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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난민과 국제사회

[힙베를린] '늙지않는 기억' 가족 두고온 시리아 난민의 깊은 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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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이야기…'난민 가족 재결합' 문제 다룬 유비호 작품 전시

독일의 강화되는 난민 규제…매달 가족 1천명만 입국 허용

연합뉴스

베를린에서 전시 중인 '영원한 기억' [베를린=연합뉴스]



[※편집자 주 = 독일 수도 베를린을 두고 새롭고 개성이 강하다는 의미로 '힙(hip)하다'라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베를린은 2차 세계대전과 냉전 체제의 유산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특히 전세계에서 몰려든 젊은 예술가들의 자유분방한 도시에서 이젠 유럽의 새로운 IT 중심지, 정치 중심지로까지 다양한 면모를 보입니다. 이런 탓인지 베를린의 전시·공연은 사회·정치·경제적 문제의식이 짙게 베인 게 특징입니다. 베를린의 다양한 전시·공연, 공간이라는 창(窓)을 통해 다양한 사회 문제에 한두달에 한차례씩 접근해보겠습니다.]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60대로 보이는 작품 속의 남자들은 주름이 파이기 시작했고 머리가 희끗희끗했다.

어딘가로 향하는 시선에는 그리움이 아련히 배어 있었다.

유비호 작가가 독일 베를린의 한국문화원에서 전시 중인 '영원한 기억' 속의 작품들이다.

작품 속의 8명의 남자는 모두 시리아 난민 출신이다.

이들의 실제 나이는 20∼30대다. 특수분장으로 시간을 뛰어넘은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작품화했다.

지난해부터 베를린에서 활동 중인 유 작가는 독일 사회의 최대 난제인 난민 문제에서 착안했다.

고향에 가족을 두고 온 난민을 보면서 한반도의 이산가족 문제를 떠올렸단다.

"이산가족처럼 난민이 가족과 평생 다시 만나지 못할 수 있다는 걱정, 두려움을 작품으로 담고 싶었다"는 게 작품의 출발점이었다.

모델이 된 이들은 대부분 가족과 떨어져 있다. 특히 시리아에 가족이 남은 이들은 언제 가족을 만날 수 있을지 막막하다.

이들은 가족 이야기에 대체로 입을 닫았다. 괜히 알려질 경우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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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린서 전시 중인 '영원한 기억' 작품과 실제모델 난민 [베를린=연합뉴스]



최근 전시장을 찾은 작품 속의 인물인 아마드 알 오데트 알라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는 내전이 할퀴고 간 시리아 남부 다라 출신이다. 2014년 브로커에게 7천 유로(약 928만 원)를 건네주고선 그리스로 건너왔다.

터키에서 바다를 건너는 과정에선 배가 그리스 해안가에 접근하지 못하자 바다로 뛰어들었다. 200m 이상의 거리를 파도를 헤치는 사투 끝에 유럽 땅을 밟게 됐다.

2014년에 온 난민은 대부분 3년 거주증을 받았다. 알라도 그랬다.

3년 거주권을 받은 난민은 3개월 내로 가족 신청을 하면 해외의 가족을 데려올 수 있었다.

난민이 더욱 몰려든 2015년부터는 상당수가 1년 거주권을 받았는데, 가족을 데려오는데 2년간의 유예기간을 받았다.

하지만 알라는 1년 거주권을 받은 난민보다 상황이 좋지 못하다. 시리아에 남기고 온 약혼녀를 데려올 길이 없어서다.

거주증을 받고 3개월 내로 가족 신청을 해야 하는데, 약혼자는 그 대상이 되지 않는다.

알라는 매일 난민 정책에 대한 언론 보도를 주시하고 있다. 작은 희망이라도 발견할 수 있을까 싶어서다.

'이슬람 국가(IS)'가 격퇴된 이후에도 열강의 파워게임으로 아비규환이 계속되는 시리아의 소식도 불안감을 갖고 챙기고 있다.

약혼녀를 언제 떨어질 지 모르는 포탄의 그늘 속에 두고 싶지 않지만, 독일로 데려올 수 있는 정상적인 방법은 막혀있다.

알라는 "작품을 촬영할 때 혹시 분장한 것처럼 주름살이 파여가는데도 약혼녀와 함께하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먹먹해졌다. 하지만 가급적 미래에 약혼녀와 함께 행복한 삶을 보낼 것이라는 생각을 갖도록 노력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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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서 전시중인 '영원한 기억'의 작가 유비호 [베를린=연합뉴스]



'난민 가족 재결합'은 지난해 9월 독일 총선 이후 정치·사회의 최대 화두 중 하나였다.

이른바 '자메이카(기독민주·기독사회 연합-자유민주-녹색)' 연정 협상이 지난해 11월 끝내 결렬되며 독일이 정치적 혼란에 빠지게 된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보수진영은 '난민 가족 재결합'에 대한 연기 및 까다로운 잣대 적용을 주장해온 반면, 진보진영은 즉각적인 허용을 주장해왔다.

이달 초 기민·기사 연합과 사회민주당 간의 대연정 협상이 타결됐지만, 본국에 가족을 남겨둔 난민 출신들의 속은 더욱 타들어 갔다.

애초 가족을 데려오는 데 2년간의 유예기간이 종료되는 시점이 오는 3월 15일이었다.

그러나 대연정 협상에선 이를 7월 말로 연기했다. 더구나 매달 1천 명으로 제한했다. 그러나 독일에 정착한 난민이 데려오려는 가족은 20만 명 전후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알라는 "적어도 가족이 만나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며 "난민이 정치싸움의 희생양이 됐다. 처음엔 가족을 데려오는 규제 등이 없었는데, 점점 더 규제가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편집자 주 = '힙베를린' 두번째 이야기로 독일 연방정부 지원의 다문화 전시공간인 '세계문화의 집(HKW)'을 매개로 이민자 급증에 따른 문화통합 정책 등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HKW'를 즐겨찾으시는 분들의 소중한 경험담을 이메일을 통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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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이드리브서 피난 생활하는 난민 어린이의 발 [EPA=연합뉴스]



lkb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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