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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Why] 난지도와 짜장면, 된장과 추억을 비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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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박준의 酒방]

- 상암동 서룡

된장 짜장면 한그릇 후루룩

속이 편안해지고…

된장짬뽕과 함께 술이 술술

어린 시절 내가 가장 좋아했던 장소는 서울의 난지도, 지금의 상암동이었다. 난초(蘭草)와 영지(靈芝)가 자생하는 곳이라 해서 이름 붙은 난지도. 그 옆으로는 작은 샛강이 하나 흘렀는데 물빛이 더없이 맑아 수색(水色)이라는 지명을 불러오기도 했다. 하지만 내 기억 속 난지도는 매립지의 모습뿐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구청 기능직 공무원으로 일하던 아버지를 따라 종종 그곳에 갔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높고 넓은 쓰레기 언덕들은 어린 눈에 더없이 신기하고 몽환적으로 다가왔다. 마치 만화영화를 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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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따라나선 날이면 으레 동네 중국집으로 향했다. 나는 짜장면을 먹었고 아버지는 백주를 마셨다. 문제는 짜장면이라는 음식이 먹을 때는 달고 맛있지만 다 먹고 난 후에는 소화가 잘 되지 않아 고생을 한다는 데 있었다. 그럼에도 당시의 나는 혀를 감고 도는 감미로운 맛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매번 아버지에게 짜장면을 사달라고 졸랐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짜장면은 내게 입의 즐거움과 속의 불편함이라는 양날의 음식으로 다가온다.

1978년 시작된 난지도의 쓰레기 매립은 1992년 중단·폐쇄됐다. 그리고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생태공원으로 또 일부는 디지털미디어시티라는 계획된 도시로 모습이 바뀌었다. 1979년 발표된 시인 이성부의 작품에서 난지도가 "난지도에 와서 사람을 만나고 사람의 마을을 들여다보면 안다. 왜 모든 것이 아니오 아니오 아니오임인가를 비로소 안다"('蘭芝島')라 애달프게 불렸다면 2008년 발표된 시인 장철문의 시에서는 "저 아픔과 빛 사이의 길에 들어서 하늘도 아닌, 땅도 아닌, 길에 들어서 저것이 왜 저렇게 환한 빛을 보내나 하늘과 땅에 보내나 난지도의 아침 버들 잎새"('봄날')로 환하게 그려진다. 난초와 영지는 아니지만 온갖 것들을 품고 억새와 버들, 메밀을 새로 기르고 철새를 내려앉게 하는 이 땅의 변화를 무엇이라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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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반가운 변화가 또 이곳에 있다. 그것은 짜장면의 변화다. 상암동 중국집 서룡에서는 된장짜장이란 새로운 음식을 만날 수 있다. 중국의 춘장이 밀가루와 대두를 섞어 발효시켜 만든다면 우리식 춘장은 여기에 캐러멜을 넣어 색과 맛을 더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에 반해 서룡은 메주콩으로 발효시킨 된장을 쓴다. 나트륨과 조미료를 최소화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한 그릇을 다 비워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여기에 낙지 한 마리가 통째로 올라가 있는 역시 깊으면서도 부드러운 맛의 된장짬뽕을 더한다면 술병을 길게 늘어지게 할 수도 있다. 이 길어지는 술병만큼 우리의 이야기도 함께 길어질 것이다.

서룡(02-6365-4040),

된장짜장(1만원), 된장짬뽕(1만4000원)


[박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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