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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시인의 마을] 푸른 냉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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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푸른 냉장고 허 형 만

천하의 전기는 푸른 눈빛을 번득이며 다 이곳으로 모이죠 들어 보세요 심호흡을 끝낸 새가 절벽에서 날아오르려는 찰나의 숨소리 전류를 타고 도착했어요 사막여우의 발끝에서 튕긴 따가운 햇살도 꼬리를 내리고 막 도착했네요 수은등보다 더 은밀한 불빛이 반란을 꿈꾸는 시간, 안개보다 짙은 선팅으로 감추려 해도 꿈은 늘 들키기 마련이지요 쪽방에서 발견된 시체처럼 아껴 놓은 사과 한 알이 이미 굳어 있어요 축제 때 받은 붉은 꽃잎도 입술이 보라색으로 변해 버렸네요 칸칸마다 푸른 인광이 번득이는 풍문이 빙하처럼 둥둥 떠 다녀요 밀폐 용기는 믿을 게 못 돼요 그러니 함부로 문 열지 마세요 문단속 잘하세요 머리카락 보이지 않게 꼭꼭 잘 숨으세요 풍문이 탈출하면 풍문은 태풍으로 돌변해요 냉장고는 그래서 늘 위태해요

-시집 <황홀>(민음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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