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6 (수)

"2주에 하나꼴로 언어 소멸"…'세계 母語의 날' 포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어디까리 인하대 교수 "언어 다양성으로 인류 유산 보존해야"

유네스코한국위·주한 방글라데시대사관 공동 주최

연합뉴스

21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유네스코회관 11층 유네스코홀에서 열린 '세계 모어(母語)의 날 기념 포럼'에서 김광호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단상 좌석에는 유정현 외교부 남아시아태평양국장(왼쪽)과 아비다 이슬람 주한 방글라데시 대사(오른쪽)가 앉아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평균 2주에 하나꼴로 언어가 소멸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안에 담긴 고유한 문화, 토착적인 가치체계, 지적 자산도 함께 사라지고 있습니다. 현재 지구상에서 쓰이는 7천여 개의 언어 가운데 절반가량이 몇 세대 안에 없어질 위기에 놓여 있으며 이들 언어의 96%는 세계 인구 중 고작 4%만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불과 200∼300개 언어만이 교육과정과 공공 분야에서 쓰일 뿐이고 디지털 세상에서 쓰이는 언어는 100개가 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와 주한 방글라데시대사관이 21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유네스코회관 11층 유네스코홀에서 개최한 '세계 모어(母語)의 날 기념 포럼'에서 방글라데시 출신인 케샤브 어디까리 인하대 화학과 교수는 기조발제를 통해 언어 다양성 보존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동파키스탄 주민은 서파키스탄의 벵골어 사용 금지정책에 반대해 1952년 2월 21일 시위를 벌였다가 경찰의 발포로 4명이 숨졌다. 이를 계기로 분리독립운동에 나선 동파키스탄은 1971년 방글라데시라는 이름으로 독립했다. 방글라데시는 2월 21일을 '언어 순교자의 날'로 기념하고 있으며, 1999년 유네스코는 이날을 세계 모어의 날로 지정했다.

어디까리 교수는 방글라데시의 역사와 언어 전통, 시위의 배경과 전개 과정, '언어 순교자의 날' 제정 취지 등을 설명한 뒤 한국과 방글라데시의 역사적 유사성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한국과 방글라데시는 침략자에 대항해 투쟁하고 고난을 겪은 비슷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며 더욱 강력한 문화 동화정책을 실시했습니다. 1943년부터는 한국어 수업이 전면 금지되고 한국어 신문도 없어졌습니다. 이에 대항해 투쟁한 독립운동가들도 방글라데시의 언어 순교자들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기를 표현한 권리'를 수호하기 위해 희생한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권리는 지구 문명의 승리와 인류의 진보를 꿈꾸는 우리가 다음 시대를 위해 세워야 할 목표가 돼야 할 것입니다."

그는 "모어를 매개로 학습하면 학습자의 인지적 역량이 증진되고, 교육자와 학습자 사이에 진정한 소통이 가능해지며, 모어를 통한 문화 경험이 사회 참여를 수월하게 한다"면서 언어 다양성 보존과 모어 기반 다언어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연합뉴스

케샤브 어디까리 인하대 화학과 교수가 21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유네스코회관 11층 유네스코홀에서 열린 '세계 모어(母語)의 날 기념 포럼'에서 기조발제를 하고 있다.



토론자로 참석한 조원형 서울대 언어학과 강사는 식민지를 겪으며 토착 언어들이 사라지고 있는 콩고의 사례를 소개한 뒤 "모든 언어가 다른 언어만큼 중요하고 가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며, 표준이 아닌 사투리는 잘못된 것으로 여기는 태도도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강남욱 경인교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언어의 다양성과 보존 문제는 교육, 경제, 인식의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면서 "자신의 모어로 정체성을 확보하고 교육과 공공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캠페인의 차원을 넘어서 인권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에 앞서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일 뿐 아니라 가치관, 신념, 정체성, 경험, 전통, 지식 등을 담고 있으므로 모국어와 토착어 사용이 장려돼야 한다"는 오드레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의 '세계 모어의 날' 메시지가 낭독됐다.

김광호 유네스코한국위 사무총장은 개회사를 통해 "한국에서 세계 모어의 날을 공식적으로 기념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 자리가 모국어 사용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한국과 방글라데시 간의 우호 협력에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환영사에 나선 아비다 이슬람 주한 방글라데시 대사는 "인류 공통의 유산인 언어의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전 세계가 함께 힘을 모으자"고 당부했고, 유정현 외교부 남아시아태평양국장은 "포럼 개최를 계기로 방글라데시와 한국 국민의 우정이 더욱 깊어지기를 바란다"고 포럼 개최를 축하했다.

토론이 끝난 뒤에는 방글라데시·네팔·필리핀의 전통 노래와 춤 공연, 한국의 해금 연주 등이 펼쳐졌고 '세계 모어의 날'을 소개하는 영상이 상영됐다.

heeyong@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