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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조용준의 지락필락智樂弼樂] 배신의 탄생과 종착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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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서양에서 ‘배신의 아이콘’은 은전 서른 닢에 예수를 로마 병사에게 넘긴 가롯 유다가 꼽히지만, 동양에서의 그것은 여포(呂布)라 할 수 있다.

여포는 원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등장인물 가운데 명장으로 손꼽히는 한 명이었다. 적토마(赤兎馬)를 타고 방천화극(方天畵戟, 언월도(偃月刀)나 창 모양으로 만든 옛 중국 무기)을 지닌 모습이 압도적 패기를 보여 ‘사람 중에는 여포가 있고, 말 중에는 적토마가 있다(人中呂布, 馬中赤兎)’는 말까지 나왔다. 여포는 정원(丁原)의 수하이자 수양아들이었는데, 그가 마음에 든 동탁(董卓)이 적토마와 금은보화로 회유하면서 정원을 배신하라고 꾀었다. 이에 여포는 아비를 죽이고 동탁의 수하로 들어가 다시 수양아들이 되어 온갖 호사를 누렸다.

동탁은 여포를 정말 아꼈지만, 달이 부끄러워 구름에 숨을 정도의 미모라 하여 '폐월초선'(閉月貂蟬)이라는 말까지 생긴 경국지색 초선으로 인해 두 사람 사이에 균열이 생겼다. 결국 여포는 연환계(連環計)의 책략에 빠져 초선을 빼앗아간 동탁을 살해한다. 두 명의 수양아버지를 죽이고 여색과 이익에 눈이 먼 탐욕의 화신이 된 것이다.

여포의 배신은 계속된다. 그가 조조에게 패해 도망 왔을 때 유비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배신의 DNA’가 어디 가겠는가. 이번에도 여포는 유비가 전투 때문에 성을 비운 사이 성을 빼앗고 유비를 쫓아낸다.

여포에게도 결국 종말의 시간이 다가왔다. 조조의 군대에게 또 패배해 포로로 잡힌 여포. 그렇지만 그런 여포를 보며 조조는 그의 재주가 아깝다고 생각해 옆에 있던 유비에게 의견을 구한다. 유비는 웃으며 말한다. “여포가 정원과 동탁을 죽인 것을 잊었습니까?” 조조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어 여포의 목을 베라고 한다.

역사에서도 숱한 배신이 등장한다. 고조선은 배신으로 멸망했다. 한무제 대군의 왕검성 공격 때 한나라 군사력에 겁이 난 대신들과 장군들은 한에 항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1년 넘게 버티며 끝까지 투항하는 우거왕과 충신 성기마저 죽게끔 만들었다. 고조선은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그 자리에 한나라의 4군현이 들어서게 됐다.

고구려 역시 연개소문(淵蓋蘇文)의 맏아들 연남생(淵男生)의 배신으로 망국의 길에 들어섰다. 당나라 군대를 크게 물리쳐 침공의 야욕을 접게 만든 고구려였지만, 아버지 죽음 이후 권력 다툼에서 동생들에게 밀려난 연남생이 당나라를 찾아가 항복하고 고구려 정벌의 길잡이를 자처함으로써 나라의 운명이 바뀌었다.

나라를 팔아먹은 연남생은 당나라의 평안도 행군대총관, 즉 고구려를 공격하는 총대장 직함을 받고 모국으로 쳐들어왔다. 이에 저항하는 고구려 장안성 내부에서도 배신자가 발생했다. 태막리지 연남건으로부터 군사를 지휘하라는 명령을 받은 승려 신성이 오히려 당과 내통하고 몰래 성문을 열어버린 것이다.

이와 같은 배신의 역사는 작금의 우리 현실에서도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면서 매우 극적인 드라마를 보여준다. 박근혜씨의 몰락, 이명박씨가 처한 비루한 처지, 현 야권 권력지형 변화의 그 모든 전개 과정에 수많은 배신이 똬리를 틀고 있다. 박씨가 말한 ‘배신의 정치’는 마치 예언처럼 미래를 예고했다. ‘안종범의 수첩’과 ‘장시호의 메모’ 그리고 ‘우병우 및 문고리 3인방’을 비롯한 수많은 ‘측근’ 행태들이 그렇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이명박씨의 조카이자 다스 부사장인 이동형씨가 보여준다. '다스가 누구 것이냐'는 질문에 “당연히 저희 아버님(이상은 회장)이 지분이 있으니까 전 그렇게(아버지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던 그가, 검찰 조사에선 180도 바뀌어 ‘아버지 지분은 작은아버지(이명박) 것이라고 진술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진술이 사실이라면, 철옹성처럼 완강해 보였던 ‘명박산성’이 내부로부터 스스로 붕괴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가장 믿었던 사람이 알고 보니 ‘트로이 목마’였다는 아이러니의 극치가 현실화된 것이다. 배신은 배신을 부르고, 연쇄적으로 배신이 탄생한다. 그리하여 배신자는 결국 또 다른 배신자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이것이 역사의 법칙이고 순리다.

상식과 정의가 아닌 권모술수와 꼼수의 정치는 결국 배신을 부를 수밖에 없다. 권력을 잠시 가진 최대 수혜자로 희희낙락하지만, 끝내는 최대의 수형자(受刑者)가 되고 만다. 사필귀정이다. 그들만의 비극으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나라마저 ‘눈먼 자들의 국가’로 거덜날 수 있으니 진짜 큰일이다.
조용준 작가·문화탐사 저널리스트

박상훈 bomnal@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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