로 파는 것을 말한다. 개념 자체가 생소하다 보니 재개발·재건축 사업장 내에서도 조합장, 감사 등 이사진이 아니면 보류지를 잘 모르는 조합원이 대부분이다.
언뜻 들으면 번거로워 보이는 보류지가 알짜 투자처로 통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첫째, 우선 보류지 매각에는 청약통장이 없어도 누구나 입찰할 수 있다. 사업지의 조합원일 필요도 없고 청약가점을 넉넉히 보유하지 않았거나 다주택자여도 상관 없다. 통상 입주 시기가 임박했을 때 보류지 매각이 진행되는 점을 감안하면 최근 나오는 물건은 6개월이던 전매제한 기간이 강화되기 전 분양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아파트 보류지는 만약 입주 시점에 임박해 낙찰받으면 이미 전매제한 기간이 끝난 뒤라 바로 되팔 수 있다는 얘기다. 일반 아파트 경매에서는 골칫거리인 명도 등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둘째,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아파트를 장만할 수 있다.
▶래미안에스티움 보류지 1억 웃돈
매각 공고 등 정보 발품 팔아야
보류지 매각 최저가는 정비사업 과정 중 마지막 단계인 관리처분계획 인가 시점에 정해진다. 행복재테크의 칼럼니스트 이어진 씨(필명 락지니)는 “일반분양이 이뤄지는 시점은 관리처분계획 인가 이후다. 그런데 보류지 매각 자체는 일반분양이 끝나고 한참 뒤에 이뤄지니 입주 시기에 임박해 어느 정도 아파트 시세와 웃돈 예상이 가능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일례로 서울 영등포구 신길7구역을 재개발한 ‘래미안에스티움’은 지난해 1월 보류지 매각을 진행했는데 전용 84㎡ 매각 최저가가 6억7000만~6억9500만원이었다. 같은 평형 조합원 분양가는 5억원 후반대였다. 언뜻 보면 보류지를 낙찰받는 게 훨씬 손해인 것 같지만 당시 같은 아파트 분양권 시세가 막 7억원을 넘기던 참이었다. 래미안에스티움 전용 84㎡ 시세는 최근 8억원까지 뛰었다. 다시 말해 매각 최저가에 근접하게 보류지를 낙찰받은 사람은 불과 몇 개월 새 1억원가량의 차익을 남겼다는 얘기다.
게다가 애초에 보류지는 조합원 물량 중에서 일부를 빼놓은 것이기 때문에 층·향이 좋은 아파트인 경우가 많다. 또 발코니 무상 확장이나 고급 마감재 적용 등 조합원 가구에만 적용되는 서비스도 그대로 누릴 수 있다. 또한 조합원 분양이나 일반분양과 달리 추첨을 거치지 않고 마음에 드는 평형·동·호수를 지정해 입찰할 수 있다.
이렇게 장점이 많은 보류지라면 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을까. 말 그대로 장점이 많아서다. 입찰 공고를 의무적으로 해야 하지만 조합은 쉬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서울 클린업시스템과 지역 신문지 한 곳에만 슬그머니 공고를 내고 기껏해야 가까운 지인에게만 정보를 공유하는 정도다. 의무에 따라 공고를 내고 매각 절차를 진행했다면 나머지는 조합 재량이지 불법은 아니다.
보류지 투자에 도전해볼 생각이라면 몇 가지를 염두에 둬야 한다.
보류지 매각은 일반적으로 입주 시점에 임박해 진행된다. 입찰 보증금은 통상 1000만~2000만원이라지만 한 번 낙찰받으면 곧장 낙찰가(보류지 분양가)의 10%를 계약금으로 내야 하고 짧은 시일 안에 아파트 중도금(30~40%가량)과 잔금을 마련해야 한다. 자금 마련 기간이 넉넉한 청약과 달리 보류지 매각 투자는 현금을 넉넉하게 보유하고 있어야 가능하다.
무엇보다 발품을 파는 게 가장 중요하다. 보류지 특성상 신문에서 매각 공고를 찾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조합 사무실에 연락해도 자세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어진 씨는 “관심 있는 단지 몇 곳을 정한 뒤 입주 시점 전부터 일대 부동산이나 조합 사무실 등을 찾아다니며 정보를 얻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정다운 기자 jeongdw@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47호 (2018.02.28~2018.03.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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