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6 (수)

"목소리 내지 못한 이들 위해 모든 것을 할 것"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미투 운동 동참한 피해자 전화 인터뷰

"연극 연출가 조증윤에게 16세에 피해 당해"

“이렇게까지 똑같은데 가만히 있어도 되는건가 했다.”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me too)운동에 동참한 김모(26)씨는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윤택 연출가와 관련한 피해자들의 고백을 보며 자신의 피해를 공개하기로 결심했다. 김씨는 16세에 경남 김해의 연극 연출가 조증윤(50) 극단 번작이 대표에게 성폭력을 당한 내용을 인터넷에 올렸다. 당시 중학생이던 김씨는 방과 후 수업으로 연극부에 들어갔다 조대표를 만났다.

김씨는 18일 익명 게시판인 서울예대 대나무숲에 글을 썼다. “몸을 주무르고 처음엔 발이었다나 종아리였다가 사타구니였다가…너무 어려서 그랬는지 문제인 걸 알면서도 문제라고 생각지 못했다”고 썼다. 또 차 안에서 성폭행과 강간을 당한 사건을 공개했다. 이후 실명으로 된 페이스북을 통해 다시 한번 피해 사실을 알렸고 조대표에게 피해를 입은 세 명의 사연을 대신 업로드했다. 그는 “또 다른 피해자가 없게 하기 위해서, 미처 목소리 내지 못한 후배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라고 썼다.

김씨는 본지와 전화 통화에서 “최근 미투 운동, 특히 이윤택 연출가에 대한 피해자들의 고백을 보면서 내가 당한 일을 거울로 다시 보는 것 같았다. 이를 직시해야 될 것 같다는, 내뱉어야 할 것 만 같아 피해를 공개했다”고 말했다. 한국연극협회는 조대표를 영구 제명했고 경남지방경찰청은 수사에 착수했다. 다음은 김옥미씨와의 일문일답.



Q : 같은 가해자를 둔 피해자가 더 많은 것 같다.

A : “어른 위치에서는 아이들 중에도 약한 아이들이 보였을 거다. 누가 만지면 보통 ‘왜 이러세요’ 하는 게 당연한데 못하는 경우도 있다. 가벼운 것부터 시작해서 점점 더 갔다. 저항을 해야 하나, 그런 허무맹랑한 고민을 하는 순간 이미 걸려든 거다. 자신을 잘 따를지, 크게 저항하지 않을지 그런 걸 이미 다 판단했을 거라고 생각이 된다.”




Q :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창구가 없었나.

A : “뿌리깊은 비틀린 윤리라고 해야하나. 그런걸 어른들에게 발견했다. 몇년 후인 고등학교 3학년 때 한 선생님에게 이런 일을 당했었단 얘기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에는 무의식적인 마지막 SOS였다는 생각이 든다. ‘고생이 많았겠구나. 그래서 너의 글이 그런 느낌이었구나’ 정도였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사람들이 잘 몰랐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한 후배가 그런 일을 당했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전화해서 극단에 가지 말라고 했던 게 전부다. 후배에게 어떤 피해가 있었는지 보고 형사 처벌까지도 했어야 했다.”




Q : 피해 사실을 알릴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나.

A : “이윤택 연출가가 물수건으로 몸을 닦으라고 하고 안마를 시켰다는 내용을 보고 엄청나게 놀랐다. 너무 똑같아서. 이렇게 똑같은데 가만히 있어도 되는건가 했다. 너무나 흡사했다.”




Q : 다른 미투 고백을 봤을 때 심경은.

A : “똑같은 일을 당한 사람, 같은 짓을 한 사람을 보고 그 순간부터 심장이 벌렁벌렁 뛴다. 잠을 못 잔다. 내가 당한 일을 거울로 다시 보는 것 같았다. 이를 직시해야 될 것 같다는, 내뱉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 이 얘기를 함으로써 누군가가 봤을 때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Q :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나.

A : “사실 이렇게까지 될 줄은 전혀 몰랐다. 조대표가 한국연극협회에서 영구제명이 됐을 때 많이 놀랐다. 일이 이렇게 되기도 하나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다른 연극계 사람들이 ‘그럼 누가 대표가 된다는 얘기야?’ 하는데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 단순히 극단 안 가면 되고 연극 안 하면 문제가 아니구나, 이거 끝도 없이 계속 되겠구나 싶었다.”




Q : 앞으로 무엇을 먼저 바로잡아야 할까.

A : “일단 원칙은 있었던 일을 있었던 그대로 수면 위로 띄우는 것이다. 특히 미성년자는 누가 그걸 밝혀줄 사람이 없다. 나에게 이 일이 극단적으로 비극적이고 힘들었던 건 어릴 때 당했기 때문이다. 문제가 뭔지 깨닫는 데 만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쿨한 사람이고 싶어서 최근까지도 가해자와 연락을 했고 심지어 결혼식에까지 초대를 했다. 이제는 이 일이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하고 살고 싶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모바일에서 만나는 중앙일보 [페이스북] [카카오 플러스친구] [모바일웹]

ⓒ중앙일보(http://joongang.co.kr) and JTBC Content Hub Co., Lt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