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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박윤정의 원더풀 체코·슬로바키아] 시내 곳곳 숨은 그림처럼…현대 작품 찾는 재미 쏠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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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프라하 / ‘프라하의 봄’은 체코 자긍심의 축제 / 전날 공연 감흥에 이른 새벽 산책 나서 / 밤의 화려함 사라진 고즈넉한 도시 / 건물 곳곳에 붙어있는 이채로운 조각 / 괴짜·선동가로 불리는 체르니 작품 / 전통과 현대 미술 발랄하게 어우러져

유려한 오케스트라의 음악을 따라 몰다우강이 흐른다. 체코의 수려한 강산이 아름답게 펼쳐지다가 웅장한 민족적 기상으로 휘몰아친다. ‘프라하의 봄’에서 듣는 베드르지흐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은 평소와는 전혀 다른 감동을 선물한다. 그 선율 위에 체코 민족의 고난과 긍지, 독립과 혁명으로 이어진 현대사의 굴곡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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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카를교 조각상 아래 간절한 기도를 올리는 프라하 시민.


‘프라하의 봄’과 베드르지흐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나의 조국’은 여섯 곡으로 이뤄진 연작 교향시로 1887년부터 1880년에 걸쳐 작곡되었다. 당시 체코의 국민 작곡가의 반열에 올랐던 스메타나는 이미 청력을 잃은 상태였지만 체코 민족의 고난 극복과 오스트리아로부터의 독립에 대한 희망을 담아 교향시를 완성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체코가 독립한 1946년, 체코 필하모닉 창단 50주년에 시작된 ‘프라하 봄’ 음악제는 스메타나의 기일인 5월 12일에 ‘나의 조국’ 연주와 함께 시작되었다. 당시 음악제를 창설하고 초연의 지휘를 맡았던 라파엘 쿠벨릭은 1948년 쿠데타로 체코의 민주화가 좌절되면서 40여년의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그리고 체코의 민주화혁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이듬해, 1990년에 열린 ‘프라하의 봄’에서 ‘나의 조국’의 지휘자는 오랜 망명을 마치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온 라파엘 쿠벨릭이었다. 30대의 젊은 지휘자는 70대 후반이 되었고 건강마저 악화한 상태였지만 힘차게 지휘봉을 휘둘렀으며, 이 모습을 지켜보던 시민혁명의 지도자이자 체코의 대통령 하벨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체코를 넘어 전세계에 커다란 감동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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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봄’은 그 자체로 세계 최고 수준의 음악축제이지만 체코인들에게는 조국 독립과 영광에 대한 자긍심의 축제다. 음악은 이처럼 하나의 민족을 끊임없이 단결시키고 자유와 독립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힘을 담고 있다.

음악회가 끝나고 다시 마주한 프라하의 거리가 새삼 달리 느껴졌다. 감동의 여운으로 그냥 호텔에 돌아올 수 없어 시민회관의 카페에 와인 한잔과 마주앉았다. 카페는 건물에서 흘러내리는 화려한 불빛과 청중의 웅성거림으로 가득하다. 은은한 달빛이 현대사의 고비들을 함께 넘겼을 시가지 곳곳의 건물에 스며든다. 음악과 역사와 문화를 함께 생각하며 늦은 밤까지 프라하의 정취에 빠져들었다.

전날의 감흥이 채 가지지 않은 듯 다음날 새벽에도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난밤 아름다웠던 도시를 새벽에 다시 보고자 거리로 나선다. 밤의 화려함이 사라진 고즈넉한 도시가 차가운 공기에 둘러싸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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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이 넘치던 거리는 흥분을 가라앉힌 듯 조용하다. 어둠이 조금씩 걷히고 주변이 차츰 밝아지면서 구시가지 광장과 카를교 주변에서 사진촬영에 여념 없는 작가와 모델들을 만났다. 최근 들어 중국인들에게 해외 웨딩사진 촬영지로 유명하다더니 이른 새벽부터 아름다운 모습을 담기 위해 쌀쌀한 온도에도 진지하게 촬영을 하고 있다. 관광객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오롯이 아름다운 배경과 그들만이 모습을 담고자 이른 아침에 촬영이 이루어지는 듯하다. 그들을 작업에 방해되지 않으려고 멀찍이서 결혼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네고 돌아섰다.

아침 조깅을 즐기는 프라하 시민과 뒷골목 길 술집에서 새벽까지 파티를 마친 젊은이들을 보며 새삼스럽게 이곳 역시 관광지 이전, 누군가의 삶의 터전일 거라는 생각을 하며 산책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다.

오늘 일정은 늦은 저녁 예약돼 있는 공연뿐이다. 하루가 여유롭다. 색다른 프라하를 찾아볼 생각으로 컨시어지에게 프라하를 안내해줄 가이드를 부탁하고 여유로운 아침 식사를 즐겼다. 식사를 마칠 무렵 엘리스(Alice)라는 이름의 건강하고 아름다운 흑발 여성이 도착했다. 전문 가이드라고 본인 소개를 한다. 그녀의 도움으로 한나절 동안 내가 모르는 색다른 프라하를 만날 생각을 하니 설렌다. 여행지는 미리 공부하고 스스로 찾아다니는 재미도 있지만 현지 가이드를 만나 설명을 듣고 얘기를 나누다 보면 색다른 재미가 되기도 한다. 그녀는 프라하에서 태어나고 자랐다고 한다. 완벽한 의사소통이 가능하지 않아 다 이해할 수 없겠지만 나름 뜻 깊은 시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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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프라하의 지슈코브 TV타워는 높이 216m의 강철로 된 TV송신탑이다. 프라하에서 눈에 띄는 가장 높은 건물로 360도 전망대에서 프라하를 모두 내려다 볼 수 있다. 송신탑엔 아이가 타워를 기어오르는 조각상이 설치돼있다.


처음으로 안내한 곳은 지슈코브(Zizkov) TV타워다. 높이 216m의 강철로 된 TV송신탑으로 프라하에서 눈에 띄는 가장 높은 건물이다. 특히 360도 전망대에서 프라하를 모두 내려다볼 수 있어 유명하다. 지상 66m에 있는 고급 레스토랑과 지상 70m에 위치한 단 하나의 방으로 이뤄진 독특한 침실 호텔도 유명하지만 이곳으로 안내한 이유가 타워에 매달린 조각품들을 자세히 보기 위함이란다. 아이가 타워를 기어오르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문제는 아이들의 얼굴이다. 귀여운 표정의 얼굴이 아니라 둥그런 형태만 있고 눈, 코, 입이 표현되지 않아 조금은 흉측해 보인다. 이 때문에 원래는 도시 공원에 전시되어 있다가 시민들 불평이 넘쳐나자 결국 타워에 매달리게 되었다고 한다. 선동가, 문제아, 괴짜라는 수식이 늘 따라붙는 예술가 다비드 체르니 작품다웠다. 설명을 들은 후 프라하 시내 곳곳에 숨은 그림처럼 위치한 그의 작품을 찾아보는 것 또한 색다른 경험이다. 프라하가 단순히 전통과 역사의 도시만이 아니라 현대적인 예술의 도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예정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가이드와 함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새로운 프라하 여행이 시작됐다. 프라하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기대 속에 엘리스와 함께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여행가·민트투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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