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6 (수)

1만번 두드려 완성한 은입사 공예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은입사 장인 이경노 씨(60)는 예리한 정(釘)을 1만 번 이상 두드려 전통문양을 만든다. 은입사는 금속판 표면에 홈을 판 뒤 얇은 은실을 끼워넣고 두드려 바르게 펴는 수공예다. 이 은실을 만드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정교하다. 순도 99% 은을 1000도에 녹여 판에 부은 후 3㎜ 정도로 얇게 밀어 작두로 자르고 이것을 틀에 넣어 열을 가해 가늘게 실을 뽑아낸다.

서울 독산동 공방에서 오전 8시부터 밤 9시까지 중노동을 이어가는 이씨는 "너무 세밀한 작업이라 돋보기를 써야 한다"며 "하루 종일 얇은 은사 하나하나를 정으로 박아넣고 있으면 눈물이 나올 정도로 피로하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전북 남원시에서 태어난 그는 1976년 상경해 42년째 은입사 공예에 매진하고 있다. 서울시 지정 입사장인 최교준의 문하에 들어가면서 은입사와 연을 맺었다. 공방이 지루해 울산 조선소와 포항 제철소에서 막노동을 한 적도 있지만 곧 다시 돌아왔다.

국가에서 공인한 문화재 수리기능장으로도 활약하는 이씨는 "다른 일을 해보니 은입사가 내 업(業)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시력이 허락하는 한 꾸준히 이 길을 갈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시대에 시작된 은입사 공예는 사찰 향로 등 불교용품에 집중됐다면, 조선시대에는 담배합, 화로, 촛대, 필통, 연적, 문진 등 왕실과 양반들의 전유물이었다. 이씨 작품은 와인쿨러, 찬합, 휴지곽 등 현대인의 생활을 반영했다. 박여숙 박여숙화랑 대표의 아이디어다.

박 대표는 은입사 공예 가치를 알아보고 이씨의 기술과 본인의 안목을 접목한 작품 20여 점으로 '첫 번째 박여숙 간섭전 : 이경노 은입사'를 열었다. 2년간 준비 기간을 거친 작품들에는 복을 상징하는 동물 중 하나인 박쥐와 십장생, 꽃, 기쁨이 겹친다는 의미의 쌍희(囍), 부귀(富貴) 등 한자가 은으로 새겨져 있다. 박 대표는 "금속으로 직접 기물을 만들고 은입사 작업을 모두 할 수 있는 유일한 장인"이라며 "조선의 미감과 전통기술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전시"라고 설명했다.

3년 전 이탈리아 밀라노 트리엔날레 디자인뮤지엄에서 열린 '한국공예의 법고창신 2015' 예술감독을 맡았던 그는 세계 무대에 내놓을 공예예술을 찾다가 이씨를 알게 됐다. 이때부터 두 사람의 협업이 시작됐으며 지난해에는 일본에서 진행된 '국제 호쿠리쿠 공예정상회담 : 세계의 공예 100'전에 한국 대표 작가로 초대됐다.

박여숙의 간섭전은 은입사전을 시작으로, 도자기, 유기, 옻칠공예, 지공예 등 조선시대 미감을 지닌 공예품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은입사전은 3월 10일까지.

[전지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