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운 0대2 패배를 뒤로하고 경기장을 빠져나오는 관중들 손에는 대부분 한반도기가 들려 있었다. 흰색 바탕에 진한 하늘색 한반도가 그려진 깃발로, 남북단일팀이 출전한 아이스하키 경기마다 등장해 눈길을 끄는 응원도구다.
경기장 근처에서 만난 박모(45)씨는 가방에 한반도기를 무려 3개나 돌돌 말아 넣었다. 함께 경기를 보러 온 아내와 딸이 쥐고 있던 거다. 그는 “한반도기를 집에 가져가는 게 맞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며 “오늘 경기와 더불어 한반도기가 아이에게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줄 것 같다”고 답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경기에서 관중들이 쥐고 입장한 한반도기. 독자 제공. |
한반도기는 1991년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처음 등장했다. 남북은 협의를 통해 한반도와 제주도를 그려 넣었지만, 독도와 마라도 등 기타 섬들은 제외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한반도기에 울릉도가 추가됐고, 2003년 일본 아오모리에서 열린 동계아시안게임에서는 독도까지 등장했다. 일본의 계속된 독도 영유권 주장에 꼭 독도가 들어가야 한다는 정서가 확산된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었다. 다만, 이번 올림픽 개막식에서 남북 선수단은 독도가 빠진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했다.
한반도기를 향한 관심이 높아지고,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쉽게 한반도기 이미지를 구할 수 있는 탓에 기타 정치적 메시지가 담긴 한반도기를 주의하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일본과의 조별예선전이 펼쳐진 앞선 14일에도 관동하키센터 매표소에서 현장 구매를 기다리던 이들과 입장 대기 중이던 사람들은 대부분 한반도기를 들었다. 손에 손을 타고 한반도기가 배포되자 여기저기서 “저도 하나 주세요” “여기도 필요하대요”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당시 매표를 기다리던 이모(38)씨 부부는 “오늘 같은 날이 아니면 언제 한반도기를 흔들어 보겠느냐”며 “뜻깊은 응원도구가 되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부모 손을 잡고 온 남자어린이와 할아버지 등에 업힌 여자아기 손에도 모두 한반도기가 들려 있었다. 현장 구매를 기다리던 한 커플은 “한반도기를 들었는데 표를 못 사면 좀 슬플 것 같다”고 말했다. 다행히 두 사람은 표를 사고는 활짝 웃었다.
한반도기가 올림픽 정신과 부합한다는 게 14일, 18일 양일간 경기장에서 만났던 관중들의 공통된 반응이었다.
하지만 스위스전이 끝난 뒤, 경기장 근처 일부 도로에서는 버려진 한반도기가 발견돼 지나가던 이들이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다. 한 여성은 떨어진 한반도기를 보고는 “아무데나 버리고 가면 어떡해”라며 직접 주워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는 “너덜너덜해진 한반도기를 보기가 꺼림칙했다”며 “이런 것 하나가 트집잡히면 안 좋은 말을 들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남북단일팀은 오는 20일 오후 12시10분에 열리는 7~8위 결정전에 나선다. 이날도 경기장 내외에 한반도기가 넘실댈 것으로 보인다.
강릉=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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