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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김남희의 앉아서 하는 여행, 몸으로 읽는 책] (24) 신비감은 몰이해에서 비롯…생명의 그물 속, 누구도 혼자였던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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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과 ‘나무의 노래’ ‘숲에서 우주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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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밑의 풍경은 비현실적이었다. 뱀처럼 구불구불 흘러가는 강줄기 사이로 온통 검푸른 숲이었다. 건물도, 전선도,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인류가 출현하기 전 백악기 중생대쯤의 풍경이 이러했을까. 초식 공룡 프로토케라톱스가 나무 사이로 얼굴을 내민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이과수 폭포를 보기 위해 초경량 비행기를 탔지만 내 시선은 끝없이 펼쳐진 숲에 붙들려 있었다. 지구 최대의 열대우림은 바늘 하나 떨어질 틈도 없이 빽빽해보였다. 몸을 창밖으로 날리면 나무의 우듬지로 사뿐히 내려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풍경에 사로잡힌 나는 브라질의 마나우스까지 들어가 아마존 투어를 신청했다. 칠레의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는 한번 아마존에 발을 디디면 영원히 아마존에 사로잡히게 된다고 경고했는데, 나는 겁도 없이 발을 디뎠다. 아마존강에서 피라냐 낚시를 하고, 침묵 속에서 해돋이를 보고, 촘촘한 정글 속을 걸어다니며 인디언놀이를 했다. 악어와 나무늘보와 타란툴라를 찾아다니고, 수상가옥을 방문해 생선 튀김에 밥 한 끼를 얻어먹고 아이들과 놀았다. 낮은 숨을 곳 없이 어디나 빛으로 번쩍거렸고, 밤은 먹물을 뿌린 듯 검고 어두웠다. 한바탕 소나기가 지나가고 나면 숲의 그림자를 제 몸에 드리운 강의 물색이 짙어졌다. 저녁놀이 질 때나 아침 해가 떠오를 때면 강물은 피를 머금은 듯 붉었다. 숲에는 천수관음상처럼 가지를 펼친 우람한 나무들이 도처에 가득했다. 아마존에서 인간은 지구의 자궁에 깃든 작고 약한 존재였다. 나는 아마존에서 보아야 할 모든 것을 다 보았다고 믿으며 아마존을 떠났다. 딱 사흘 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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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도 나는 아마존에 갔으나 아마존을 보지 못했다. 지구의 생태환경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나는 그 숲의 생명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알지 못했다. 다음 생에는 나무와 몸을 바꿔 이 세상에 오고 싶을 만큼 나무에 끌리면서도 나무의 어떤 점이 나를 사로잡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인간의 삶은 부표처럼 떠밀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불안정한 삶이기에 한자리에서 붙박이로 선 나무의 삶을 동경하는 것일까. 그 정도였다. 아마존에 대한 나의 이해는 논리적인 이해가 아닌, 본능적이고 감각적인 끌림일 뿐이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에 대해서는 그저 신비의 영역으로 밀어버리는 내 게으른 특기가 아마존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자연에 대한 과학적인 지식과 인문학적인 성찰이 없는 바라봄은 피상적인 인상 비평에 불과했다. 코끼리 다리에 붙은 벼룩인 주제에 감히 코끼리를 안다고 떠들고 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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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내가 놓쳤던 나무의 생명 그물망을 생태학적 지식에 기반을 둔 성실함으로 관찰함으로써 ‘숲에서 우주를 보’게 하는 책을 만났다. 생물학자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이 쓴 <나무의 노래>다. 나는 이 책을 내가 머무는 태국 북부의 도시 치앙마이에서 읽었다. 건기였지만 초록의 기운이 여전히 짱짱한 곳이었다. 매일 가는 카페는 금사슬나무, 프란지파니, 자귀나무를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들려오는 곳이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 나는 먹먹해진 마음으로 정원에 섰다. 나는 늘 나무와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막연한 느낌만 지녔는데, 이제 나무 한 그루를 매개로 세상과 내가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 지적인 희열 덕분인지 늘 보던 나무들이 등불이라도 켜진 듯 밝아 보였다. 깊은 숲속의 깨끗한 나무가 아니라 먼지와 매연이 가득한 도시에 서있는 나무들이라 더 애틋했다. 내가 자연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고 느꼈던 그 순간에도 나는 혼자였던 적이 없음을, 나무와 나는 이토록 오랜 세월에 걸쳐 깊이 이어져 왔음을 이 책이 알려줬다. 이 책 덕분에 나는 매일 오가며 마주치는 나무의 이름을 더 다정하게 부르게 되었고,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나무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다는 바람이 간절해졌다.

