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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이성열의 내 인생의 책] ②죄와 벌 | 도스토예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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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구원받을 수 있다

경향신문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지금 러시아의 추위를 뚫고 페테르부르크 광장을 걷는다. 그의 낡고 해진 코트 속엔 작은 손도끼가 있다. 그의 머릿속엔 니체의 초인사상이 있다. 그는 법대생 라스콜리니코프. 며칠 동안 열병 속에서 지냈다. 그러다 일어나 도끼를 든다. 전당포 할멈을 죽이러 광장을 걷는다. “할멈은 버러지, 벌레를 죽이는 건 죄가 아니야. 할멈의 돈으로 난 더 많은 선행을 할 수 있어. 목적은 방법을 초월하고, 나는 초인이다.” 열병 속의 라스콜리니코프는 계속 중얼거린다.

<죄와 벌>의 한 장면이다. 왜 그랬을까? 난 이 광장을 걷는 장면이 오래도록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실제로 난 주인공 흉내를 내고 다녔는데, 고등학교 1학년 한 해 동안 거의 땅만 보고 생각에 잠겨 걸어 다녔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학교는 거의 입시학원이나 다름없어서 내겐 지옥이 따로 없었다. 나도 그런 현실을 초월하고 싶었던 걸까. 그 시절 나는 나만의 손도끼와 전당포 할멈을 찾아다녔는지도 모른다. 소설 속 주인공은 ‘소냐’를 통해 이 모든 생각과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러시아의 대지에 입 맞추며 회개한다. 나만의 손도끼와 할멈을 끝내 찾지 못한 나는 굳이 회개할 게 없었지만, 그래도 난 나의 ‘소냐’를 애타게 찾았고, 대학에 가서 처음 사귄 여학생을 ‘소냐’라고 우기며 날 구원해 달라고 졸라 그녀를 놀라게 하곤 했다.

<죄와 벌>은 제목 그대로 ‘죄’를 짓고 ‘벌’을 받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인간이 분명 어리석지만 구원받을 수 있음을 이야기해 준다. 복음서가 따로 없다. 이런 얘기가 듣고 싶다. 더럽고 추잡한 이야기들의 홍수 속에 그래도 인간이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다는 티끌만큼의 가능성이라도 보여주는 그런 얘기 말이다.

<이성열 | 국립극단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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