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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ESC] 얼음판에서 뭐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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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SC]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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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에 온 가족이 모여 티브이(TV)로 평창겨울올림픽 컬링 경기를 봤다. 신중하게 돌을 밀어 보내고, 얼음판이 마르고 닳도록 맹렬하게 빗자루질을 하며, 돌의 방향을 잡느라 고함을 지른다.

한동안 경기를 지켜보던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얘, 저게 뭐 하는 거냐?” “컬링이라고, 얼음판 구슬치기, 알까기라고 생각하심 돼요.” “근데, 왜 저런 걸 올림픽에서 하냐?” 심기가 좀 불편하신 듯했다. 선수들이 다시 돌을 앞서가며 들입다 빗자루질을 해댔다. 돌이 원 중심선을 지나자 이번엔 상대 선수들이 빗자루질을 하며 돌을 내보내려 애쓴다. “쯧쯧, 뭣들 하는 건지 가관일세. 애들 장난 같은 걸 올림픽 경기라고. 에잉.” 90살이 넘으신 아버지, 거의 화를 내고 계셨다. 인터넷을 뒤져가며 설명을 드렸다. “중세 스코틀랜드의 전통 겨울 놀이에서 시작됐고요. 1998년부터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됐네요. 두뇌 싸움이 흥미진진해서 ‘빙판 위의 체스’라고 한답니다.” 아버지는 더 답답해하셨다. “당최, 모르겠다. 맷돌 밀어서 원 안에 넣는 게 무슨 기술이라고. 맹꾕이 같은 것들.”

아버지는 귀가 어두우시다. 아버지도 나도 목이 아프고, 가슴이 답답해진 채 대화를 마쳤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돌(경기용 스톤) 하나가 100만원이 넘고, 빗자루(브룸)는 20만원짜리’라는 건 말하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집에서 다시 컬링 경기를 봤다. 그때 반전이 일어났다. ‘따르릉…’ 아버지 전화. “얘, 근데 저거 오늘 다시 보니까, 재미는 있구나. 헛헛.” 다행이었다. 여자 컬링팀이 승승장구하는 걸 기뻐하셨다. 다음날에도 전화를 하셨다. “너도 보냐? 여자 팀이 참 잘하더라.” 마침내 컬링 팬이 되신 거였다. 그리고 한말씀 더 하셨다. “얘, 저거 한번 해볼 데 어디 없냐?”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게 올림픽 경기다. 전 국민이 컬링에 빠져든다면, 정말 컬링 경기장 몇 개쯤 생기지 않을까? 그러면, 아버지 모시고 가야겠다. 아버지가 돌을 밀면, 나는 들입다 빗자루질을 하는 거다. 헐! 헐!(빨리 문지르라는 컬링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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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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