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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선수들에 과자도 가족안부도 배달… 심부름하는 神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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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선수촌 담당 임의준 신부, 선수 요청 때 기도·미사 드려

"최선 다하는 모습 보며 많이 배워… 부상·후회 없도록 해달라 기도"

"저도 이제 체력이 방전되는 것 같네요. 꼬박 2주째이거든요"

평창올림픽 폐막을 나흘 앞둔 21일 오전 강릉 올림픽선수촌 인근 카페에서 만난 임의준(40) 신부는 이미 에스프레소 커피를 두 잔이나 비운 상태였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직장사목부 소속 임 신부는 '선수촌 담당'이다. 2013년 당시 태릉선수촌 담당을 맡은 그는 평소엔 매주 수요일 선수촌에서 신자들과 미사를 드리지만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이 열리면 선수들과 현지 동행한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이후 스페인 그라나다 유니버시아드,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리우올림픽에 이어 평창까지 천주교 신자 선수들의 신앙 활동을 돕고 있다.

조선일보

올림픽만 세 번째 동행하고 있는 임의준 신부는“연휴 다 지나고서야 설이었던 줄 알았다”고 했다. 패럴림픽 때에도 선수들과 동행하는 그는“25일 폐막 후 한체대 대학원 입학식에 참석하고 수업 듣다가 다시 내려올 계획”이라며 웃었다. /강릉=고운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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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 선수단의 천주교 신자는 스무 명 정도. 임 신부가 선수촌과 경기장을 모두 누빌 수 있는 건 아니다. 그의 AD카드는 선수촌 종교 시설 출입만 가능하다. 선수 요청이 있으면 선수촌에 들어가 미사를 드리고 면담한다. "1명부터 많게는 6명과 미사를 드려요. 종목별로 훈련과 경기 스케줄이 달라 그때그때 요청에 맞춰 만나죠. 하루에 미사만 4~5번 드리는 날도 많아요."

'주요 미션' 상당 부분은 심부름이다. 가족들을 경기장까지 차로 데려다주는 '셔틀 기사', 가족 안부를 전해주는 메신저, 군것질거리 배달에 페이스북으로 선수 근황을 중계하는 역할도 한다. 여자 쇼트트랙 계주 결승을 앞둔 20일 오전, 임 신부는 심석희 선수로부터 어려운 미션을 받았다. 심 선수는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소치 때부터 친하게 지내온 사이. "카톡으로 면담을 요청하기에 '뭐 갖다줄까?' 물었더니 '짭조름한 과자'란 답이 왔어요. '뭐가 짭조름할까' 고민했죠. 대형 마트에서 이것저것 고르면서 깨달았어요. '맞아, 다른 사람을 위해 고민하고 생각하는 게 바로 기도 아닌가'라고요."

임 신부는 "저보다 10년, 심지어 스무 살까지 어린 선수들 보면서 많이 배운다"고 했다. 선수들이 임 신부에게 부탁하는 것은 한 가지. "신부님만이라도 메달, 등수 이야기하지 마세요"란다. 대신 "부상 없이, 후회 없이 경기하도록 기도해 달라"고 했다. 지난 17일 쇼트트랙 여자 1500m 결승에서 4위를 한 김아랑 선수가 금메달 딴 최민정 선수 등을 두드리며 축하했다. 임 신부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사진을 올리며 "진심의 무게. 저는 못합니다. 진심으로 축하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라고 적었다. "선수들 열정이 정말 대단합니다. 4년간 죽도록 노력하죠. 저는 살면서 그래 본 적 없어요. 그 노력의 결과를 짧은 순간 등수, 메달 색으로 평가받는다는 게 얼마나 힘들까요. 그런데 선수들은 금세 받아들여요. 정말 존경스럽죠." 그는 우리 사회의 변화도 느낀다고 했다. "소치 때만 해도 '메달, 메달' 했는데, 이번엔 우리 국민들이 메달 색깔이 아니라 그동안의 노력과 인성까지 보고 축하, 격려해주셔서 참 좋았습니다."

선수들 곁에서 항상 기도해주지만 그는 정작 "담이 떨려서" 경기는 못 본다고 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직접 본 경기는 단 두 개. 남자 아이스하키와 여자 쇼트트랙 계주 결승전이다. "결국 아이스하키는 2피리어드에 빠져나왔어요. 떨려서."

스포츠라곤 '군대 축구' 정도밖에 관심이 없던 그는 오는 3월부터 한체대 대학원에서 스포츠심리상담을 공부한다. 임 신부는 "선수촌에선 친구, 경기 나가면 '엄마'가 제 역할"이라고 했다. "해외 경기에 참가했을 때 한 선수가 걱정하는 부모님에게 저를 가리켜 '여기 엄마 한 명 와 있다'고 했대요. 엄마는 힘들 땐 의지할 대상이지만 자녀가 빛날 땐 그림자 같은 존재잖아요."




[강릉=김한수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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