열두 그루의 나무에 관한 이야기는 케이폭나무로 시작한다. 십오년 전, 폐허가 된 앙코르와트의 사원에서 돌벽을 뚫고 솟아난 나무의 생명력에 매료되었는데도 나는 이름을 알지 못했다.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회갈색의 뿌리가 무너진 돌들을 뒤엎어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내던 그 나무가 케이폭나무였다. 발삼전나무를 이야기할 때 저자는 나무의 기억력을 증명한다. 털애벌레나 말코손바닥사슴에게 바늘잎을 먹히는 공격을 당하면 그 부위를 맛없는 나뭇진으로 보호하고, 1년 전의 기온까지 기억해 세포의 방한 준비를 할 시기를 안다니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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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섬이나 열대우림의 나무들뿐 아니라 미루나무와 개암나무 같은 대도시의 나무도 불러온다. 나는 도시의 편리함을 포기하지 못한 채 살아가면서도 도시에서의 삶에 늘 결핍감을 느꼈다. 하늘을 가리는 콘크리트 빌딩과 흙을 밟을 수 없는 도로가 싫었다. 그것들은 내가 자의적으로 구분했던 자연과 비자연의 세계에서 비자연에 속해 있었다. 나에게 도시는 자연과 나를 분리하는 장벽이었고, 나를 비롯한 인간은 자연을 오염시키고 파괴하는 침략자에 불과했다. 나는 끝없이 자연을 찾아 도시를 탈출하고는 했다. 그리고 이런 식의 세계관이 당연하다고 믿었다. 이 책은 그런 이분법적인 사고를 뒤집는다. 자연과 비자연을 나누는 풍경의 이중성이 커질수록 인간이 이 세상에 속한다는 사실을 깨닫기가 점점 힘들어진다고 지적한다. 어떤 생명도 단독자로서 존재할 수는 없기에 그는 ‘분리의 윤리’가 아닌 ‘속함의 윤리’를 이야기한다. 자연이 별개의 영역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야생의 존재라니! 나는 ‘자연과 함께’를 갈구했을 뿐, 자연 안에 내가 속한 존재임은 자각하지 못했다. ‘지표면의 3퍼센트를 차지하고서 인구의 절반을 수용’하는 도시 덕분에 시골의 생명 다양성이 높은 것이니 도시에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함을 인정하게 되었다. 도시의 전자파는 새들의 나침반을 교란하고, 경유가 내뿜는 매연은 벌들의 구애를 헷갈리게 하고, 도시의 냄새는 나방이 길을 잃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나는 도시 안에 있는 자연을 기억하고 찾게 될 것이다.

새로운 앎이 주는 충격은 책을 읽어나갈수록 깊어졌다. 외래종이라고 비난받는 식물들이 한때는 칭송받았던 현실을 돌이켜보면 인간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가변적으로 식물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도, 한 지역이 부유해져 숲을 보호한다는 것은 목재 수요가 사라지지 않는 한 다른 지역의 숲이 사라지고 있는 일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우리의 삶은 이런 식으로 이어져 있었다! 모든 생명이 깊숙이 연결되어 다른 존재에게 의지하는 ‘공동의 삶’ 외에는 다른 삶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내 사소한 행위들이 나와 연결된 다른 생명에게 미치게 될 영향을 가끔씩이라도 고민하게 될 것이다. 무엇만 하면 혹은 하지 않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 믿었던 단순하고 평면적인 세계관에는 답이 없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기에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면 다른 문제가 등장한다. 핵발전을 하지 않으려다 보면 화석연료의 사용에 더 의지하게 되기 쉽고, 풍력발전소를 많이 짓다 보면 소음이나 조류 생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니 하나의 확고한 정답을 찾으려는 시도가 아닌, 이미 찾은 답의 오류를 끝없이 수정하며 끈기 있게 연대하며 나아가는 노력이 중요하다. 이 세계 안에서 인간이라는 종이 지닌 영향력을 자각하며 살아가는 것, 그 예민함과 수고로움이 우리가 지닌 유일한 대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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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생태미학이란 ‘자극적인 예쁨이나 감각적 참신함’ 같은 피상적인 인상이 아니라 ‘생명 공동체의 부분 안에서 지속적이고 체화된 관계를 맞음으로써 아름다움을 지각하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그런 미학적 능력은 당연히 자연에 깃든 모든 생명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지속적인 신체적 관계’를 맺을 때 생겨난다. 저자가 또 다른 책 <숲에서 우주를 보다>에서 같은 장소를 1년에 걸쳐 꾸준히 찾으며 작은 원에서 수많은 생명의 촘촘한 그물을 드러내보였듯이 나도 숲으로 가 나의 작은 우주를 읽어내고 싶다. ‘자연의 위대한 연결자’로서의 나무를 제대로 만나고 싶다. 그 준비가 된다면, 나는 다시 아마존을 찾아갈 것이다. 배낭 속에 몇 권의 책과 도구들을 넣어서. 아마존의 식생을 미리 공부해 그 숲에 깃든 나무의 이름을 한 그루 한 그루 불러줄 것이다. 망원경으로 우듬지에 깃든 열대의 새들을 찾아볼 것이고, 잎맥에 돋보기를 들이대고 비가 많고 습한 아마존에서 나무의 잎은 어떻게 진화해왔는지를 궁금해할 것이다. 소나기가 지나간 후에는 나무의 몸에 청진기를 대고 뿌리로부터 물을 빨아들이는 소리를 들어볼 것이다. 그럼으로써 내가 이름 불러주고 어루만지고 오래 들여다본 몇 그루의 나무를 내 안에 새길 것이다. 그날이 오기까지는 내가 살아가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자연 안에 깃든 생명의 소리를 읽어내는 일에 애쓸 것이다.

<김남희 도보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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