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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출시 한달, 새로운 스타일의 롤플레잉 게임 `듀랑고` 뜯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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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법칙-72] 국산, 모바일, 롤플레잉. 각각의 단어가 가진 의미는 세 단어의 조합과 함께 전혀 다른 의미를 품곤 한다. 천편일률적인 방식을 답습하면서도 뒤따르는 매출 덕에 꾸준한 흐름을 유지하던 국산 모바일 롤플레잉 게임에 조금은 색다른 시도가 등장했다. 꽤나 오랜 개발 기간 동안 많은 사람의 기대감을 자극해 왔던 '야생의 땅: 듀랑고'(이하 '듀랑고')가 정식으로 출시된 지도 이제 적당한 시간이 흘렀다.

기존의 일반적 모바일 롤플레잉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차별적인 모습을 보이려는 노력이 계속 새어나오던 게임이니 만큼 이 게임의 완성도와 흥행 여부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이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을 것이다. 출시된 지 한 달이 다 돼가는 시점에서 '듀랑고' 가 보여준 모습은 어떠했는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떨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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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랑고' 는 천편일률적인 국산 모바일 롤플레잉과는 다른 궤적을 그리면서 2018년의 서장을 열었다. 색다른 이 시도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사진=넥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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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자체만으로도 게임이 되는 완성도, 여러 장점들의 적절한 배합

생존형 샌드박스 MMORPG를 표방한 '듀랑고'에서 플레이어는 특정한 퀘스트를 따라 진행하는 방식이 아닌,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해 자연스럽게 행동을 취하는 방식을 통해 게임을 풀어 나가게 된다. 불을 피우기 위해 땔감을 모으고 체력을 채우기 위해 음식을 구하고 잠자리를 만들며 이를 위해 채집과 사냥이 병행되는 생존형 게임의 방식을 충실히 따르되, 과정은 그리 지루하게 그려지지 않았다. 전투 스펙을 올리기 위한 서브 콘텐츠로서의 제작이 아니라 그 자체로 메인 콘텐츠에 속하게 된 '듀랑고'의 제작 시스템은 반드시 최적화된 레벨업 루트를 따르지 않아도 큰 손해가 난다고 느껴지지 않는 구조를 취한다.

별다른 목표를 가지지 않더라도 그냥저냥 생존과 주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소소하게 재료를 모으고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에 성장 방식이 들어가는 덕분에 게임은 굳이 무기를 들고 싸우지 않아도 워프된 공룡시대의 생활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만한 이유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무기를 들고 누가 최강이냐를 겨루는 재미 외에 소소하게 옷을 지어 입고, 내 땅에 내 집을 지어 본다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사람이 35레벨을 넘기며 플레이를 이어간다는 사실은 '듀랑고'의 실험이 대중에게 외면받는 상황이 아님을 알려준다.

'듀랑고'의 생활형 콘텐츠가 갖는 위치는 게임 캐릭터의 주요 스탯 중 하나인 스태미나의 사용처로부터 드러난다. 체력과 함께 캐릭터의 대표 수치 중 하나로 등장하는 스태미나는 캐릭터가 전투할 때뿐 아니라 일상적인 채집 활동을 수행할 때도 행동마다 일정한 수치로 저하되며 이를 채우기 위해 플레이어는 휴식하거나 음식을 먹는 등 액션을 취해야 한다. 음식과 휴식처 마련에는 자원이 들기 마련이고, 이를 위해 또 채집과 사냥에 나서야 한다. 채집과 사냥은 맨손이 아니라 도구를 필요로 하고, 이를 만들기 위해 또 추가적인 스태미나 사용이 이뤄지면서 '듀랑고' 속 생활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소비와 생산의 순환이 반복되는 독립 콘텐츠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생존 순환에 덧붙여진 웰메이드 콘텐츠들의 적절한 배합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자체적 순환 체계가 갖춰진 '듀랑고'의 세계는 덧붙는 개념들에 의해 좀더 풍부해진다. 전투가 메인 콘텐츠가 아닌 경우라고는 하지만, '듀랑고' 역시 알 수 없는 워프로 인해 공룡세계라는 인간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위험에 놓인 상황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전투는 완전히 빠질 수 없는 요소다.

