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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ESC] ♬ 돼지꼬리 뚜루루뚜루, 먹어봐 뚜루루뚜루, 몰랑몰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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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SC] 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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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꼬리, 드셔보셨나요? 처음 먹어본 곳은 제주 시내의 순댓집이었어요. 제주 순대 맛은 뭍과 다르더군요. 딸려 나오는 ‘돼지부속’에도 못 보던 녀석이 끼어 있었어요. “그게 돼지꼬리예요.” 가는 뼈, 비계 없이 쫄깃한 살, 꾸덕꾸덕 두꺼운 껍질. 크기만 조금 컸지 사람 손가락을 물어뜯는 것 같아 살짝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일단 맛을 들이니, 없어서 못 먹을 정도로 맛있었어요.

나중에 서울의 에스파냐 식당에서 서양식 돼지꼬리도 먹어봤어요. 돼지꼬리를 당근처럼 얇게 썰어 튀긴 후 뜨거운 상태로 내오더군요. 기름진 돼지껍질을 바삭하게 튀기고 굵은소금을 뿌렸으니, 얼마나 맛있겠습니까. 맥주 생각이 절로 나던데요. 가끔 돼지털이 숭숭 달린 채 튀겨 나온 조각은 불편하지만요. (그래도 눈 딱 감고 털째 먹습니다. 맛있으니까요.)

돼지꼬리 달린 사람 아이가 등장하는 문학작품도 있습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걸작 <백 년 동안의 고독>에서 돼지꼬리는 중요한 상징이지요. 마르케스는 ‘마술적 사실주의’로 유명한 작가. 그의 작품에는 실제로 있을 법한 일과 허구임이 분명한 일이 뒤엉켜 등장합니다. 그런데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에서의 상상력과 예술적 창조>라는 글에서 마르케스 자신은 마술적 사실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너스레를 떱니다. 제3세계 라틴아메리카에서 일어나는 일은 진짜로 일어난 일이라 하더라도, 멀리 유럽의 제1세계 사람이 보면 거짓말처럼 보인다는 거죠.

반면, 있을 법하지 않을 것 같아 지어낸 거짓말이 머나먼 나라에서는 사실로 일어나기도 한대요. 마르케스는 소설에 왜 하필 돼지꼬리를 달고 태어난 사람 이야기를 넣었을까요. 가장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해 그랬다고 합니다. 그런데 소설을 읽은 어느 독자가 돼지꼬리를 달고 태어난 여자 어린이의 사진을 보내왔대요. 수술로 꼬리를 제거하고 잘 살고 있다나요. 바로 이곳, 한국의 서울에서요. (마르케스 쪽에서 보면 서울이야말로 지구 반대편, 머나먼 나라지요.)

마르케스의 여느 작품처럼 이 이야기 역시 사실 같기도 하고 거짓말 같기도 합니다. 사실과 허구의 구별은 생각처럼 뚜렷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돼지와 사람, 먹는 쪽과 먹히는 쪽의 구분도 그렇고요.

한편 돼지꼬리에 대해 나는 불편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많은 돼지들이 태어난 지 열흘 안에 꼬리와 송곳니가 잘린다는군요. 비좁은 우리에 갇혀 스트레스를 받다가 서로의 꼬리를 물어뜯기 때문이래요. 돼지꼬리는 공장식 축산의 참상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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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꼬리를 자르거나 마취 없이 거세하는 일을 막기 위해 정부는 ‘동물복지 양돈농장 인증제도’를 2013년부터 시행했습니다. 이듬해 첫 인증농장이 등장했고요. 그러나 참여하는 농장이 아직 적습니다. 동물복지 기준에 맞춰 사육하더라도 기준에 맞는 방식으로 도축하고 인증마크를 붙인 채 시장에 유통시키는 일이 쉽지 않고요, 비싼 값을 내고 소비자들이 선택할지도 아직 의문입니다. 앞으로 “가난한 사람은 돼지고기도 먹지 말란 말이냐”는 볼멘소리도 나올지 몰라요. 동물복지에 마음 쓰는 육식이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 듯합니다. 그러나 돼지가 돼지꼬리를 물어뜯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요? 적어도 마음 편하게 돼지고기와 돼지꼬리 맛을 즐기기는 힘든 세상 아닐까요.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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