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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문 대통령, 미 통상 압박 강경 대응…"차 반도체 확산 사전 차단 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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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트럼프 통상 압박 “당당하게 대응” 지시
반도체와 자동차 등으로 보호무역주의 확산 사전 차단

문재인 대통령이 ‘무역확장법 232조 철강 수입 규제’ 등 미국의 거센 통상압력에 대해 “당당하게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조치 부당성을 WTO(세계무역기구) 등을 통해 부각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과도 연계하라고 주문했다. 사실상 미국과의 전면적인 통상분쟁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하지 말 것을 통상당국에 요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같은 문 대통령의 지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잇따른 보호무역주의 조치가 경제논리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정치논리에 치우친 움직임이라는 측면에서 맞대응의 성격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안보 논리와 통상 논리는 다르다는 문 대통령의 인식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 결정과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등으로 경제계 전반에 심각한 후폭풍이 불어닥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자 강경 대응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의 과도한 무역적자가 가계와 기업들의 소비 증가에 따른 거시 경제 변화에 따른 부산물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에 저자세로 나올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이야기다.

세탁기와 태양광에 이어 철강 수입 규제에 대해서도 한국측이 미온적으로 대응할 경우 반도체와 자동차 등 또 다른 주력 수출 품목으로 보호무역주의 칼날이 미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문 대통령이 미국측 움직임에 강공으로 맞서라고 지시한 것은 이같은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겠다는 의도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조선비즈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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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文대통령, 美 철강수입 규제 움직임에 ‘당당하게 대응하라” 주문

문 대통령은 19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철강, 전자, 태양광, 세탁기 등 우리 수출 품목의 국제 경쟁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수입 규제로 수출 전선의 이상이 우려된다”면서 “불합리한 보호무역 조치에 대해서는 WTO 제소와 한·미 FTA 위반 여부 검토 등 당당하고 결연히 대응해 나가고, 한·미 FTA 개정 협상을 통해서도 부당함을 적극 주장하라”고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수출의 증가는 경제 회복에 크게 기여했지만, 최근 환율 및 유가 불안에 더해 보호무역주의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다”면서 “그와 같은 도전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우리가 많은 도전을 이겨냈듯이, 정부와 기업이 합심해 노력하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상당국에서는 문 대통령의 언급이 미국측 보호무역주의에 대해 WTO 제소 등의 방법으로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통상당국의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는 미국 상무부 보고서 내용대로 한국산 철강제품에 대해 고율(53%)의 관세가 부과될 경우 WTO 제소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통상당국 고위 관계자는 “미국측은 철강제품 수입이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하지만, 그 주장이 WTO 등 다자간 무역협상 테이블에서 인정될지 의문”이라며 “정부는 철강제품 등에 대해 관세부과 조치가 이뤄지면 수입규제 대상이 된 12개국과 함께 WTO에 제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한국과 함께 철강, 알루미늄 제품 규제 대상이 된 중국이 미국측 움직임에 대해 “근거없는 주장”이라고 강력한 비판을 내놓은 것도 문 대통령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왕허쥔 중국 상무부 무역구제조사국장은 지난 17일 성명을 통해 “미 상무부가 철강과 알루미늄 수입 제품을 대상으로 232조(국가안전보장)에 근거해 조사하는 것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며 “이는 전혀 근거가 없으며 사실과도 일치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미국의 최종 결정이 중국 국익에 영향을 준다면 우리 권리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 美 무역수지 적자 증가, 미국 내부 경제변화 때문…통상압박 부당성 강조

문 대통령과 통상당국이 이같은 판단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이 통상 압박 근거로 내세우는 무역적자 증가 원인이 미국 내부적인 거시 경제 변화에 따른 결과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내부 경제 전문가들도 미국의 소비 심리 개선과 기업들의 투자 증가가 오히려 무역적자를 늘리는 ‘딜레마’를 갖게 됐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딜레마를 보호주의무역 강화의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6일 지난해 상품·서비스 무역적자가 5660억 달러(약 615조8080억원)로 지난 2008년(7087억 달러)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의 무역수지 불균형은 미국 내 가계와 기업의 소비 증가가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지난해 말 미국의 저축률은 2.4%로 2005년 9월 이후 최저치로 하락한 반면 지난해 말 소비심리를 반영하는 소비자기대지수는 2000년 11월 이후 최고치인 129.5를 기록했다.

