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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내 만년필 잉크色, 내가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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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미153' 만년필로 본 트렌드

소비자가 제품 구성·디자인 정해

조선일보

경기 용인시 모나미 스토리연구소에서는 고객이 직접 잉크 여러 개를 골라 색깔 배합을 해볼 수 있고 그 색깔 잉크를 구입할 수도 있다. /박상훈 기자


'국민 볼펜' 모나미153은 꿈보다 해몽이란 속담이 어울리는 물건이다. 1963년 나온 이 볼펜은 한국의 디자인 아이콘으로 불리면서도 누가 어떻게 디자인했는지는 미상이다. 부품을 5개만 써서 내구성·생산성을 높인 산업디자인 걸작이라고 한다. 장식 없는 단순미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디자인 격언의 방증이라는 해석도 있다. 153이란 이름은 베드로가 153마리의 고기를 잡았다는 성경 구절에서 왔다는 설, 최초 가격 15원에 출시연도 끝자리를 붙였다는 설이 분분했다. 모나미의 공식 설명은 출시 당시 가격 15원에 (물감·크레파스에 이은) 모나미의 세 번째 제품이라는 뜻으로 3을 붙였다는 것이다.

해몽 한 번 더. 이번엔 만년필이다. 모나미는 19일 육각형 디자인을 이어받은 153 만년필〈아래 사진〉을 선보였다. 55년 만에 만년필을 낸 이유는 뭘까. 고급화 전략의 일부라는 게 공식 설명이지만 사실 여기엔 여러 가지 패션·디자인 트렌드가 녹아들어 있다.

우선 펜은 이제 필기구라기보다 아날로그 취향을 드러내는 액세서리다. 손이 많이 가는 만년필은 특히 아날로그적이다. 만년필 마니아들에겐 수시로 잉크를 채우고 굳지 않게 간수하는 일조차 즐거움이다. 태엽을 감아주지 않으면 멈춰버리는 기계식 손목시계가 스마트폰 시대에도 여전히 인기인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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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화(customizing)도 중요하다. 취향이 점점 세분화되기 때문. 모나미는 만년필 잉크에 이를 반영했다. 15종류 잉크를 소비자가 배합해 자신만의 색을 만들 수 있도록 했다. 저장해 둔 제조법대로 만들어 배달도 해준다. 패션 브랜드들도 이런 흐름에 주목하고 있다. 예컨대 구찌는 작년 말 서울 청담동 매장을 새 단장하면서 DIY(do it yourself) 서비스를 도입했다. 다양한 무늬를 골라 옷에 넣거나 재킷 안감을 취향대로 교체하는 식의 맞춤형 주문이 가능하다.

모나미는 작년 말 경기 용인시 본사에 '스토리연구소'라는 공간을 만들었다. 스포이트로 한 방울씩 똑똑 떨어뜨려가며 나만의 잉크를 만들어보는 곳이다. 실내는 플라스크에 담긴 색색의 잉크로 장식해 색의 미묘한 변화를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마커 펜을 이용한 공예 교실도 운영한다. 제품보다 경험이 중요해지는 추세를 따른 것. 모나미 신동호 마케팅팀장은 "펜으로 글씨만 쓰는 게 아니라 예술과 디자인도 한다는 걸 경험하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채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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