고기와 가죽, 뼈를 얻기 위해 사냥에 나서는 플레이어에게 전투는 때론 사냥의 일환으로, 때로는 야생의 위협으로 다가오는데, '듀랑고'의 전투 시스템은 그리 단순한 버튼 액션이나 자동의 구조를 따르지 않으면서 나름의 재미를 살려냈다. 실시간이면서도 절반 정도 턴제에 가까운, 턴마다 상대 캐릭터 패턴을 예측하고 대응하는 스킬을 시전하거나 움직여야 하는 '듀랑고'의 전투는 언뜻 예전 MMORPG 중 하나였던 '마비노기'의 전투를 떠올리게 하는, 수싸움의 재미를 보여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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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랑고' 는 생존형 롤플레잉을 표방하며 생활을 위한 스태미너의 순환을 기본으로 여러 요소들이 적절하게 배합되어 그럴듯한 재미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사진=넥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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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퀘스트 진행 없이도 여러 곳에서 묻혀 내려는 서사의 흔적 또한 과도하지 않은 수준으로 게임의 줄기를 엮어 나가는 흐름을 만드는 데 무리 없이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간단한 튜토리얼을 통해 기본 환경에 대해 안내해 준 뒤 게임은 자연스럽게 곳곳의 오브젝트와 메시지를 통해 아주 조금씩 플레이어가 처한 낯선 상황을 이해시켜주려고 시도한다. 굳이 이해하지 않아도 플레이에 무리가 없을 이야기들의 떡밥을 곳곳에 뿌리는 것은 아마도 플레이어로부터 자생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한 조심스러운 밑밥으로도 추측 가능할 것이다.

이런저런 기존 국산 모바일 롤플레잉에서 보기 힘들었던 요소들이 꽤나 적절한 배합을 통해 버무려진 '듀랑고'는 그래서 국산 모바일 게임에 익숙해진 게이머들도 적응하는 데 그렇게 어려울 것만 같지는 않은 수준에서 새로운 제안을 성공적으로 던진 듯하다. 그러나 그 제안이 성공적이었느냐를 말하기에는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답변이 적절할 것이다. '듀랑고'의 꿈이 무엇인지는 알겠으나, 그것이 지금 당장의 콘텐츠로 나타난 것 같지 않다는 의미다.

◆모바일 롤플레잉의 새로운 대안 제시는 성공했는가

'듀랑고'의 콘텐츠가 과연 모바일이라는 플랫폼에 적합한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할 것이다. 모바일 게임에 보편적으로 등장하는 자동 사냥과 자동 레벨업 개념이 모바일 특유의 성격으로부터 비롯된 이른바 '잠깐씩 들여다보는 게임'으로서의 의미에 기여하고 있음을 생각할 때, '듀랑고'가 지향하는 바가 과연 모바일에도 안착할 수 있는 것인지는 조금 더 고민이 필요한 문제다. 지하철과 버스에서 잠깐 플레이하고 꺼 둬도 문제없는 게임들과 달리 '듀랑고'의 재미는 어쨌든 좀 더 게임에 온전하게 시간을 투여했을 때 빛을 발할 수밖에 없다. '듀랑고' 플레이에서 모바일의 의미는 대체로 침대나 소파에 누워서 플레이하는 용도로 빛난다는 많은 사용자 후기가 가리키는 지점은 '듀랑고'가 다른 국산 자동 사냥 게임들과는 사뭇 다른 게임 플레이 환경을 상정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지점이 과연 새로운 모바일 롤플레잉의 흐름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답변은 쉽지 않다.

느긋하고 자유로운 샌드박스형 게임이면서도 동시에 멀티플레이 롤플레잉이라는 '듀랑고'의 속성 또한 고레벨로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다중 경쟁의 흐름 속에서 균형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 '듀랑고' 는 35레벨 근처에 다다르면 본격적으로 자신의 사유지를 보다 큰 섬으로 이전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이미 괜찮은 사유지들이 상당수 선점당한 상태가 나타나면서 집 꾸미기 같은 생활형 콘텐츠로 즐겨오던 플레이어들에게는 적지 않은 경쟁의 스트레스를 제공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게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좀더 생존형 롤플레잉에 가깝게 제작된 '듀랑고'는 소소한 재미의 싱글 플레이와 최적화된 레벨업 루트를 요구하는 경쟁형 콘텐츠의 간극이 멀어질수록 한쪽 플레이어의 지지를 놓치기 쉬운 환경에 놓여 있다. 몇 차례 나온 제작진 인터뷰 등에서 제작진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고 있는 것으로 보여 그 결과에 대해서는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뒤의 운영을 통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디서 본 듯한, 웰메이드 요소들의 적절한 배합에 거는 기대

'듀랑고'를 플레이하는 게이머들은 여러 가지 요소에서 각자 자신이 예전에 즐겁게 플레이했던 경험을 떠올리는 순간이 많을 것이다. 누군가는 '울티마 온라인'을, 누군가는 '마비노기'를, 누군가는 '라스트 데이 온 어스'를 이야기하곤 한다. 이는 제작진에게는 매우 긍정적인 신호인 것이, 대체로 성공하는 인기 게임들은 그 이전 게임들의 잘 나온 요소들이 꽤나 적절하게 가공돼 포함되기 때문이다. 간만에 대형 게임사가 보여 준 국산 모바일 게임의 새로운 시도에 많은 이들이 표현하는 지지와 공감, 기대와 격려가 좀 더 좋은 결과로 나타나기를 기대해 본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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