미국의 가계 소비 확대는 해외 물건 구매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미국 수입액은 전년 대비 6.7% 증가한 2조9000억 달러(약 3134조9000억원)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수출은 전년 대비 5.5% 늘어난 2조3000억 달러(약 2486조3000억원)로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미국이 많이 팔고, 많이 사들였지만 상대적으로 사들인 물건이 많아 무역적자가 큰 폭으로 늘어났다.

트럼프 대통령이 감세안 등 자국내 기업들의 투자를 독려하는 정책을 실행하면서 기업들의 소비도 증가하고 있다. 지난 16일 코트라가 분석한 지난해 미국 수입 품목별 규모를 살펴보면 산업용품 및 원자재와 자본재가 전년 대비 각각 14.50%, 8.59% 증가했다. 식품·사료 및 음료(5.99%), 소비재(3.19%), 자동차(2.54%) 수입 규모의 전년 대비 증가율 보다 높았다. 미국 내 기업들이 투자를 늘리면서 산업용품, 원자재, 자본재를 해외에서 많이 사오고 있는 것이다.

조선비즈

출처=코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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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월가의 대표적 중국통인 스티븐 로치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지난달 28일 미국의 경제전문 매체인 마켓워치에 기고한 칼럼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광범위한 거시 경제적 원인을 놓치고 있다”며 “무역적자는 미국의 낮은 저축률이 원인인데, 근본적인 원인을 다루지 않고 단지 미국을 대상으로 무역흑자를 거두고 있는 중국이나 한국 등 다른 나라를 겨냥해 공격하는 건 마치 물풍선의 한쪽 끝을 쥐어짜 다른 한쪽을 부풀게 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 “반도체·자동차 등 수입규제 타깃 될수도…사전 차단해야”

통상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의 강경한 대응이 한미 동맹과 통상 문제를 별개로 구분해 협상에서 밀리지 않으려는 포석으로 보고 있다. 올해 들어 세탁기·태양광 세이프가드에 이어 무역확장법 232조까지 통상 이슈가 잇따라 돌출되는 것은 미국 측의 과욕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국민들에게 강조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제현정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원 박사는 “협상을 할 때 협상단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는 원래 상대방에게 강경한 발언을 통해 기선을 제압하고, 협상장에 들어가는 실무진은 대화를 통해 의견을 조율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일방적으로 미국 측의 통상 압박에 시달리는 현재 상황에서 만약 문 대통령이 미국과의 대화를 통해 실리를 찾도록 하겠다는 식의 저자세 발언을 할 경우 ‘굴욕 외교’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며 “문 대통령은 미국에게 외교적으로 빌미를 잡히지 않는 선에서 기존 통상 정책을 강조하는 수준을 선택했다”고 해석했다.

이같은 강공 전략은 미국측이 보호 무역주의 타깃을 한국의 주력 수출품목인 반도체와 자동차 등으로 확산시키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 또한 깔려있다.

제 연구원은 “미국은 무역적자를 빌미로 한국에 대한 통상압박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주요 대미 수출 흑자 품목인 반도체와 자동차로 무역제재가 옮겨갈 가능성이 높다”며 “어떤 방식으로 압박할 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철저한 대비를 주문하는 발언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강공 일변도 전략보다는 정부가 트럼프의 통상압박 이면에 깔려있는 의도를 사전에 파악해 선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문 대통령의 강경 발언에도 한미 통상문제를 풀어가기 쉽지 않은 환경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대한 무역적자를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어 우리 입장에서 통상 압박을 피해갈 수 있는 뾰족한 해법이 잘 보이지 않고 있다.

김영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박사는 “미국측은 한미 FTA에 대해 무역적자 문제를 지속적으로 부각해 미국의 일방적인 우선주의를 관철하는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며 “미국산 자동차 수입 등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큰 타격이 없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11월 중간선거 등에서 선전을 할 수 있는 방안들을 검토해 한국과 미국이 서로 다른 지점에서 이득을 얻어 균형을 찾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정원석 기자(lllp@chosunbiz.com);세종=전슬기 기자(sgjun@chosunbiz.com);세종=전성필 기자(feel@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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