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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 (화)

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96) 시즌 3<본부장이 금융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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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플러스 금리 시대를 이끈 것은 부자에 대한 동경(憧憬)이었다. 플로스 금리시대의 대표적 경제학자 토마스 멜서스의 ‘인구론’ 사진출처: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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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를 마감하고 19세기를 맞이하는 유럽에서 보나팔트 나폴레옹, 호레이쇼 낼슨, 바이런과 함께 가장 핫한 이름은 ‘인구론’을 발표한 토마스 멜서스(1766~1834)란 사나이였다. 그는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으로 늘어난 노동 생산성보다 인구 증가율이 더 높아져 식량이 부족할 것을 걱정한 영국의 천재 경제학자다. 멜서스는 당시에 프랑스의 리카르도와 함께 유럽을 대표하는 경제학자였다. 지금은 아이를 낳지 않아서 걱정이라 이 이론이 인기가 없지만 당시는 물론이고 20세기말까지도 가장 위력적인 경제 보고서였다. ‘인구론’은 흥행면에서는 일단 대성공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멜서스는 지식혁명과 디지털 혁명이 인간의 관심사를 먹고 마시는 쪽이 아닌 개인의 내면적 가치와 욕망의 실현(이 둘은 결국 인간이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게 했다)으로 집중시킬 것이라는 것을 몰랐다. 한마디로 요즘같이 너무 개인적이라 결혼이나 출산도 안하고 많이 먹지도 않으며 오로지 조그만 창(窓)만 손에 들고 쳐다보고 있을 줄 어찌 알았겠는가. 하지만 얼마 전까지 중국이 유지해왔던 1자녀 정책이 바로 이 멜서스의 인구론에 기초한 정책임을 안다면 그는 정말 천재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이러한 인구증가의 예감은 그보다 백 년 전인 에드먼드 헬리에 의해서도 예감되었다. 그는 우리에게 헬리 혜성의 발견자로 유명하지만 보험업계에서는 최초의 보험 요율을 만든 사람으로 더 유명하다. 자신의 탐사선을 만들어 저 멀리 북극해까지 돌며 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다녔지만 인구증가로 인한 보험계약의 증가를 필연적인 사실로 보고 지금으로 말하면 보험회사 아르바이트를 한 것이다. 사실 19세기 사람들에게는 21세기의 세상이 인구의 감소와 에너지 가격의 하락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서프라이즈한 얘기이다. 이스라엘 역사학자 하라리 교수는 호모 사피엔스는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산업)혁명으로 지구상에서 오늘날의 지위를 거머쥐게 되었다고 했다. 한마디로 서로 소통하며 방법을 찾아내 먹고 살만해지면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은 소통(疏通)의 화신(化身)인 호모사피엔스가 디지털 혁명을 통한 '가상현실과 인공지능'이라는 것과 조우하기 전까지만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앞으로 과연 호모사피엔스의 세상이 계속 지속될지는 의문이다. 그것이 계속 지속되기 위해서는 현생 인류가 고대부터 번성해왔던 비밀의 봉인(고대 바빌론의 갈가메쉬 서사시가 경고한 음(陰)의 세계 인식)을 깨트리지 말았었어야 했다. 이것 때문에 인구는 계속 줄어들 것이다. 무슨 계시록을 쓰는 것 같지만 사실이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21세기 들어 인구 감소와 거기에 따른 에너지 수요 감소에 대한 우려는 계속 높아지고 있다. 본부장이 앞서 돈은 가치와 에너지를 찾아 다닌다고 했다. 가치는 인간들이 보는 눈의 숫자가 많을 수록 많아지고 에너지는 인간의 손과 발이 많아져야 증가한다. 손과 발이 움직임을 덜하면 입도 덜하게 되고 손발이 아예 안 움직이면 입은 그 자연히 쉬게 된다. 가상현실(가상현실은 인공지능과 그 뿌리와 목표가 같다)이 무서운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인간을 움직이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 매트릭스’시리즈는 가상현실로부터 벗어나 호모 사피엔스로 끝까지 남고자 하는 사람들의 사투이고, 영화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인간의 탐욕(처음에는 개인의 가치추구와 노동력 창출이 목적이었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하기 싫게 만드는 편리성에 대한 집착)이 만든 인공지능에게서 살아남기 위한 사투이다. 둘 다 인류가 자신이 만든 것에서 스스로 해방되기 위해 쓰는 안간힘이다. 니체가 이야기한 초인처럼 자신이 만든 도덕률에서 벗어나 본연의 인간으로 스스로 돌아오려는 인간의 처절한 모습과 같을 것이다. 고대에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빛나는 자였다.