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외환 보유고' '외환 마이너스 통장'인 통화스와프
통화스와프란 말 그대로 통화를 맞교환(swap)한다는 의미다. 서로 다른 통화를 약정된 환율에 따라서 상호 교환하는 외환 거래로, 원래는 다른 나라에 있는 개인이나 기업 간 거래에서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줄이기 위해 탄생한 금융 상품의 한 종류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외환 위기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국가 간 체결하는 통화스와프 계약이 더 일반적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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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간 통화스와프는 유사시 정해놓은 한도 안에서 자국 화폐를 맡기고 미리 정해진 환율로 상대국 통화를 빌려올 수 있는 계약이다. 예를 들어 한국이 통화스와프 계약을 스위스와 맺으면, 한국은 필요한 때 원화를 스위스의 중앙은행에 맡긴 뒤 이에 상응하는 스위스프랑을 가져올 수 있다. 한 나라가 외화 부족 현상으로 외환 위기가 발생하면, 상대국이 약정한 금액 내에서 외화를 즉각 융통해 줌으로써 유동성 위기를 넘길 수 있다는 점에서 통화스와프는 '제2의 외환보유고'라고도 불린다. 외화보유액이 외환 부족 시를 대비한 '적금'이라면, 통화스와프는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 성격인 셈이다. 외환 위기가 닥쳤을 때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자금을 지원받으면 각종 통제를 받게 돼 경제주권과 국가 이미지가 훼손당할 수 있다. 반면, 통화스와프는 별다른 간섭 없이 안정적으로 외화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금융 위기 이후 본격화… 자국 영향력 확대 수단으로도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는 세계 주요국들이 통화스와프 계약을 통해 외화 안전망을 구축하도록 한 계기가 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2007~2008년 금융 위기가 불거지자 유럽연합(EU)·스위스·한국 등 14개국 중앙은행과 양자 간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었다. 총 체결액은 5800억달러로, 세계 금융시장의 신용 경색을 막기 위해 거대한 외환안전망을 만들었다. 이에 대해 프랑스의 싱크탱크인 국제정보전망연구소는 "미 연준이 통화스와프를 통해 전 세계의 최종 대출기관의 역할을 하게 됐다"며 "통화와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제어하는 수단으로 통화스와프가 등장했다"고 분석했다.
금융 위기 후 각국 중앙은행은 통화스와프 계약을 확대하고 있다. 미국·유로존·영국·일본·스위스·캐나다 등 6개국(지역)의 중앙은행은 2013년 상시 다자간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었다. 자국 내 달러화가 부족하면 다른 나라 중앙은행에서 만기 3개월짜리 단기 대출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일본은 중국에 맞서 동남아 지역에 영향력을 확대하는 수단으로 통화스와프를 활용하고 있다. 싱가포르에 이어 지난해 태국(30억달러), 필리핀(120억달러)과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었다. 중국도 위안화를 국제 통화로 격상시키기 위해 통화스와프를 적극 이용하고 있다. 중국은 한국 등 32개국과 3조위안이 넘는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한 상태다.
통화스와프는 국가신용등급을 상승시키는 요인이기도 하다. 외국인 투기자본이 공격해 외화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더라도 외국에서 유동성을 끌어들여 방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는 것은 양국이 서로 쉽게 부도가 나지 않는 나라라고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내 금융시장에 심리적 안정을 가져온다.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지난해 10월 중국과 통화스와프 계약을 연장한 후, "통화스와프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며 "미국이든 일본이든 기회가 있으면 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미국, 일본과의 통화스와프 협정 난항
이번 스위스와의 통화스와프를 계기로 기축통화국인 미국, 일본과의 통화스와프도 관심사가 되고 있다. 한국은 현재 미국 달러화, 일본 엔화, EU 유로화 등과 맺은 통화스와프 계약이 없다. 국제 거래에 많이 쓰이고 신뢰도가 높은 통화와 원화를 바꿀 수 있는 계약을 맺는 게 중요한데,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특히 미국, 일본과는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었다가 지금은 해지된 상태다.
한국은 글로벌 외환 위기를 겪던 2008년 10월, 미국과 3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은 후 치솟던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정상화되며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았다. 그러나 만기일인 2010년 2월 양국 간 계약이 종료된 후 아직까지 공식적인 계약 연장 논의가 없는 상태다. 우리 측은 재협상을 위해 미국과 물밑 논의를 이어가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시장에 풀린 막대한 달러를 거둬들이고 있는 미국으로선 우리와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할 뚜렷한 이유가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 입장에선 통화스와프가 잠재적으로 달러화가 국외로 유출되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한국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 이슈가 맞물려 있어 강하게 재협상을 요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9일 한·미 통화스와프 재개 가능성에 대해 "미리 앞서서 예단해 말하기 곤란하다"며 말을 아꼈다.
일본의 경우 사실상 양국 간 논의 채널이 모두 막힌 상태다. 사실 일본은 한국이 제일 먼저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은 나라다. 한·일 통화스와프는 2001년 20억달러에서 출발해 2011년에는 700억달러까지 규모가 커졌다. 하지만 2012년 독도 영유권 다툼 등 외교 문제로 인해 규모가 130억달러로 줄기 시작해 2015년 2월 완전히 종료됐다. 2016년 8월 한국의 요청으로 협상이 재개됐지만 지난해 1월 일본 측이 부산 일본 영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 설치를 이유로 협상 중단을 선언하면서 현재까지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외환 만병통치약 아냐… 기초 체력 길러야
통화스와프 계약은 당사국 간에 맺어지는 국제 협약이기 때문에 정치·외교적 요인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독도·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갈등으로 한·일 통화스와프가 중단된 것처럼 한·중 통화스와프 역시 지난해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논란 이후 중단 위기를 맞았다. 지난해 10월 가까스로 계약이 연장되긴 했지만, 북한 리스크가 커지고 있어 통화스와프를 포함한 중국과의 경제 공조는 불안한 상황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통화스와프가 외환시장 안정을 보장하는 '만병통치약'은 될 수 없다고 조언한다. 글로벌 외환 위기는 특정 국가에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여러 국가에서 동시 발생하기 때문에, 통화스와프를 맺은 국가로부터 실제로 도움받는 게 힘들 수 있다는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통화스와프에 의지하기보단 외환 보유액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경상수지 흑자를 지속적으로 유지해 외환 위기 자체가 발생할 여지를 줄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준우 기자(rainrace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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