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9 (토)

한 사람의 가치는 천하와 같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전호근의 한마디로 읽는 중국 철학│④맹자

맹자에게 한 사람의 백성은 천하와 맞먹는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천자의 마음을 얻으면 한 나라의 임금이 되고, 임금의 마음을 얻으면 대부가 되며, 백성의 마음을 얻으면 천자가 된다. 따라서 백성이 가장 존귀하고, 나라의 상징인 사직이 그다음이며, 임금은 가벼운 존재다.


한겨레

맹자의 초상. 출처 바이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성은 맹(孟), 이름은 가(軻)다.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살길을 찾아 그를 데리고 이곳저곳을 전전했다. 그가 본 세상은 끔찍했다. 지배자의 푸줏간에는 기름진 고기가 가득하고 지배자의 마구간에는 살찐 말이 가득했지만 백성의 얼굴에는 굶주린 기색이 역력했고 들에는 굶어 죽은 시체가 널려 있었다. 짐승을 몰아 사람을 잡아먹는 세상이었다. 그는 두려웠다. 너무 많은 사람이 너무 쉽게 죽어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마침내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게 될 것이다. 폭력의 정치가 빚어낸 참혹함 앞에서 그는 사람을 중시하는 정치를 펼쳐야 천하를 구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누가 천하를 다스려야 하는가.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는 자, 폭력을 멀리하고 덕을 숭상하는 자가 천하를 다스려야 한다. 왕도론(王道論)의 탄생이다. 왕도는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백성의 삶을 먼저 보살피는 정치였다. 그는 수레를 타고 천하를 돌아다니며 왕도를 펼칠 수 있는 임금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마침 양나라 혜왕이 그를 불렀다. 왕은 그가 도착하자마자 대뜸 이렇게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우리나라를 이롭게 해 주시겠습니까? 그는 대답했다. 왕은 어찌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인의(仁義)가 있지 않습니까? 왕께서 자기 나라의 이익을 바라면 대부는 자기 집안의 이익을 바라고 백성은 제 몸의 이익을 바라게 될 터이니 결국 위아래가 모두 이익을 다투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그가 생각하기에 인의를 뒤로하고 이익을 앞세우게 되면 약자의 삶을 짓밟는 비정한 세상이 만들어질 뿐이었다. 혜왕은 알아듣지 못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리석은 자의 말이라 여겼다.



왕도정치, 혁명론, 저항권


어느 날 혜왕은 그를 화려한 별궁으로 초대했다. 혜왕의 별궁은 울창한 숲속에 있었다. 높고 화려한 누대 아래 드넓은 못이 펼쳐져 있는데, 못가에는 백조와 기러기가 느긋하게 날아오르고 고라니와 사슴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그가 도착하자 혜왕은 그런 풍경을 돌아보며 그에게 물었다. 당신 같은 현자도 이런 걸 즐깁니까? 그는 대답했다. 현자라야 이런 걸 즐길 수 있습니다. 당신 같은 자들은 이런 걸 가지고 있어도 즐기지 못합니다.

그 무렵 제나라 선왕이 끌려가는 소를 보고 불쌍히 여겨 풀어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그는 그런 마음을 가진 왕이라면 왕도에 뜻이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안고 제나라로 갔다. 선왕은 소식을 듣고 그를 불러 제나라 환공과 진나라 문공의 패도에 관해 아는 게 있는지 물었다. 하지만 그는 선왕의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고 왕도를 펼치면 천하에 적이 없게 될 것이라고 권했다. 선왕이 관심을 보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 왕도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늙어서 아내 없는 이를 ‘홀아비’라 하고, 늙어서 남편 없는 이를 ‘과부’라 하며, 늙어서 자식 없는 이를 ‘홀로 사는 사람’이라 하고, 어려서 부모 없는 이를 ‘고아’라 합니다. 이 네 부류의 사람들은 천하에서 가장 가난하고 하소연할 곳 없는 사람들입니다. 옛날 주나라 문왕이 왕도를 펼 때 이 네 부류의 사람들을 먼저 보살폈습니다. 문왕처럼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을 먼저 보살피는 것이 왕도입니다.

선왕은 자신처럼 덕이 부족한 사람도 왕도를 펼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가 할 수 있다고 대답하자 선왕은 다시 무슨 근거로 그렇게 이야기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선왕이 끌려가는 소를 불쌍히 여겨 풀어준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며 한 마리 소를 불쌍히 여길 줄 아는 마음가짐이라면 왕도를 베풀기에 충분하다고 대답했다. 선왕이 기뻐한 것도 잠시, 그는 다시 이렇게 이야기했다. 소는 그토록 아끼면서 어째서 백성은 사랑하지 않느냐고.

