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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0 (월)

항일운동 주도한 하동출신 인사 3인 서훈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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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야사학자 정재상씨,수형인 명부와 재판 기록 찾아

뉴스1

경남독립운동연구소 정재상 소장(사진 왼쪽)이 항일운동을 주도한 하동출신 인사 3인에 대한 관련 기록을 조사하고 있다.©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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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ㆍ경남=뉴스1) 이경구 기자 = 경남독립운동연구소 정재상 소장은 일본서 항일운동을 주도한 하동출신 인사 3인에 대한 정부 서훈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재야사학자인 정 소장은 김희곤 자문위원과 국가기록원과 하동군 고전면사무소 등에서 3인의 행적이 담긴 수형인 명부와 재판관련 기록을 찾았다.

이들 3인은 전석순(全錫舜‧1900~1954) 선생과 정의용(鄭宜鎔‧1888~1956), 최알밤(崔혁진‧?~1919)선생이다.

하동군 고전면 출신 전석순 선생은 1925년 3월 재일본 노동총연맹 동경노동조합 집행위원에 선임돼 노동운동을 주도, 같은 해 8월 조선공산당 일본 총국이 주도한 국치일 기념투쟁에 참가했다가 1929년 1월 일본경찰에 체포됐다.

이후 동경 지방재판소에서 수차례 공판이 진행돼 1932년 9월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의 형을 받고 지바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선생은 중국과 국내를 오가며 군자금 모금과 독립군 모집 등을 전개했다.

선생은 이보다 앞서 1919년 4월 하동공립보통학교 4학년 재학 당시 하동지역에서 학생 3·1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돼 고초를 겪었다.

정의용·최알밤(최혁진) 선생은 고전면 성천리 출신으로 1919년 4월 고전면 주교리 장날을 이용해 1000여 명의 장꾼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펼쳤다.

이 일로 정의용선생은 일본경찰에 체포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태형 90도(度)를 받았으며 최알밤은 체포에 불응, 현장에서 총살됐다.

정재상 소장은 "전석순 선생은 향토사에 하동 학생 3·1운동 행적이 일부 기록돼 있으나 이후 일본에서의 항일행적 발굴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그동안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던 정의용 선생은 수형인명부 발굴로 독립유공자로 인정받는 길이 열릴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또 "최알밤 선생은 일제기록에는 '본명미상 최알밤'으로 기록돼 있으나 다수의 향토지에는 '최혁진'으로 나타나 있는 만큼 정부는 이분의 예우도 결코 소홀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kglee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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