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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이 새하얀 방, 자동차 없는 자동차 홍보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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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건축가 아시프 칸 설계

평창올림픽 현대 수소차 홍보관, 자동차 없이 예술로 구현해 화제

지난 12일 오전 강원 평창의 기온은 영하 17도였다. 초속 5m 강풍에 알파인스키 여자 대회전 경기가 취소됐다. 기업 홍보관들이 모인 올림픽플라자의 한 건물은 달랐다. 스무 명 넘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맹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20분 넘게 기다려 건물로 들어갔다. 열한 살 아들을 데리고 줄 섰던 김화선(44)씨는 "안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아들이 들어가자고 졸랐다"고 했다. 아이가 물었다. "여기 우주과학관 맞죠?"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새까만 외벽에 가느다란 발광다이오드(LED) 기둥 1946개가 꽂혀 있는 이 건물은 우주와 별을 형상화했다. 하지만 우주과학관이 아니라 현대자동차 홍보관이다. 수소전기차를 알리기 위해 만들었지만 홍보관엔 자동차 한 대 보이지 않는다. 자동차 없는 자동차 홍보관이다.

조선일보

대리석 신전 같은 유니버스의 ‘워터’ 전시실. 수백m 길이 수로를 따라 2만5000개 물방울이 움직여 호수로 모인다. 미래 도시의 모습을 구현했다. /Luke Ha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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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건축가 아시프 칸(39)이 설계했다. 칸은 2011년 뉴욕타임스의 '주목할 디자이너 5명'에 선정되면서 이름을 알렸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선보인 '메가페이스' 파빌리온으로 칸 광고제에서 혁신 부문 그랑프리상을 받았다.

칸은 '유니버스(Universe·우주)'라 이름 붙인 이 건물을 가리켜 "지구에서 가장 어두운 건물"이라고 했다. 면적 1225㎡, 높이 10m 규모 건물에 칠해진 특수 도료는 세상에 가장 검다는 '반타블랙VBx 2'이다. 평창의 허허벌판에 우주로 향하는 구멍이 뻥 뚫린 것 같다. 칸은 "별이 수소로 만들어진 물질이란 데 착안해 우주 속 별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블랙홀에 빨려들듯 건물로 들어서면 무균실처럼 티끌 하나 없이 새하얀 방이 나온다. '워터' 전시실이다. 방 한가운데 수로가 있고, 2만5000개 물방울이 초속 1m 속도로 수로를 흐른다. 관객들은 작은 컵에 담긴 물을 수로에 부어 물방울이 움직이는 것을 관찰한다. 칸은 물을 한 모금 마시면서 "이 컵 안의 물을 이루는 게 수소이고, 물이 60%를 차지하는 우리 몸도 결국 수소로 이뤄진 셈이다. 수소로 달리는 수소전기차의 부산물도 결국은 물이다"고 말했다. "우주와 물방울은 모두 수소로 구성돼 있는데 규모는 정반대죠. 관람객이 우주에서 작은 물방울로 이동하는 경험을 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수소전기차의 원리를 4단계로 표현한 '하이드로젠(Hydrogen·수소)' 전시실도 재미있다. 네 공간은 각각 태양에너지, 물의 전기분해, 연료 전지, 깨끗한 물을 보여준다. LED를 잔디처럼 벽에 촘촘하게 박아놓은 연료전지 방에선 어른·아이 할 것 없이 LED를 손으로 쓸면서 빛의 물결을 만드는 데 열중한다. 자동차 홍보관에 자동차가 왜 한 대도 없느냐는 질문에 칸은 "다양한 전시에서 수소차가 구동된 걸 봤지만, 흥미를 느낀 적은 없었다"며 웃었다. "수소는 새로워서가 아니라 그것이 우주, 지구, 사람의 일부여서 재밌는 겁니다. 수소를 통해 우리의 근원을 살펴보면 관람객의 마음에 더 깊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요?" 전시관은 26일 잠시 닫았다가 패럴림픽이 열리는 3월 9~18일 다시 연다.







[평창=변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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