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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덩케르크 뒤엔 옥쇄당한 병사 4천명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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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봉현의 책갈피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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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덕의 경영
노나카 이쿠지로 · 곤노 노보루 지음, 정선우 옮김/에버리치홀딩스(2009)


요즘 입소문이 난 영화 <다키스트 아워>를 봤다. 지난해 여름에 본 <덩케르크>의 무대를 해협 건너편으로 옮긴 듯, 제2차 세계대전 초기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의 내면과 리더십에 초점을 맞춘 영화였다.

지식경영학의 대가인 노나카 이쿠지로 등이 쓴 <미덕의 경영>은 처칠을 새로운 리더십의 표상으로 소개한다. 미덕의 경영은 요즘 얘기하는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경영이고, 이를 실천하는 역량이 ‘현려(賢廬)의 리더십’이다.

현려란 복잡한 상황을 주어진 그대로 받아들이고, 목표를 향해 나가는 ‘실천의 지혜’이다. 때로 행동에서 선악이 혼재한 모습을 보일 때가 있는데, 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대가이다. 그럼에도 행동의 궁극에는 선악의 명확한 판단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애초에 품은 사명감, 이타적인 동기, 공동선 같은 것이 등불이 된다.

총리가 되기까지 수없이 실패한 처칠은 완벽한 지도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국왕 조지 6세가 총리 임명을 머뭇거리며 “판단력이 부족”하지 않냐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국민을 단합시키고 미국, 소련을 묶어내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 책에 나온 현려형 리더의 6가지 요소를 영화에 대입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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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키스트 아워>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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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선악 판단 능력. 히틀러에 계속 유화책을 썼던 아서 체임벌린 전 총리와 ‘지금이라도 무솔리니에게 중재를 요청하자’는 핼리팩스 외상 등 협상파의 압박이 거셌지만, 처칠은 시종일관 강경했다. 파시즘이란 ‘악’이 전쟁의 발톱을 세운 이상 싸워서 이기는 수밖에 없다고 봤다. 물러서지 말아야 할 지점을 정확히 아는 그의 결연함이 불리한 전세를 역전시켜 연합국이 승리하는 원동력이 됐다.

둘째, 공감 능력. 처칠은 다혈질이었으나 위트와 유머로 불안한 사람들의 마음을 녹였다. 2차 대전 중 방송연설을 49회나 하며 국민을 독려한다.

셋째, 현장 감각. 30만명이 넘는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덩케르크 해변에 갇힌 진퇴양난 속에서 자신에게 적대적인 국회의원들이 그물을 쳐두고 기다리는 의회로 향하던 처칠은 홀연 승용차에서 내려 지하철에 올라탄다. 그곳의 런던 시민들이 “머리 위 거리에 독일군 탱크가 들어온다 해도 끝까지 싸울 것”이라 한결같이 말하는 것을 보고 처칠은 타협은 길이 아님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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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처칠이 지하철의 시민과 대화하는 장면


넷째, 설득력. 특수한 경험을 보편적인 언어와 논리로 재구성하는 능력이다. 조금 전 지하철에서 만난 시민들의 말로 연설을 시작한 처칠은 왜 싸워야 하고, 싸우면 이길 수 있는지 명확하게 제시한다. 팔짱을 끼고 있던 반대파 의원들도 연설이 끝날 때는 기립박수를 보낸다.

다섯째, 마키아벨리적 실행력. 덩케르크 해안에 고립된 30만명을 구해낼 시간을 벌고자 처칠은 인근 칼레에 주둔한 4천명의 영국군에게 옥쇄를 지시한다. 부대장에게 ‘철수계획은 취소됐다’는 명령서를 쓰며 그는 괴로워한다.

여섯째, 리더를 육성하는 능력.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처칠은 90살을 넘긴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후진 정치가 육성에 힘을 쓴다.

노나카가 말하듯 사회의 공동선을 추구하는 데서 사람이 모이고 따르며 혁신의 지혜가 생긴다. 하지만 뜻이 높아도 이를 실천하는 능력이 모자라면 소용이 없다. 덤불을 헤쳐가면서도 길을 잃지 않는 ‘현려의 실천력’이 필요하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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