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서울예대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 캡처 |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이게 내 정액인데 핥아 보라’며 얼굴에 들이밀었다.”, “선배가 공원 언덕에 숨었다가 갑자기 나와 웃옷 단추를 뜯고 멱살을 잡은 뒤 미친 듯이 바닥으로 내리찍었다.” , “계단에서 후배들과 동기들이 내려다보고 있었고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오티 때) 저희 조는 여자들에게 쫄쫄이를 입히고 500㎖짜리 페트병 윗부분을 잘라서 회음부 가까이에 넣게 하여 마치 남자의 성기가 부풀어 오른 것처럼 보이게 하고 다녔다”
이 글은 최근 페이스북 ‘서울예대 대나무숲(익명 게시판)’ 페이지에 성폭력을 당했다며 올라온 게시물 내용 중 일부다. 이 학생은 익명으로 글을 올릴 수 있는 ‘대나무숲’ 게시판에 자신의 학번과 이름을 모두 공개해 글을 올렸다. 이는 자칫 자신이 당한 끔찍한 피해 내용이 ‘익명’이라는 것 때문에 사실이 아닌 허구의 내용이거나 ‘꽃뱀’으로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논란이 불거지자 서울예대 관계자는 “대나무숲은 온라인 익명 제보 공간으로 해당 게시글의 진위 여부는 알 수 없다”며 “수년간 신입생 환영회에 동석한 교수들에 따르면 현재 학내 ‘강간 몰카’나 구타와 같은 관행은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게시물에는 “서울예대 출신인데 부끄러워” 같은 댓글이 달리면서 논란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발하는 ‘미투(#MeToo)’ 운동이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불붙어 연극계는 물론 영화계에서 이제는 대학가로 번지고 있다. 특히 대학가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OT) 시즌을 맞아 이 과정에서 선배들이 신입생을 상대로 할 수 있는 각종 성적 수치심, 성희롱 등 성폭력 사고 발생 차단에 나서고 있다.
◆ 대학가, OT 시즌 맞아 성폭력 피해 방지 매뉴얼 제작
서울대 총학생회는 지난 1월 교내 인권센터와 연계해 ‘학생회 대표를 위한 서울대 인권학교’를 열었다. 인권학교에서 논의한 내용을 담은 자료집은 새로배움터 행사에 참가하는 신입생에게 나눠 줄 계획이다. 또 단과대별로 ‘장기자랑 가용 프리(FREE)선언’에 나섰다. 1월 31일 기준으로 사회과학대학·자연대 등 11개 단과대가 선언에 참여했다.
고려대학교 양성평등센터는 지난 1월 총학생회가 주최한 새내기 미리 배움터 행사에서 성폭력 등의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학칙과 구제절차, 도움을 받을 방법 등에 관한 교육을 했다.
이화여대의 한 단과대는 학교 측이 실시하는 성 평등 교육 동영상 시청 이외에 신입생들을 인솔할 재학생을 위한 매뉴얼을 준비했다. 매뉴얼에는 ‘남자친구 있느냐는 질문 하지 말기’, ‘외모 얘기하지 말기’ 등의 지침이 담겼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대학가의 이 같은 성폭력 방지 매뉴얼은 사전 조치 성격이 강해, 사건 발생 후 가해자의 처벌 등 측면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31일 출범한 서지현 검사의 성희롱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조사단의 경우 수사가 지지부진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서 검사 측은 조사단이 수사 의지가 없다며 서울동부지검을 항의 방문하기도 했다. 결국 피해자가 나서 사건을 해결할 수 밖에 없는 셈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는 피해를 당한 순간부터 증거 확보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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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폭력 피해 당했다면 최대한 증거 확보…공소시효 지났어도 수사 검토 가능
22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한 서울동부지검 성폭력 사건을 전담하고 있는 박은정 부장검사는 성폭력 사건의 경우 공소시효가 지나도 ‘상습성’이 인정되면 마지막 범행 시점을 기준으로 수사가 가능하며 성폭력 피해 사실을 최대한 확보할 것을 강조했다. 또 성폭행이 아닌 추행의 경우에도 상해에 의한 처벌이 가능하다면서 강제추행치상 상해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강제추행치상 상해의 경우 상해와 폭행이나 강제추행 간의 인과관계가 인정이 되는 경우에는 유죄 판결이 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검사는 성폭력 사건 특징에 대해 권력을 가진 가해자가 취약한 피해자를 상대로 굉장히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성폭력 가해를 해 왔다면서 성폭력 사건에 대한 권력구조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폭행이나 협박이 없어도 이런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피해자가 굉장히 취약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성폭력이 벌어진다고 설명했다. 이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으로 처벌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또 무고로 고소를 받는 것에 대해서는 성폭력 사건은 사실상 피해 직후에 고소하기가 굉장히 어렵다면서 실제로 피해자가 그 당시에 피해 직후에 ‘치료를 받았다’라든가 ‘누군가에게 얘기를 했다’든가 ‘일기를 써놨다’라든가 ‘편지를 썼다’라든가, 가해자와 ‘문자를 서로 주고받았다’라든가 이 같은 증거자료들이 굉장히 중요한 증거자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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