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감은 오히려 인간 스스로에 대한 기대를 반감시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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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 금리 시대를 이끈 것은 부자들에 대한 분노(憤怒)이다. 마이너스 금리 시대를 대표하는 정치경제학자 마이클 샐던의 ‘정의’ 사진출처: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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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요즘만이 아니었다. 중세에는 전쟁이나 흑사병과 같은 전염병으로 인구가 늘어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인구는 지금이나 그때에도 가치와 에너지의 상징이었다. 현생인류가 고대와 중세를 오면서 인구가 늘어나는 것을 그토록 바랬던 것과 달리 근대에 와서 인구 증가를 두려워했다는 것은 바로 잉여생산물 즉 자본에 대한 독점적 소유욕 때문이다. 중세까지도 자본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즉 잉여생산물이 없었다는 것이다. 농업과 공업 생산성이 늘면서 인간의 노동력이 주는 존재감은 약해지고 자본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 이로써 인간은 마이너스 즉 까먹는다는 개념을 터부시하기 시작했다. 이전에 꿈도 못 꾸던 어렵게 가진 자본이 없어지는 것에 대해 두려웠던 것이다. 중세는 땅과 인간과 가축만이 재산이었지만 근대에서는 생산성 향상으로 인한 잉여생산물을 만들 생산수단인 자본이 재산이었다. 이로서 인류는 16세기부터 20세기까지 금융업이라는 것에서 합법적으로 종사할 수 있게 되었고 금리라는 단어에 지금까지 목을 매고 살아오게 된 것이다. 플러스 금리는 잉여생산물에 대한 인간의 집착을 상징한다. 하지만 마이너스 금리는 반대다. 이유는 생산성의 급속한 발달로 언제든지 잉여생산물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한 푼도 없는 노숙자도 밥은 먹고 살고 친구에게 밥 산다고 하는 말이 이제는 그렇게 고맙게 여겨지지 않는다. 여유로워서가 아니라 기본적인 풍요로움의 기준이 높아졌다. 요즘 부자란 말을 잘 하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이 부자에 대한 집착이 줄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집착이 떨어져가기에 경제의 활력도 당연히 떨어져가는 것이다. 근래 부동산 폭등이나 가계대출 증가를 정부가 경기부양책으로 이끌어가는 이유는 이러한 저 활력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서이다. 좋게 얘기하면 구성원 모두가 안빈낙도하며 만족하고 살고 있는 것이고 나쁘게 얘기하면 포기한 것일 것이다. 둘 다 맞다고 본다. 가진 자에 대한 동경이 아니라 가진 자에 대한 분노(憤怒)가 더 큰 시대이다. 마이클 샐던의 '정의론'이 인기를 끈 것은 멜서스의 '인구론'이 인기를 끌었던 것과 정반대의 상황 때문이다. 마이너스 금리라는 것은 국민들이 자본에 대한 집착도가 거의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건 부자들에게도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자신이 애써 모은 자본이 하찮은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안타까울 것이다. 모두가 그것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이게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플라톤이나 헤럴드 라스웰의 말처럼 호모사피엔스는 정치적 동물이다. 정치적 동물이란 다중 속에서 자신의 존재적 가치에 대해 가장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인간을 경제적 동물이라고는 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마이너스 금리의 의미는 사회의 주도권이 자본가들의 영역에서 정치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자본가가 가진 자본에 대해 누구도 탐내지 않는 시대라면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다. 양의 자본을 포기하고 음의 자본을 선택하는 것이다. 바로 이 음의 자본이 정치라는 공공의 영역이다. 공공의 영역은 마이너스를 감당할 여력이 있기 때문이다. 공공영역은 파산이라는 개념이 없다. 만약 그런 개념이 있었다면 미국은 10년전 아니 베트남 전쟁 당시 이미 파산이었다. 미국은 양적 완화정책을 몸소 보여주면서 전세계에 '음의 자본'이라는 실체를 보여주었다. 