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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3 (일)

그 날이 오늘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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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걷고 있는 길이 끝을 알 수 없는 굽은 길이라면 희망을 품고 맞이하는 새해 새날들도 자신만의 그늘로 버겁다. 모두가 마음에 봄을 담을 때 겨울로 살아가게 되더라도, 내 곁에 있는 가족은 지난한 그 계절을 버티게 해준다. 하지만 모든 가족이 삶에 힘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남보다 못한 가족도 있으며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인면수심을 지닌 가족들의 사건 사고 기사는 혀를 차게 만들기도 한다.

가족이 인생의 고비에서 서로에게 버팀목이 될 수 있으려면 평소 깊은 유대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 속 가족은 같은 공간에 머무르는 타인 같은 존재로 상호 자리매김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소통의 벽이 높아지면 경제적 흔들림 등 가족안의 어려움이 찾아 올 때 단단히 함께 끌어안지 못하고 서로를 원망하며 모래알처럼 흩어져 버린다.

매일경제

사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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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동화 작가인 ‘앤서니 브라운’의 『돼지책』은 유아와 저학년을 대상으로 한 동화지만 어른에게도 깊은 생각을 던져 준다. 이 책에서는 아주 중요한 회사에 가는 남편과 아주 중요한 학교에 가는 두 아들을 위해 헌신하는 엄마가 등장한다.

그녀는 얼굴조차 보여주지 않는 자신의 색을 잃어버린 엄마로, 남편 피곳 씨와 두 아들과는 삽화 속 색감부터 대조적으로 그려진다. 그런 엄마가 어느 날 “너희들은 돼지야.”라는 종이를 남긴 채 사라지고, 그날부터 세 남자는 삶의 모습도 외모도 처참한 돼지로 변해간다. 결국 남편과 두 아들의 부탁으로 다시 돌아온 엄마는 처음으로 얼굴을 보여주며 밝은 색으로 표현된다.

이후 가족들은 집안의 일을 각자 나누어 하게 되고, 그로 인해 엄마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라는 김현승 시인의 ‘아버지의 마음’속 한 구절처럼, 누군가의 외로움과 헌신으로 다른 사람의 행복이 채워진다면 그것은 진정한 가족이 아니다. 한 사람의 희생은 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구성원들에게 당연한 일로 여겨지고 고마움조차 잊게 만든다. 오히려 그 역할을 조금이라도 못해내면 남은 가족들에게 커다란 질타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시작되는 한 사람의 상처는 원망과 함께 더 큰 생채기를 불러올 수 있다.

“오늘이 지나면 다시 못 볼 사람처럼 가족을 대하라.”정호승 시인의 말이 마음을 덮는다. 다시 볼 수 없다면, 오늘이 애틋한 그 날이라면 이해하지 못할 일이 어디 있을까. 용서하지 못할 일이 어디 있을까. 세상 끝에 언제 닿을지 모르기에, 그 날이 오늘이라면 그 서글픈 길의 시작이 오늘이라면, 함께 소통하고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일까.

[유재은 작가/글쓰기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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