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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이춘희 명창 "50여년 소리인생 만든 건 '연습'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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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4일 '한국음악 명인전' 무대서 '서울제 정선아리랑' '이별가' 등 노래]

머니투데이

/사진=김휘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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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민요의 교과서라 불리는 이춘희 명창(71)이 오는 23~24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는 ‘한국음악 명인전’ 무대에 선다. 이 명창은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예능보유자다. 50여년 소리를 해왔지만 여전히 무대를 앞두고는 ‘연습만이 살 길’이라는 생각으로 임한다는 이 명창. 설 연휴에도 연습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그를 지난 18일 서울 방배동 한국전통민요협회 연습실에서 만났다.

“‘소리가 예전만 못하네’ ‘여태 소리 했는데 왜 저래’ 이런 말 안 들어야 하니까 책임감이 무겁죠. 안 떨릴 수가 없어요. 그걸 극복하려고 연습하는 거고요. 50년 넘게 소리를 했는데도 아직까지 마음대로 안 될 때가 있어요. 경기민요는 섬세한 목 쓰임 변화로 흥겨움, 애틋함, 수줍음 등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기 때문에 잘 하기가 쉽지 않고 소리꾼도 적죠.”

이 명창은 어릴 적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경기민요에 반해 소리를 시작했다. 도라지타령, 베틀가, 사발가, 노들강변 등을 들었을 땐 소름 끼치게 좋았다. 처음엔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혀 며칠을 앓았다. 끝내 허락을 받고 수소문 끝에 고(故) 이창배 선생을 찾아가면서부터 그의 소리 인생이 시작됐다.

그토록 원하던 일이었지만 막상 시작하니 고통과 갈등의 연속이었다. 처음엔 연습을 아무리 해도 실력이 눈에 띄게 늘지 않아 좌절했다. 생계를 이어갈 막막함에 '해서 뭐하지'라는 생각도 했다고. 1986년 첫 발표회를 앞두고 보낸 1년을 회고하던 이 명창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땐 정말 ‘죽기 아니면 살기’로 했어요. 방에 스티로폼으로 방음장치 해두고 전화도 안 받고 연습만 했거든요. 가만히 앉아서 하기도 힘든 걸 일부러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면서요. 20년 소리를 했는데 내가 이거 못 해내면 관둔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힘들고 슬프던지…. 그때 너무 고생해서,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네요.”

제자들에게 '저승사자'로 통한다는 이 명창이 엄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연습을 그 정도로 많이 하니 무서운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제자들한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거예요. ‘절대 누가 대신 해 주지 않지만, 의지와 인내만 있으면 잘 할 수 있다’고요. 뭐든 다 그렇지만 소리는 특히 노력에 비례해 나타나지 않아요. 세월이 쌓이고 조금씩 그 결과가 빛을 발하는 거죠. 그러니 그때까지 버텨야 해요."

이 명창은 우리 전통음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국내에서 외면당하는 현실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그는 지난 2012년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던 날 심사위원들 앞에서 선보인 아리랑 시연 무대를 떠올리며 "우리 전통 음악이 해외에서 인정받기에 충분하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낀 날"이라고 했다.

"주어진 공연시간은 단 1분이었어요. 아리랑의 고음 부분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을 부르며 노래를 시작했는데, 노래하는 내내 관객이 저만 바라보는 게 느껴졌어요. 노래가 끝나자마자 사람들이 동시에 전부 일어서더라고요. '아리랑'을 극찬하면서요. 제가 어릴 땐 경기민요가 대중가요 같은 존재였는데 언제부턴가 관심 밖으로 밀려났잖아요. 서글프고 아쉽죠.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나가느냐에 따라 세계무대에 우리 전통음악을 알릴 수 있느냐가 결정될 거라고 봐요. 저와 제 후배들이 해 나가야 할 일이겠죠."

오는 23~24일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열리는 '한국음악 명인전'에서 이 명창은 ‘서울제 정선아리랑’ ‘금강산타령’ ‘이별가’를 노래한다. 영화 '취화선' 주제곡으로도 널리 알려진 '이별가'는 목소리의 섬세한 표현을 오롯이 전달하기 위해 장단 없이 무반주로 들려줄 예정이다.

이경은 기자 kele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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