앞으로 많은 국가들이 '음의 자본'이라는 정치적 영향력을 경험할 것이고 또 그렇게 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많은 자본가들이 이를 억제하기 위해 엄청난 로비를 할 것도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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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심리와 노동 의욕을 고취시키기고 시장내 경제주체들이 한시라도 돈을 쥐고 있게 하지 않으려는 정부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 사진출처: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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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 금리 정책으로 자본가들의 생산수단 독점을 차단하려는 ‘공유 경제 시대’ 사진출처: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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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마이너스 금리는 국가의 목소리가 매우 커지는 현상을 불러올 것이다. 지금까지는 제로 금리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국민들에게 마이너스 금리의 존재는 중앙 은행보다 정부의 힘을 실감하게 해 줄 것이다. 특히 자본가들에게 말이다. 돈의 위력이 약해지는 만큼 돈의 양은 많아진다. 주가가 고평가 될 것이고 기업들은 자금조달이 쉬워질 것이다. 하지만 자본가들에게 문제는 풍부한 자금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제는 호모사피엔스들을 데리고 새로운 일을 벌이기가 싶지 않아졌다. 고비용이 요구되는 인건비와 추가적인 운영비(사고나 재해에 의한 추가비용은 물론 사내 복지 요구 증가와 업무에 따른 비용 자체의 증가로 인해 거대 기업마저도 대부분 장기적인 프로젝트가 불가능하다)로 인해 무슨 일을 벌이든 지속적인 기대 수익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향후 지속적으로 인공지능 로봇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결정적인 이유이다. 서민들도 쉽게 돈을 빌려 할 게 없기는 마찬가지다. 본부장이 왜 실전형 인재를 강조했는지 이제는 알아야 한다. 과거처럼 자본 탄력적인 경제가 아니다. 자본이 가장 흔하지만 가장 기대 수익이 떨어지는 시대이다. 이제는 다시 노동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 그것도 차별화된 노동으로 말이다. 노동자들이 자본가들보다 맘 편한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하지만 그것도 이미 고용되어 있는 자들의 얘기고 미고용자들에게는 그림의 떡 같은 말이다. 자 걱정마라. 이제 이런 시대도 곧 끝날 것이다. 정부가 이런 구조를 넋 놓고 바라보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제 일부 자본가의 기회 또는 생산수단 독점이 정부에게 전혀 도움이 되질 않기 때문이다. 곧 생산수단으로서 자본의 분산이 이루어질 것이고 그것을 위한 추가적 정책안에는 반드시 마이너스 금리 정책이 들어있을 것이다. 여러분들이 착각하지 말아야 할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라. 신문을 보면 마치 시장 경제의 시대가 도래하여 정부나 공공영역이 시장의 주요 주체에서 밀려나는 것과 같은 기사를 볼 것이다. 매우 위험한 전망이다. 똑똑한 여러분들은 오히려 반대로 진행될 것임을 눈치채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시장 경제의 시대는 마이너스 금리라는 말이 나오게 되기 직전까지의 시장을 말하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까지 우리가 아는 시장경제와는 매우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요즘 자주 쓰는 '공유 경제'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까지의 시장경제는 소유권의 보장이 가장 기본전제 조건이다. 이 부분은 앞으로도 계속 철저히 지켜질 것이다. 다만 소유한 자본을 가지고 독점적인 기회를 가지지는 못할 것이다. 즉 재산은 가지더라도 생산수단까지 독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유 경제 시대에서는 누구도 혼자 독점할 수 없다. 정부가 앞으로 가장 눈 여겨 볼 분야가 바로 공정한 기회라는 부분일 것이다. 이제 예전처럼 기업이 세금을 많이 낸다고 해도 비용처리 (앞으로 갈수록 엄청난 비용이 들 것이다)를 통한 세금 환급을 빼고 나면 정부가 남는 게 없기에 친기업적 정책도 한계에 다다랐다. 방법은 공유 경제를 통한 실질 경제 인구의 수를 늘리려 세수를 늘리고 마이너스 금리를 통해 돈을 절대 오래 들고 있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미 정부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나라안의 어떤 경제 주체도 소외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모두 다 참여시켜 활동하게 한다고 해도 예전같이 부자가 되겠다고 의욕을 불사르는 노동력이 아니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투자 심리나 노동 의욕 모두가 떨어져있는 지금 상황에서 가장 유효한 방법은 모두가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조만간 그것을 위한 정부의 액션이 곧 시작될 것이다.

[정민우 청년의힘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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