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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우 카이로 특파원 |
지난해 7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취재를 갔다가 끔찍한 교통사고를 목격했다. 해안도로를 달리던 차량은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아스팔트 바닥에 스키드마크를 남기며 멈춰 섰지만 이미 한 여성을 친 다음이었다. 사고 시간은 오후 9시가 넘은 캄캄한 밤. 길을 건너던 여성은 검은 망토 모양의 이슬람 전통 의상인 ‘아바야’에 검은색 ‘히잡’을 쓰고 있었다.
최악의 교통 환경으로 악명 높은 이집트에서는 신호등과 횡단보도를 찾아보기 힘들다. 보행자는 도로 위 차량 운전자와 요령껏 눈을 맞춰가며 무단횡단을 해야 하는데 어두운 밤에는 그야말로 목숨을 걸어야 한다. 전체 인구의 90%가 무슬림인 이집트의 여성들은 대부분 히잡을 쓴다. 일부 여성은 아바야까지 착용하는데 이들이 오밤중에 위태롭게 길을 건너는 모습을 지켜볼 때마다 손바닥에 땀이 난다.
히잡은 여성들이 얼굴을 내놓고 귀와 머리카락을 가리는 스카프를 말한다. 하지만 무슬림 여성의 의복 가운데 아바야 또는 차도르는 얼굴과 손발을 제외한 온몸을 가린다. 심지어는 눈을 제외한 온몸을 가리는 ‘니깝’, 눈 부위마저 망사로 덮어 온몸을 가린 ‘부르카’라는 옷도 있다. 이슬람 율법을 보수적으로 해석하는 지역일수록 니깝과 부르카를 입은 여성을 많이 볼 수 있다.
무슬림 여성들은 왜 이런 위험과 불편을 감수하면서 히잡을 쓰는지 궁금했다. 히잡의 기원은 이슬람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히잡은 아라비아 반도의 뜨거운 태양과 모래바람을 막기 위한 용도였다. 히잡은 아랍어로 ‘가리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7세기경 아라비아 반도는 부족 간 전쟁으로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강간, 약탈이 횡행했다. 당시 사람들은 여성의 머리카락이 남성을 유혹한다고 봤기 때문에 이때부터 히잡은 여성들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이후 이슬람의 경전 꾸란이 24장 31절에서 “밖으로 나타내는 것 이외에는 유혹하는 어떤 것도 보여서는 아니 되느니라. 가슴을 가리는 머릿수건을 써서 남편과 그의 부모, 자기 부모와 자식, 형제와 형제의 자식, 소유하고 있는 하녀, 성욕을 갖지 못하는 하인, 그리고 성에 대해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는 어린이 이외의 자에게는 아름다운 곳을 드러내지 않도록 해야 하느니라”고 언급하면서부터 히잡은 무슬림 여성의 의무가 됐다. 이집트를 비롯한 이슬람 국가에서 여성들은 초경을 시작하는 13, 14세 무렵부터 히잡을 쓰기 시작한다.
서구권은 히잡 같은 무슬림 여성들의 전통 의상을 여성의 인권을 억압하는 상징이자, 혁명으로 쟁취한 세속주의 정교분리 원칙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왔다. 프랑스 휴양도시 니스는 2016년 무슬림 여성 수영복 ‘부르키니’(부르카와 비키니의 합성어)의 착용을 금지했다가 프랑스 최고 행정법원으로부터 금지 무효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부르키니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프랑스는 2011년부터 공공장소에서 니깝과 부르카 착용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유럽연합사법재판소(ECJ)가 ‘직장 내 히잡 착용 금지’가 직접적인 차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해 논란이 됐다.
무슬림 여성에게 히잡은 종교적 자유이자 권리이기도 하다. 2013년 미국 뉴욕에서 시작된 ‘세계 히잡의 날’(2월 1일)은 올해로 6년째를 맞았다.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테러와 유럽의 난민 문제 등으로 무슬림 혐오주의에 대한 우려가 커질수록, 세계 히잡의 날은 종교적 관용과 이해를 장려하는 세계적인 행사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이슬람권 일부 국가에서 히잡은 억압이 아닌 저항의 상징이었다. 터키는 1923년 공화정 수립 이후 세속주의 헌법에 따라 공공장소에서의 히잡 착용을 금지해왔다. 그동안 일부 터키 여성은 정부에 맞서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쓰고 종교적 정체성을 드러냈다. 그러나 친이슬람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 집권 이후 금지 규정이 철폐되면서 히잡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에서는 여성 독립투사들이 세속주의 식민세력에 맞서 히잡을 착용했고, 부르카에 폭탄을 숨겨 독립군을 지원하기도 했다.
최근 이란에서는 강제 히잡 착용에 반대하는 캠페인이 한창이지만 히잡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히잡을 강제하는 당국에 저항하기 위해 수요일마다 흰색 히잡을 쓰는 ‘하얀 수요일’ 운동에 참가한 83세 이란 여성은 “과거 리자 팔레비 국왕이 히잡 착용을 금지했을 때 우리는 저항했다. 지금 이슬람공화국이 히잡 착용을 강제하니까 우리는 또 저항한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무슬림 여성의 자유가 억압받아 왔다는 사실이다. 이들 스스로 착용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때 억압과 편견의 상징이었던 히잡은 자유의 옷으로 거듭날 것이다.
박민우 카이로 특파원 min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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