한겨레

맹자의 전신 모습 그림. 출처 바이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선왕이 훌륭한 신하는 어떤 사람이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훌륭한 신하는 임금이 잘못을 저지르면 말리고, 세 번 말려도 듣지 않으면 임금을 바꿉니다. 안색이 붉어진 선왕이 다시 은나라의 탕임금은 자신의 임금이었던 걸왕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고, 주나라의 무왕은 자신의 임금이었던 주왕을 쫓아내고 스스로 왕이 되었는데 신하로서 임금을 죽이는 일이 옳으냐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저 한 놈 주를 죽였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임금을 시해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면 바꾸어야 한다는 혁명론의 탄생이다.

한번은 추나라 목공이 그에게 하소연했다. 노나라와 전쟁을 벌였는데 관리들은 서른세 명이나 싸우다 죽었는데 백성은 한 명도 죽지 않았습니다. 백성을 죽이자니 이루 다 죽일 수 없고 그냥 두자니 윗사람이 죽는 걸 보고도 구하지 않은 그들이 괘씸합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임금께서는 백성을 탓하지 마십시오. 흉년이 들어 굶주리던 시절에 당신의 창고에는 재물과 곡식이 가득 차 있었지만 신하들 중 아무도 창고를 열어 백성을 구제하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윗사람이 태만하여 백성들을 죽인 것이니 이런 때에 이르러 백성이 보복한 것입니다. 백성의 저항권을 인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시대는 그를 원하지 않았다. 천하는 바야흐로 전쟁과 폭력으로 치닫고 있었다. 진나라는 상앙을 재상으로 등용하여 부국강병을 추구했고, 제나라는 손자와 전기를 장수로 삼아 이웃나라를 공격했으며, 위나라와 초나라는 오기를 등용하여 전쟁에서 이기고자 했다. 강자는 약자를 억압하고 약자는 속임수로 맞대응하는 시대였기에 대다수의 지식인들은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개탄했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모든 인간은 예외 없이 선한 본성을 타고났다고 힘주어 이야기했다. 인간에 대한 믿음을 끝내 거두지 않았던 것이다.

백성의 고통을 헤아리는 정치

그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지금 어떤 사람이 갑자기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보게 되면 그가 누구든 깜짝 놀라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게 된다. 이런 마음이 일어나는 까닭은 어린아이의 부모와 잘 지내고자 하거나 사람들의 칭찬을 바라기 때문이거나 구해주지 않았다는 비난이 싫어서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측(惻)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뜻이고 은(隱)은 은통(隱痛), 곧 고통을 가리키는 말로 측은지심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여기는 마음이다. 그에게 왕도란 단지 이런 마음을 베풀어 백성의 삶을 구제하는 정치일 뿐 별다른 것이 아니었다.

한겨레

맹자의 초상. 출처 바이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양나라와 제나라를 거쳐 등나라, 노나라, 추나라에 이르기까지 온 천하를 돌아다니며 측은지심을 가진 군주를 찾았으나 늙어갈 때까지 뜻이 맞는 군주를 만나지 못했다. 그는 마침내 물러나 제자들을 가르치고 그들과 함께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시서와 공자의 뜻을 이어 자신의 말을 책으로 남겼다.

그는 백이의 청렴과 이윤의 책임, 유하혜의 화합을 모두 높이 평가했지만 각각의 도리를 때에 맞게 실천한 공자의 도를 동경했다. 어느 제자가 세 사람의 도리에 대해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백이는 올바른 임금이 아니면 섬기지 않았으니 청렴한 사람이다. 이윤은 나쁜 임금도 마다하지 않고 섬겼으니 세상을 책임진 사람이다. 공자는 벼슬할 만하면 벼슬하고 떠날 만하면 떠났으니 때에 맞게 처신한 성인이다. 세상과 마주하는 그들의 도리는 이렇게 달랐지만 인(仁)을 추구한 것만은 같았다. 그들 모두 한 목숨을 죽여 천하를 구제할 수 있다 하더라도 하지 않았노라고.

그에게 한 사람의 백성은 천하와 맞먹는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천자의 마음을 얻으면 한 나라의 임금이 되고, 임금의 마음을 얻으면 대부가 되며, 백성의 마음을 얻으면 천자가 된다. 따라서 백성이 가장 존귀하고, 나라의 상징인 사직이 그다음이며, 임금은 가벼운 존재다. 임금이 나라를 위태롭게 하면 바꿔야 하고, 희생과 곡식을 갖추어 때맞춰 제사를 지냈는데도 홍수나 한발이 일어나면 사직을 갈아엎고 다시 세워야 한다고. 그에게는 그 어느 것도 한 사람의 백성보다 존귀하지 않았다. 그의 천하는 낮은 곳에 있는 한 사람의 백성과 다른 것이 아니었다.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사람과 동물을 잇다 : 애니멀피플] [카카오톡]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