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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둥근 사랑이 세계를 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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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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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문태준 지음/문학동네·8000원


2011년 출범한 문학동네시인선은 지난해 12월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라는 ‘티저 시집’으로 100호를 기념했다. 문학과지성사나 창비 등의 기존 시집 시리즈가 지나온 과정을 돌이켜보는 방식으로 100호 단위 시집을 엮었던 것과 달리, 이 시집은 101호 이후 시집들에 실릴 시 한편과 시인의 산문 하나씩을 담은 미래지향적 구성으로 눈길을 끌었다.

문학동네시인선 101호로 나온 문태준(사진) 시집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는 전반적으로 밝고 따뜻하다. 사랑의 느낌, 낙원의 이미지, 무구한 유년기의 추억이 시집을 지배한다. 오늘날 많은 시가 상처와 고통, 슬픔, 분노 등을 표출하는 데 주력하는 것에 견주면 문태준 시집의 이런 성격은 매우 이채롭게 다가온다. 사랑의 언어적 표현이 바로 시라고, 시인은 생각하는 듯하다. 그런 점에서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라는 제목은 적실하다.

“우리는 서로에게/ 환한 등불/ 남을 온기/ 움직이는 별/ 멀리 가는 날개/ 여러 계절 가꾼 정원/ 뿌리에게는 부드러운 토양”(‘우리는 서로에게’ 부분)

“나는 너의 뒷모습/ 나는 네가 키운 밀 싹/ 너의 바닷가에 핀 해당화// 어서 와서 앉으렴/ 너는 나의 기분 위에 앉은 유쾌한 새”(‘사랑에 관한 어려운 질문’ 부분)

시집을 읽다 보면 눈앞에 환한 등불이 켜진 것처럼 절로 기분이 유쾌해진다. 사랑하는 두 사람으로 자족적인 세계, 서로를 키우고 북돋우는 살림의 관계를 시인은 찬미하고 고무한다. 시집의 전반적 정조에서 동떨어진 ‘절망에게’라는 제목을 단 시가 들어 있지만, 여기서도 시인은 “그러나 아이들의 꿈인 사과를 떨어뜨리지는 못하리”라며 절망을 넘어설 각오와 기대를 힘주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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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시인.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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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의 이번 시집을 “언제라도/ 비탄이 없는/ 악보”(‘석류’)라 한다면, 유년기와 어머니의 추억은 그 악보의 저변에 깔리는 주제음이라 하겠다. “활짝 핀 꽃 깊고 깊은 곳에/ 어머니의 음성이 흐르네// 흰 미죽(?粥)을 떠먹일 때의 그 음성으로”(‘연꽃’)라거나 “나를 돌보던 이의 혼이 오늘 다시 오신 듯이/ 투명한 날개를 가만히 엷은 미소처럼 펼쳐//(…)// 엄마의 자장가 속으로 나의 잠이 들어가듯이”(‘나의 잠자리’)에서 어린 ‘나’를 먹이고 재우던 어머니의 사랑은 언제까지고 ‘나’를 지키고 이끌 힘으로 되살아난다. 그리고 그 어머니의 사랑을 존재와 세계의 근원으로 넓힐 때 이런 시들이 탄생한다.

“아름다운 바퀴가 굴러가는 것을 보았네/(…)/ 꽃, 돌, 물, 산은 아름다운 바퀴라네/ 이 마음은 아름다운 바퀴라네”(‘일륜월륜(日輪月輪)-전혁림의 그림에 부쳐’ 부분)

“이만한 물항아리를 하나 놓아두려네/ 생활이 촉촉하고 그윽하도록//(…)// 산에 든 내 눈동자에는/ 물의 흥겨운 원무(圓舞)// 물항아리를 조심해서 안고 집으로 돌아가네”(‘산중에 옹달샘이 하나 있어’ 부분)

시집의 첫 시와 마지막 시다. 해와 달 같은 둥근 바퀴 또는 둥근 물인 옹달샘의 춤을 노래한 시들이 시집을 열고 닫는 것이다. 존재는, 그리고 삶은 둥근 것이라고 야스퍼스와 고흐는 파악했다(바슐라르 <공간의 시학>). 사랑 역시 둥글 것이다. “아름다운 바퀴가 영원히 굴러가는 것”(‘일륜월륜’)이 곧 존재이고 사랑 아니겠는가.

최재봉 기자,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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